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냉장고에 들어간 코끼리

시나래 마을의 첫 번째 이야기

by 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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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춤추고 꽃이 노래하는 시나래 마을에는 덩치는 산만하지만 소심하기 짝이 없는 아기 코끼리, 아띠가 살고 있었어요. 아침이 밝아 오자 기다렸다는 듯 해님은 아띠의 방에 있는 창문을 신나게 두드렸습니다.


“우웅.”


아띠는 몸을 뒤척이며 햇살을 피해 이불로 눈을 가렸어요. 하지만 코를 간지럽히는 고소한 땅콩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죠. 배가 꼬르륵. 아띠의 무거운 눈이 서서히 움직였어요.


“아띠야 밥 먹으렴.”


문 밖으로 엄마 코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엄마.”


아띠는 침대에서 일어나 코로 이불을 가지런히 갰어요. 창밖에는 새가 아띠를 보며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아띠야. 놀자.”


밥을 먹고 나자 창밖에서 친구들이 아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당장 안 나오면 우리끼리 논다?”

“빨리 나와. 덩치만 큰 멍청이야!”


아띠는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아띠의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쿵 쿵 바닥이 울렸습니다. 그러자 자그마한 토끼, 다람쥐, 생쥐 친구들의 몸이 붕붕 떴어요.


“너 때문에 자꾸 우리가 날아가잖아. 조심히 좀 다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다람쥐가 아띠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어요. 생쥐는 입에 물고 있던 기름과자가 떨어지자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아띠는 코로 머리를 긁적였어요.


“미안해. 애들아.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친구들은 아띠의 말을 따라 하며 비아냥거렸어요. 친구들이 짓궂기는 했어도 아띠는 그들이 좋았어요. 그래도 친구들은 아띠와 같이 놀아주는 걸요.


“오늘은 무엇을 하면서 놀까?”


생쥐가 아띠의 코를 잡아당기며 물었어요.


“당연히 숨바꼭질이지.”


토끼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어요. 아띠는 시무룩해 보였어요. 아띠는 숨바꼭질이 싫거든요.


“나는 오늘 다른 거 하고 싶은데….”


아띠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중얼거렸어요. 친구들은 아띠의 말을 들은 채 만 채, 누가 술래를 먼저 할지 가위, 바위, 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띠는 코를 구부려 가위를 냈답니다.


“뭐야, 내가 술래야?”


생쥐는 계속 집어먹던 과자 봉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었어요.

술래인 생쥐가 나무에 얼굴을 감추고 숫자를 세는 사이 친구들은 구석구석 숨기 시작했습니다. 아띠는 친구들이 숨어 있는 이불 밑에 숨으려고 했어요. 아띠의 코가 이불을 들치자 친구들은 갑자기 쏟아진 빛에 눈을 가리려 팔을 휘저었답니다. 사나운 눈매를 하고 그들은 말했어요.


“네가 여기에 있으면 들킨단 말이야.”

“맞아. 다른 곳으로 가.”


아띠는 코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어요.


“미안해.”

“냉장고에나 숨던지. 네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토끼가 깔깔댔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다람쥐도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어요. 하지만 아띠는 코를 다시 들어 올리며 눈을 반짝였어요. 그리고 다시 쿵쿵거리며 친구들이 있던 방을 나섰습니다.


“뭐야?”


열을 다 세고 친구들을 찾으러 나선 생쥐는 아띠를 보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띠가 글쎄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어요. 그것도 등 부분이 냉장고에 꽉 끼인 채 말이에요. 아띠는 구슬 같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담고선 울기 시작했어요. 울음소리에 달려온 토끼와 다람쥐 친구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아띠를 바라보았어요.


“어떻게 그런 곳에 들어갈 미련한 생각을 할 수 있니?”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다람쥐가 말했어요.


“하지만 도전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잖아.”


아띠는 코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어요. 굵은 눈물은 코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비처럼 떨어졌어요.


“어휴. 우리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바보같은 탓이라고.”


친구들은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어요. 냉장고에 박힌 채로 아띠는 홀로 남겨 있었지요. 아띠는 몸을 흔들면 냉장고에서 빠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발과 몸을 열심히 움직여 보았지요. 하지만 몸이 빠지기는커녕 냉장고 통째로 들려 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엄마와 아빠 코끼리는 아띠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아가야. 무슨 일이니?”


아띠는 울음을 삼키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엄마와 아빠가 화내지는 않을까 무서웠지요. 하지만 엄마 코끼리는 코로 아띠를 꼭 안으며 말했어요.


“도전해 보는 건 좋은 일이란다 아띠야. 실패할 때도 있지만 얻는 건 있잖니? 이제 앞으로는 아띠가 냉장고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아띠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보다 우선, 아띠의 등에 붙어 있는 저 냉장고부터 빼내야 할 것 같은데….”


