Luanda, Angola

아프리카의 북동부, 앙골라 기항

by 전재성

1.

아프리카는 많은 이들에게 동물의 왕국으로 인식되어있지만 이 곳, 앙골라의 루안다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30층이 훌쩍 넘는 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이 곳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산업화'의 그림자가 그 건물의 높이만큼 드리워져 보입니다. 대리점의 말로는 중국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이런 풍경을 가지게 되었노라고 얘기해주더군요. 부정적인 시각일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있던 배들과 교신하다 보니 상륙했다가 당한 이런저런 봉변들과 구걸하는 이들의 물결이 도시 주변에 넘실댄다는 이야기들만 귀띔해주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도 겪었을, 하지만 지금은 깨끗이 잊어버린 그런 악몽들이 아직도 이곳에서는 진행형이라는 얘기죠.


저희가 접안한 시멘트 부두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TIDE(조석간만)는 고저차가 1미터 정도밖에 나지 않지만 조류가 강해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는 봉변을 만나게 되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Port Information을 보고 당직 항해사 모두들 특별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DSC9284.jpg 부두 건너편 언덕 위의 꽤 오래된 듯한 고목, 대리점원은 바오밥이라 설명해주었지만 내 눈엔 좀 아닌 듯 보였다.

사막 기후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사구의 모습, 특히 그 꼭대기에 자리한 거목을 보니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처럼 별을 부숴버릴 정도로 엄청나 보이는 바오밥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 주변에서 볼 것이라고는 저 나무 하나뿐인 듯 싶습니다만.


2.

어느새 접안 보름째에 접어듭니다만 49,000톤의 짐 중 30,000톤밖에 풀지 못했습니다.

딱 봐도 상태 안 좋아 보이는 컨베이어가 매일 문제를 일으키는데다 우기에 접어든 앙골라의 날씨 탓에 짐을 풀만 하면 내리는 비에 방해를 받고 있죠.

이렇듯 하역작업이 지지부진하여 일이 바삐 진행되는 다른 포트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지내기라도 한다면 심신이 편한 곳이 되겠지만, 상륙이 자유로운 깔끔한 포트도 아니고 부식 보급도 안 되는 곳인데다, 싣고 온 화물조차 시멘트이고 보니 사방팔방이 죄다 먼지 구덩이로 바뀌어서 다들 어서어서 출항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들입니다. 저 역시 먼지 탓에 사진기를 꺼내기가 두려워질 정도니까요.


father_05.jpg 극동에서 아프리카 대륙 서해안(대서양)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지나게되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

접안 중의 이당직제 - 항해 중에는 1,2,3등 항해사가 각각 4시간씩 하루 두 번 당직을 맡게 되는 3 당직제로 돌아기지만 접안 시에는 대다수의 선박들은 2,3등 항해사가 각 6시간씩 두 번씩 돌아가는 2 당직제로 편성됩니다 - 로 돌아가는 일상 탓에 항해 때보다 심적으로는 더 많이 피곤하고, 수면 시간도 불규칙하게 되어 여기저기 탈이 나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첨에 몇몇 선원들이 피부 트러블을 호소했었는데 저 역시도 시멘트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피부발진이 일어나서 그 가려움증으로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처음 지은 집에 들어간 이들이 호소하는 새집증후군과 흡사해 보이는(어쩌면 동일한)이 증상에 대해 준비된 약품이라고는 가려움증을 완화시켜주는 연고제뿐이라 짐 풀고 나가기만을 더더욱 기다리게 됩니다.

_DSC9288.JPG Luanda Cement Jetty

긴 하역작업이 좋은 것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좋은 화물이나 항만의 사정이 받춰줘야 좋은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는 몸은 몸대로 부대끼고 스트레스는 또 스트레스로 받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이처럼 모든 선원들의 몸도 마음도 계속 시달리는 탓인지 기관장님부터 일항사에 갑판장까지... 거기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갑판부원들까지 가려움증의 대열에 들어섰으니 이쯤 되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예전 TV에서 시멘트의 폐해에 대해 고발한 고발성 프로그램 속에서 국내 업체들이 석회석뿐만 아니라 폐타이어와 아스팔트까지 동원해서 시멘트의 양을 늘이는 행태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새삼 그 악영향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중이라고 할까요.


3.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한 가지 청량제가 있으니 바로 낚시입니다.

JETTY주변에 어선들이 출몰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하루에 한 마리는 꼭 대형 도미가 잡혀 올라와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어서 - 어젯밤에도 OS가 1미터 가까이 되는 참돔을 한 시간 가까이의 실랑이 끝에 잡아 올렸습니다. 조리장이 회를 만들어 내놓고 탕까지 끓여내서 맛나게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죠 - 그나마 무료하고 짜증스러운 상황에 청량제가 되고 있죠.


손바닥 둘을 합친듯한 크기의 고등어는 거의 한 시간이면 큰 페인트 캔 하나를 채울 정도로 올라오니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괜찮은 포인트라고 낚시광 기관장님이 입에 침이 마르시더군요. 우리나라의 고등어와 정말 완전 판박이로 똑같이 생긴 탓에 물고기만 보면 여기가 아프리카인지 우리나라인지 헷갈릴 정도랍니다.

470095_406510262735171_1225556837_o.jpg 바다를 모르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해무(바다안개), 접안시 특히 심한 항구들이 많다.

4.

아직도 용선주는 차항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지 않아서 - 정보를 보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들도 아직 확정된 스케줄이 안 나와서 그런 것이겠지만요 - 다들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년 계약으로 승선했던 인도네시아 선원들 전원이 다음 포트에서 하선을 진행하게 되고 사관들의 경우도 일항사부터 저, 지난 항차에 승선한 삼기사를 제외한 기관사 전원이 두 달 사이에 하선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어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고 찾아갈 다음 포트가 대부분의 선원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곳이 될 예정이거든요.

처음에는 이틀거리에 자리한 가봉의 OWENDO가 차항의 목적지가 될 것으로 알려주더니 그것이 어그러졌는지 브라질을 들러 극동을 향하는 코스도 고려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벌크 지수가 바닥을 치면서 공선으로 일없이 머물러있는 배들도 많은 상황이라 그런지 정확히 pixed 된 적하지, 양하지 정보를 받기 어렵게 되어버렸지요.


이래저래 땅을 밟고 사는 이들이나 바다에서 지내는 이들이나 선박회사에 다니는 이들이라면 모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 기나긴 불황의 그늘이 빨리 걷히기만을 바라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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