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를 지나며

항해 중에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

by 전재성
2011_07.jpg 바다에서 만나게 되는 또다른 풍경, 우현쪽으로는 해가 지고 좌현쪽에는 먹구름이 몰려온다.


현재 본선은 베트남 동해안을 타고 남중국해를 북상 중입니다. 우리와는 이런저런 인연이 많은 나라가 베트남이고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는데도 나라의 크기가 의외로 큰 것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이틀째 이 나라 연안을 타고 올라가는 것만 봐도 대충 그 크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게다가 연안에서 만나는 어선들의 모습이 중국과 너무 다른 것에도 감동(?)하고 있습니다. 배가 오건말건 코스로 겁 없이 뛰어들고 통항로 안에서도 행패를 부리는 중국어선들과 달리 이곳 어선들은 지나는 배들을 상당히 의식하며 조업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죠. 제가 미안할 정도로 배의 코스를 정확히 비켜주는 모습들과 행여 그물을 끌고 있을 때면 라이트로 그물 방향을 정확히 일러주는 모습까지... 중국 연안이나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스스로 벗어버렸고 세계 최강의 미국마저도 굴복시켰던 그들의 모습이 새삼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이런 단편적인 일들로 한 나라의 국민성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에 다름 아니겠지만 사실 그동안 쌓이고 싸인 일들이 한 무더기는 되다 보니 좀처럼 그 선입견을 버리기가 쉽지 않네요.


싱가포르를 출항하고 배에 오른 정기선 용품과 보급품을 정리하고 수급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재보급 청구하고, 싱가포르 기항으로 늦춰졌던 월말 서류들과 씨름하다 보니 정신없이 사흘째 항해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잡다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좀 편한 마음으로 글을 적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 중국으로 모여드는 배들이 늘어나면서 웨이팅이 길어지고 있다는 소식과 달리 본선은 10일에 도착하여, 하루 엥커링 후 11일에 접안, 7일간 짐을 푸는 것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배에서는 우리 차터러가 중국에서 꽤 힘이 있는 축에 드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용선에 재용선, 재재 용선까지 걸려있는 마당에 마지막 항차인 이번 항차를 빨리 마무리짓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 저절로 느껴지더라고요.


벌크 지수가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그나마 고액을 받을 수 있던 브라질/중국 노선이 그 기나긴 항해 기간과 소요 금액으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iPhone_0.jpg M/V INCA MAIDEN - 30년된 General Cargo Ship으로 갑판위에는 일본제 버스들을 가득싣고 Peru 로 향하고 있었다


중국과 동남아를 돌고 있는 회사의 A, B, C들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 그냥 정해지는 대로 잘 따라가는 것이 상책이라 여기고 있죠. 저는 남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장기 항차가 내심 맘에 들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세 명의 선원이 하선했는데 그중 한 명만 교대자가 승선했습니다.

집안 문제로 고민이 많던 OS와 승선 생활에 적응을 못하던 ENGINE CADET, 그리고 인도네시아 BOSUN이 하선하고 한국인 갑판장만이 교대되었죠. 싱가포르 입항 당시, 인도네시아는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기간이 이어져서 교대할 인원들의 출국이 여의치 않았다는 이유가 달렸지만 실은 갑작스러운 교대(갑판장을 제외)로 인해 충원할 인원을 미처 준비시키지 못한 탓이 더 커 보였습니다.


특히나 OS와 E/C의 경우, 갑작스레 교대 요청을 해온 터에 함께 승선한 인원들은 계약기간을 채우고 중국에서 하선하겠다고 한 마당에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꼭 하선하겠다고 '생떼'를 쓴 상황이라 싱가포르부터 중국까지 하릴없이 세 명의 인원(한 명의 오일러가 지난번 더반에서 담도 결석으로 하선했거든요)이 결원된 상태로 달리게 된 것이죠. 다행히 오일러의 결원은 WIPER가 채울 수 있었지만 CADET과 WIPER가 한 번에 빠진 상태라 혼자 남은 조기장만 죽어라 일하게 되었습니다.


본선의 조기장은 인도네시아인인데 이제 29살의 파릇파릇한 청춘입니다만 처음 승선 당시 그 나이를 못 미더워했던 기관장과 기관사들의 우려와 달리 일에 대한 이해도 상당하고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라 모두가 좋아라 하고 있죠. 새로 온 환갑이 넘은 갑판장도 제 타수가 'VERY GOOD MAN'이라 엄지를 추켜올리는 것을 보니 OS의 빈자리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다행스럽기는 한데 마지막 인상을 잘못 심어주고 떠난 친구들에 대해 회사 측이 '재고용 불가'로 결론을 내린 것 같아 마음은 편치 않네요. 다들 어려운 시기에 이런저런 핑계로 갑작스레 내려버린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지난 석 달 간 한 배를 타고 다닌 친구들인데 싶은 생각도 듭니다.


_DSC9622.jpg 연안을 벗어나 대양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지난 항차의 흔적들을 지우는 청소가 시작된다.

하여간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가장 힘든 일이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만 계속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여기서도 생각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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