아빠 코끼리는 냉장고를 꽉 잡아 당겼어요. 하지만 힘이 너무 셌는지 아띠가 같이 끌려가 버렸습니다.

결국 아띠는 다음날 엄마 코끼리의 코를 잡고 딱따구리 아주머니네 공방에 찾아갔어요. 딱따구리 아주머니는 사정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나만 믿어.”


아주머니의 부리는 냉장고를 빠르게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냉장고는 부서지지 않았어요.


“내 부리로는 힘들어. 드릴을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한참을 두드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자 아주머니는 땀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드릴이라고요?”


아띠는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어요. 아띠가 뛰자 큰 몸 때문에 앉아 있던 의자가 흔들렸어요. 결국, 쿵 하고 아띠는 바닥으로 넘어졌습니다.


“에고. 비켜줘….”


딱따구리 아주머니가 아띠의 몸에 눌려 바둥거리고 있었어요. 아띠는 미안해하며 바로 일어났습니다.

공방에서 해결되지 않자, 아띠와 엄마 코끼리는 악어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냉장고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이건 제가 해결할 수가 없겠네요.”


옆에 있던 악어새 간호사 언니도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주황빛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지만 아띠는 여전히 냉장고에 끼어 있었습니다. 별 다른 수 없이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갔어요. 해가 지고 시나래 마을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해결방안 없이 아띠는 판판한 강철 등판을 가진 코끼리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어요. 친구들은 아띠를 보며 매일같이 놀려댔죠. 우둔하다고 말이에요. 비는 그사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어요. 처음에는 비가 온다고 즐거워했던 주민들도 조금씩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비가 점점 많이 내렸거든요.


“아띠야. 일어나.”


엄마 코끼리가 아띠를 빠르게 흔들었어요.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에 아띠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번쩍. 번개가 어두운 하늘을 빠르게 갈랐어요. 아띠는 그 광경에 잠이 확 깼어요. 침대 밑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띠야. 빨리 짐 챙기렴. 산 위로 올라가야 해.”


아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끼는 장난감들을 보자기에 싸 코로 들었어요. 물은 빠르게 불어나 아띠의 턱 끝까지 차올랐어요. 동네의 악어 선생님, 문방구 하마 할아버지들도 저마다 짐을 챙겨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띠도 엄마와 아빠를 따라 산을 향했어요. 그때였어요.


“도와주세요.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


등 뒤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목에 힘을 주고 크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출렁이는 물 위, 과자 봉지에 힘겹게 붙들려 있는 생쥐가 보였습니다. 빠른 물살에 과자 봉지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아 버릴 듯 보였어요.


“내가 도와줄게!”


아띠는 코로 생쥐를 집어 들었어요. 아띠가 등 위 판판한 냉장고 위에 생쥐를 올려두자 그제야 생쥐는 물을 뱉어내며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살려줘!”


무너지고 있는 나무 위에서 다람쥐가 소리쳤어요. 다람쥐의 두 눈에는 잔뜩 겁이 담겨 있었어요.


“기다려. 구해줄게!”


아띠는 코를 들어 올려 다람쥐에게 뻗었어요. 그런데 글쎄 다람쥐가 나무 사이에 몸이 끼어 있지 뭐에요. 꽉 잡아 빼려고 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았어요. 뭉툭한 아띠의 코는 다람쥐를 세밀하게 잡아끌지 못했지요. 다람쥐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한번 흘러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았답니다.


“나는 이렇게 죽는 거야?”


나무 틈에 끼인 채로 다람쥐는 흐느꼈어요. 아띠 등에 타고 있던 생쥐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나무를 세게 치면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곧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렇게 하게 되면 나무가 더 빨리 무너져서 우리도 쟤도 위험해질지 몰라.”

“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잖아? 우선 해보자.”


생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띠는 호흡을 크게 내쉬었어요. 그리고 빠르게 물살을 가르고 나무로 돌진! 쾅하고 아띠의 몸이 나무에 부딪히자 다람쥐가 사이에서 빠져나와 공중을 돌았습니다. 아띠는 재빠르게 코로 다람쥐를 받았어요. 아띠는 다람쥐를 부드럽게 냉장고 위에 올렸어요. 나무가 채 물에 가라앉기 전, 다람쥐의 집도 잊지 않고 구해냈답니다. 그렇게 아띠는 남아있던 자그마한 동물들을 구해냈어요. 냉장고 위에는 어느덧 많은 동물이 안도하고 있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울고 있던 토끼를 머리 위에 얹고 아띠는 산을 올랐어요. 아띠가 젖은 발로 땅을 디디자 작은 동물들은 그 진동에 덜컹거렸어요. 그들은 냉장고 모서리를 꼭 잡았지요. 가운데 있던 동물들은 서로를 붙잡았어요. 흔들렸지만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아띠는 주민들이 모여 있던 곳에 도착했어요. 아띠가 도착하자 걱정하고 있던 생쥐네 가족들이 울면서 달려왔어요. 생쥐뿐만 아니라 토끼, 다람쥐 등 다른 가족들도 아띠에게 뛰어왔습니다.


