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페라테에 빠진 생쥐

시나래 마을의 두 번째 이야기

by 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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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평화로운 시나래 마을. 잠깐, 정말 평화로운 거… 맞나요?


“이게 몇 번째야!”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어요. 나뭇가지 위에서 깃털을 정리하던 새도 깜짝, 땅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던 두더지도 깜짝. 옆집, 앞집, 뒷집 그리고 그 옆의 옆집까지도 들릴 만큼 큰 소리였어요. 다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누군가를 떠올렸지요.


‘라라군.’

‘이건 분명히 또 라라겠어.’


이 고함의 주인은 초록색 지붕의 초록 문이 눈에 띄는 작은 집이랍니다. 작은 초록 문이 열리며 연한 회색빛의 얼굴에 촉촉한 분홍 코를 가진 생쥐, 라라가 질질 끌려나왔어요. 라라의 엄마는 라라에게 짐짓 화난 얼굴로 무어라고 야단을 치네요. 한 번 가까이 가서 들어볼까요?


“라라. 너 정말 이렇게 말 안 들을 거야? 엄마가 뭐라고 했어.”

“....”

“라라!”

“앞으로 안 그럴게요.”

“그리고 또?”

“잘못했습니다….”


라라의 엄마는 코를 실룩대며 양팔을 가슴 앞에 단단히 꼬았어요. 라라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반성하는 생쥐의 얼굴이 아니었어요. 라라의 입이 삐죽 정도가 아니라 무슨 코끼리 코만큼이나 튀어나와 있었거든요. 엄마 생쥐는 몸속 깊은 곳부터 한숨을 끌어와 내쉬었어요. 이 맹랑한 생쥐를 어쩌면 좋을까요.


라라는 시나래 마을의 유명한 장난꾸러기예요. 스스로를 ‘작고 용맹한 기사’라고 부르며, 전혀 기사 같지 않은 행동만 일삼았지요. 크지만 순한 동물 친구들을 놀리거나, 친구들이 어려워할 놀이만 골라서 골탕을 먹였어요. 얼마 전에도 코끼리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선 못된 말로 무시했답니다.


라라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어요.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작아? 내가 애들 중에서 제일 작아.’


울먹이는 라라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엄마는 작지만 강한 생쥐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용감한 생쥐가 해적 선장 곰과 그 부하들인 호랑이, 물소, 사자 등을 무찌르는 이야기였어요. 자그마한 몸짓으로 큰 덩치들을 이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라라는 귀를 쫑긋거렸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려준 게 문제였나봐요. 라라는 그 이후로 전처럼 움츠러들지 않았어요. 다만, 덩치만 크면 괴롭혀도 된다고, 못된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문제 생쥐가 되어버린 라라의 모습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답니다.



“이겼다!”


라라는 자그마한 원통 터널 위에 올라서서 장난감 칼을 높이 들어 올렸어요. 플라스틱 칼이지만 은색으로 코팅이 된 탓에 빛을 받아 반짝반짝했지요.


“나는 일등, 콩이가 은메달, 숭이는 동….”


라라의 칼끝이 아띠를 향했어요.


“넌 또 꼴등이네.”


아띠가 민망한 듯이 코로 얼굴을 가렸어요. 그렇지만 코끼리의 커다란 얼굴이 작은 코로 가려질 수는 없었지요. 코는 겨우 눈만 가렸답니다.

아띠의 발은 정글짐에 끼어있었어요. 다행히 깊게 박힌 것은 아니라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답니다.


“여기는 너무 작아. 우리 다음번에는 다른 곳에서 놀자.”


아띠의 용기 있는 한 마디는 라라의 날카로운 타박에 쓱싹 베이고 말았어요.


“여기 말고 놀이터는 없잖아. 그리고 크기 때문이라면 핑계 대지 마. 나한테 여기는 오히려 큰 정도라고.”

