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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29. 2016

옛날 사진 한 장에서 지금을 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때, 벌어졌던 아픔들

 Photo By Skyraider        Nikon F3hp / AF 80-200 2.8D / Kodak TX 400

예전, 광주에서 전투경찰로 근무하던 선배는 시청 앞을 지키다가 밀려온 시위대에 의해 기동대 자체가 박살나곤 뿔뿔히 흩어져 완도에서 경찰 생활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차라리 '박살난 것이 다행이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1989년, 그 80년대의 끝자락에서 다른 곳도 아닌 광주의 '시위진압병력'으로 근무하는 것이 얼마나 지옥같은 일이었는지, 그것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죠.

늘 긴장해야 한다며 위에서 아래로 이유없이 자행되던 얼차려와 폭력..그것은 '군대가면 다 그런 거니까'로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적대시하는 광주의 분위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단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라면서.

기동대 자체가 뿔뿔히 공중분해되어 어떤 이는 순천으로, 어떤 이는 목포로, 어떤 이는 완도로 보내지는 상황에서 섬 동네에서 '정말 경찰' 노릇을 하면서 살게되니 오히려 맘도 편하고 '박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던 선배. 나중에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시위가 없는 완도에서는 지날 때마다 이것저것 쥐어주며 '고생한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는 그 동네사람들에게 고마워서라도 '경찰노릇'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 그 말이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 광주가 지옥이고, 완도가 천국이었던 것이 아니라 경찰이 경찰로 머물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게되니 지옥 같았던 것이고 해야할 일을 하게되니 행복했던 거라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할일을 하고 지내는 것과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지내게 되는 것,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이처럼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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