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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Feb 23. 2016

Freetown, Sierra Leone

가난해도 성실하게 살아가던 착한 사람들의 도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 중인 본선은 어느새 유명한 도시들을 차례로 지나고 있습니다. 

방금 세네갈의 다카르를 지났고 - 파리에서 다카르까지 달리는 자동차 경주로 유명하죠 - , 내일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지나 카나리아스 제도의 라스팔마스를 가로질러 4일 후엔 지중해의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에  다다르게 될 예정이죠. 지나치는 나라나 도시만을 열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를 일주하는 여행가처럼 보일 테지만 그저 바다에서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는 입장을 생각해보면 '走馬看山'이란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것이 지금 저의 일입니다. 뭐 제 핸드폰의 사업자인 KT도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참 궁금해할 거란 생각도 드네요. 두 달 사이에 남아공부터 세네갈까지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주욱 열거되는 로밍 내역을 본다면  말입니다.


프리타운항에 접안 중이던 M/V Africa Mercy. 낙후된 의료서비스 체계로 인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오가며 의료서비스를 베푸는 착한 배

 엊그제 떠나온 시에라리온은 북한보다도 못 사는 나라로 첫인상은 정말 기나긴 식민지 시절과 바로  몇 해전까지 내전에 시달린 나라라는 선입견이 대부분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의 나라였습니다. 예전 김혜자 아주머니가 이곳의 어느 소년을 만나고 정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죠. 하지만, 스쳐 지나는 항해자의 눈에는 그렇게 깊게까지는 보이진 않았고 그저 입항 때부터 이런저런 억지로 아예 선내 면세품점과 부식창고를 거덜 내는 공무원들과 에이전트들에게 들들 볶이고 나서 정말 '징글징글한 후진국'이란 인상만  첫인상으로 박아 넣었죠. 하지만, 그 파렴치한 공무원들이 지나가고 나니 선량하고 욕심 없이 사는 일꾼들이 그 자리를 채우더라고요. 늘 웃으며 인사도 먼저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걸어오는 호기심 많은 그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배에 상주하던 항만노동자들. 강한 인상과는 달리 낙천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여전히 밉상인 본선에 상주하던 에이전트가 성질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 본선 부식 냉장고를  자기 집 곳간으로 여기는 - 그 외의 대부분 친구들은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없이 살아도 낙천적이고 늘 밝게 생활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잠깐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제 눈에는 희망도 없고 답답한 그들의 상황임에도 낙천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 혹자들은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이라 그들을 평할지 모르지만 월급 50달러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월급 5,000달러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죠.

Mr.Mugamba. 이 아저씨에 대해서는 따로 적을 글이 더 있을 듯 - 시에라리온을 덮친 에볼라에서 제발 무사하시길.

 요즘 들어 대책 없이 낙담하던 삶에 적잖은 화두를 던진 기항지였습니다, FREETOWN, SIERRA LEONE.  


아마도 당분간 그곳을 잊지 않고 살게 될 듯 싶네요. 물론, 아프리카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을 거치면서 배의 부식도 바닥이 났었는데 모처럼 신선한 생선과 과일도 싼값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습니다. 수십 개의 바나나가 매달린 바나나 나뭇가지는 5불, 민어로 보이는 커다란  생선 6마리에 15불, 잘 익은 파파야 30kg에 10불, 어른 주먹 두개를 합친듯한 코코넛 10개가 5불에, 여기저기  찌그러져 못생기기는 했어도 커다란 크기에 맛도 일품인 자몽이 40개에 10불....^^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라도 긍정적인 생각 - 맛난 음식  -으로 그 상황이 모면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여전히 단순한 스스로의 상태(?)도 진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번 아프리카 서부 기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듯 싶습니다. 

승선해서 이런 저런 일을 봐주던 대리점원들과 함께 한 컷. 나와 어깨동무한 녀석이 실은 제일 짜증나는 친구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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