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않던 이별

또 다른 항해를 떠난 선배를 떠올리며

by 전재성

"어이 전박사, 부산사람이 한화응원하는게 마이 웃기나?"


함께 승선한지 2주일이 지났을 무렵부터 그는 나를 전박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뭐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유식해보였다나.하여간 이후 대화할 때 내 호칭은 내 직책이 아니라 '전박사'였고, 보통 새벽녘 선교에 올라온 그와 주로 야구와 정치(?)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좀 특이하게는 느껴지네요. 솔직히 부산사람으로는 제가 처음 본 한화팬이시긴하죠."

"내는 원래 좀 이겨도, 져도 화끈하게 하는게 좋다 아이가. 한화도 그래서 좋아했는데 요새 넘 몬해서 좀 기분이 그렇다."

"뭐 예전처럼 좋은 날 한 번 오겠지요. 이용규가 초등학교 후배라 저도 용규는 응원하는데....요즘은 어떤가 모르겠네요."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부산이었던 그는 특이하게도 롯데가 아닌 한화팬이었고 당시 바닥을 기던 마운드와 달리 불방망이를 휘둘러대던 그들을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했다.


그와 보냈던 8개월동안, 승선 중 그 누구보다도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자신은 '늙어서 잠이 없다.'며 입출항과 이어진 새벽당직에 지쳐가던 나를 일찌감치 올라와 내려보내주는 좋은 선배기도 했던 따뜻한 사람.


미얀마인 삼항사로부터 요즘 Painkiller를 많이 받아가신다고 귀띔받기 전에도 처음 함께 승선할 때보다 조금 부어오른 오른쪽 광대뼈를 보며 염증생기신 것 같은데 병원에 좀 가보시죠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그때마다 '별거아이다. 마 소염제 좀 무면 금방 괴얀아진다.'고 극구 손사래를 치던 그.

근데 진통제는 왜 드시냐고 따지듯 물어보는 내게 그는 '원래 환갑 다되어가믄 여기저기 고장나고 또 여기저기 아픈기라.'하며 웃으며 넘겼다.


8개월을 채우고 함께 하선하기로 했던 교대자가 준비된 나와 달리 아직 교대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회사의 불멘소리에 두어항차 더 승선키로 했고 내리자마자 병원부터 가자고 잔소리하던 내게 이번에 하선하면 꼭 병원에 가보겠노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한 달 보름을 더 타고 하선한 그는 내 잔소리대로 바로 병원으로 갔고.....


그 곳에서 구강암 판정을 받았다.


치료 중에 이가 많이 빠졌다며 '내 목소리 마이 웃기재? 이가 없어서 말이 마이샌다.'며 전화기 넘어로 웃어보이던 그. 양산 부산대병원에 입원했고 다행히 많이 번지지않아 수술하고 몸조리하면 나아질거라고 '퇴원하면 술은 몬해도 야구나 함 보러가자.'고 웃으며 말해주던 그.


수술하고 붓기가 안빠져서 몰골이 웃기다며 사진까지 보내주셨길래 뭐 원래 인물이 거기서 거기시라 예전이나 달라진 것도 잘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로 위로아닌 위로하고 어서 빨리 일어나시기나 하라고 떠들었는데....

얼마전 위암으로 후배하나를 앞서보내고 새삼 걱정스러워져 연락드려도 답장이 없길래 치료에 열중하시나보다 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부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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