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은 배들
배를 타다보면 시간이 빨리 흘러주었으면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되는데 집에 가는 귀향길이나 태풍과 같은 악천후에 휘말렸을 때가 바로 그때다. 악천후에서 시간이 빨리 흘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것은 당연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그만큼 들기 때문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에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하는 감정은 처음에는 그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지만 요즘은 큰 덩치를 이코노미클라스에 끼워넣고 날아가는 시간의 고통스러움 때문으로 그 이유가 바뀌어간다.
비행기가 주는 압박감이나 공연한 불안감, 그것에 더해져서 불편하고 비좁은 좌석…이래저래 뱃사람에게 비행기는 그만큼 불편한 공간일 수 밖에 없다라는 체념도 해보았었다. 아무래도 넓찍넓찍 만들어진 배가 비행기보다는 편한 것…어쩌면 뱃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그리 느낄지도 모르겠네. - 넓직한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라스를 이용할만한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만 빼고.
한때, 비행기도 아니고 배도 아닌 것이 ‘비행선'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요즘처럼 비행기의 스피드가 마하를 넘나들던 시절이 아니었고 장거리 비행이 지금처럼 일상화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공중에 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비행선은 빠른 교통수단보다는 보다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각광받게 된다. 하지만, 선박보다 빠른 속도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이전까지 선박이 독점하고 있었던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항로에서 빠른속도로 그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당시 사고가 비교적 잦았던 비행기보다 안전하고, 배보다 빨리 목적지에 데려다주면서도 안락한 여행을 만들어주던 비행선, 인간이 하늘을 처음 날기 시작했을 때 바라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던 것이 바로 20세기 초반을 장식했던 비행선 시대였던 것이다.
5,000Kg의 두랄루민(비행기 제조에 주로쓰이는 경량 알루미늄 합금)으로 골조를 만들고 길이만 245미터, 지름이 41미터에 달했던 초대형 비행선인 힌덴부르크호는 그 비행선 시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비행선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역할을 했던 역설적인 존재로 여전히 회자되곤 한다. - 록그룹 Led Zeppelin의 앨범 자켓에도 힌덴부르크호의 모습이 사용된 바 있다 - 힌덴부르크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전쟁영웅이었던 Paul von Hindenburg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1936년 3월 4일 첫비행에 나섰다. 시험비행과 당시 독일을 장악했던 나찌당의 홍보용 비행으로 첫 비행을 마치고 3월 29일 여객운송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여객운송은 독일의 프리드리히 샤벤에서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루로 향하는 비행이었다.
이후 여객과 항공우편이 활성화되어 있던 북미노선에 투입되었되는데 독일에서 미국까지 걸리는 운항시간은 단 20시간내외.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속도였으며, 비행선내에 산책로가 설치될 정도로 승객들은 넓은 공간에서 안락한 여행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 물론, 그만한 댓가를 치러야 했지만.
하지만, 같은 시기 여객용 비행선을 운용하던 미국이 불연성 가스인 헬륨으로 비행선을 띄웠던 것과 달리 가볍긴하나 불에 취약한 수소로 비행선을 띄웠던 힌덴부르크호는 결국 그로 인해 이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북미와 유럽을 오가는 항로에 투입된지 불과 1년여 흘렀을 무렵인 1937년 5월 6일, 미국의 레이크 허스트 국제공항에 착륙을 위해 주기하던 중 원인불명의 화재로 인해 폭발하는 대참사를 겪게 된다. 이 사고로 97명의 승선인원 중(승무원, 여객포함) 36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독일은 운용 중이던 모든 여객용 비행선의 취항을 금지하게 된다. 이후로도 여객용 비행선의 취항은 이뤄지지 않게 됨으로 짧지만 굵었던 비행선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
최근 들어 다시 여객용 비행선에 대한 연구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외신도 들리고 있다. 비행기보다 적은 연료소모량, 보다 안락한 비행, 보다 적은 여행비용등으로 상당한 부분까지 연구가 진척되었다는 소식. 허무하게 사라져간 힌덴부르크의 후예들을 21세기에는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