“아띠야. 고마워.”


다람쥐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어요. 다람쥐는 품속에서 도토리를 꺼내 아띠에게 선물했습니다.


“나도 너무 고마워. 덕분에 살 수 있었어.”


토끼도 생쥐도 그리고 다른 동물 친구들도 아띠에게 고마워했어요. 친구들의 가족들도 아띠를 꽃으로 장식해주며 감사해 했습니다. 하늘색, 빨간색, 노란색의 꽃으로 치장한 아띠를 친구들은 따뜻하게 포옹했어요. 작은 동물들은 손을 크게 벌려 아띠의 코와 다리를 껴안았습니다.


비는 점차 잦아들었어요. 어두운 구름 사이로 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시나래 마을에는 다시 푸른빛이 찾아들었지요. 마을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고, 집도 가게도 다 휩쓸려갔지만, 주민들은 다시 마을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난리가 일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냉장고는 단단히 아띠의 등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좋은 생각이 있어요!”


생쥐가 무슨 생각이 있다는 듯 나섰어요. 아띠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냉장고를 당기는 거예요!”


아띠의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우리가 이미 당겨보았단다. 하지만 꿈쩍도 안 하더구나.”

“아니에요.”


생쥐는 웃으며 말을 이었어요.


“기름을 이용하는 거죠!”


생쥐는 기름과자 봉지를 들어 보였어요. 생쥐의 말에 악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해볼 만해. 기름이 아띠의 끼인 부분을 매끄럽게 할거야.”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띠의 눈이 반짝였어요.


“어떻게 될지는 해봐야 알 수 있지만.”


아띠는 좋다며 코를 흔들었어요. 이제 슬슬 커지는 몸통 탓에 냉장고에 박힌 부분이 아파졌거든요.

주민들은 기름을 잔뜩 가져왔습니다. 옥수수기름, 해바라기 씨 기름과 올리브에서 나온 기름 등 저마다 큰 통에 가득 담아왔지요. 아띠네 부모님은 땅콩기름을 한 아름 챙겨 나왔습니다. 아띠는 고소한 땅콩의 향에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아띠의 몸 구석구석 기름을 바르고 끈으로 냉장고를 단단히 묶었습니다. 모두 준비를 마쳤어요. 아띠 엄마와 몇몇 주민들은 아띠를 아빠와 다른 주민들은 끈을 잡았어요. 그리고 하나, 둘! 모두가 동시에 뒤로 당기자 아띠의 몸이 냉장고에서 쑥 빠졌어요. 주민들은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아띠와 냉장고는 각자 반대방향으로 나가떨어졌죠. 아띠의 몸에서 냉장고가 떨어지자 주민들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아띠가 크게 기쁨의 울음을 부르짖자 그제야 모두 환호했습니다. 아무런 탈 없이 아띠가 냉장고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아띠야 축하해.”

“축하한다!”


친구들은 박수를 보내며 진심으로 기뻐했어요. 새들은 하늘에서 꽃가루를 뿌려 아띠를 축하해주었지요.

그날 밤, 별이 마을에 쏟아지듯 박힌 날 주민들은 냉장고를 가운데 두고 축제를 열었어요. 각자 맛있는 요리들을 준비해 와 주민들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지요. 냉장고 위에는 다채로운 음식들이 놓였어요. 큼직한 요리도, 자그마한 요리들도 모두 놓여 있었지요. 냉장고 옆에는 큰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어요.


“비켜, 비켜!”


이발사 코뿔소 아저씨와 아띠의 아빠가 큰 솥을 모닥불 위에 올렸어요. 솥은 무엇 때문이냐고요? 아띠를 냉장고에서 빼내고 난 뒤 많은 양의 기름이 남았거든요.


“좋아, 내 차례네.”


솜씨 좋은 요리사 족제비 형의 손에서 싱싱한 채소들은 맛있는 튀김이 되었답니다. 아띠가 제일 좋아하는 땅콩도 맛있게 튀겨졌답니다. 아띠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개구울.”


개구리 촌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끌벅적했던 주민들은 조용해졌어요. 짧은 기침을 하고 그는 말을 이었어요.


“우리 주민들이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을 복구하는 데는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 함께 힘내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안전히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을에서는 환호 소리가 울렸어요. 모두 아띠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띠! 아띠!”


주민들은 홍수 속에서 마을을 구해낸 아띠에게 박수를 보냈어요. 아띠는 온몸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날 밤이 짙어가도록 시나래 마을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답니다. 냉장고 옆, 별빛보다 밝은 모닥불은 모두의 미소를 안고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땅콩 냄새를 풍기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