시나래 마을에는 큰 놀이터가 하나 있어요. 작은 체구, 중간 체구를 가진 꼬마 친구들이 많아서 놀이기구들은 대부분 크지 않은 편이었지요. 그래서 큰 친구들은 보통 공원에서 달리기하거나 운동경기를 벌이고는 했어요. 하지만 아띠는 그들이 주로 하는 거친 운동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심지어 다른 큰 동물들과는 나이 차이도 크게 나서 친구와 노는 것 같지 않았지요. 아띠는 작은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답니다.


“그래도 여긴 너무 작은데….”

“숨바꼭질도 싫다, 장애물 달리기도 싫다, 그러면 뭐 하자고.”


아띠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기쁜 듯이 손뼉을 쳤어요.


“그럼, 술래잡기는 어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 한 발짝에 우리는 열 번 아니 백 번을 뛰어야 한다고!”

하지만 라라에게는 턱도 없었죠. 뭐, 옆에서 토끼 콩이는 이길 자신이 있었는지 라라의 말에 아쉬워했지만요.



“지금 이게 말이 되니?”


엄마가 동그란 눈을 길게 찢고선 매섭게 노려보았어요. 라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요.


“아니요….”


그렇다고 넘어갈 엄마인가요. 초록집 생쥐, 라라의 엄마는 아주 강단 있기로 유명했어요.


“알면서 그래? 응? 아는 생쥐가 그러는 거야?”

“죄송해요….”

“죄송하면 다니? 라라, 너. 네가 하는 건 나쁜 생쥐나 하는 짓이야. 친구 괴롭히고. 응?”

“그래도… 나는 작은 동물을 보호해야….”

“무슨 보호야. 친구들 배려도 못 하는 너가 기사가 될 수 있겠어?”


라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나는 기사에요! 나는 용감한 생쥐 기사라고요! 같이 안 논 것도 아니고, 그냥 더 많은 애들이 재밌어하는 놀이를 한 게 뭐가 나빠요.”


라라는 빽 소리를 지르고 초록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어요. 라라의 엄마는 갑작스러운 라라의 행동에 잠시 멍하게 있었지요. 곧 정신을 차리고, 라라를 불렀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라라는 터덜터덜 걸었어요. 하늘이 붉게 물들고,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지요. 엄마는 노을을 보며 편안한 시간이라고 미소지었지만, 라라는 태양이 뿜어내는 붉은 빛이 마치 분노로 붉어진 제 얼굴 같았어요. 라라는 볼을 부풀리고 해를 등진 채 마을 깁숙이 들어갔지요. 이크. 이때 즈음이면 다들 가게를 닫고 저녁놀을 즐기며 산책하러 나오는데…. 지나가던 어른들이 라라를 보고 눈썹을 씰룩였어요.


“라라 아니니?”

“아니에요!”


라라는 얼굴을 푹 숙이고 마구 뛰었어요. 목적지는 없지만, 우선은 다른 동물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요.


“라라 못 보셨어요?”


라라는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라라는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를 피해 몰래 화단으로, 나무로, 창틀로 도망쳤지요.


‘여기면 안 들키겠지?’


라라는 창틀에 붙어서 숨어 있으려고 했지만, 라라는 그만 중심을 잃고 창문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너무 갑작스레 떨어진 탓에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라라는 컵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지요.

라라는 순간 마음속으로 비명을 마구마구 질렀어요. 그도 그럴 게 컵 속은 너무너무 뜨거웠거든요. 누구 집인지, 어디인지도 모르니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요.


‘으악. 이거 뭐야. 빨리 나가야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일어났지만, 미끄러운 벽에 손이 다시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풍덩.


이번에는 더 아래까지, 깊이 잠기고 말았지요. 하지만 막상 몸을 전부 담그고 숨을 쉬러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었을 때는, 그렇게 뜨겁지 않았어요. 오히려 따뜻했지요. 몸이 흐물흐물 녹을 만큼 말이에요. 그리고 보니, 컵에 담겨 있던 것은 커피였어요. 라라의 엄마가 마시면서 피로가 풀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음료 말이에요. 투명한 갈색의 액체에서 고소한 향이 풍기고 있었지요.


‘엄마는 항상 어리니까 마시면 안 된다고, 못 마시게 했었는데.’


라라는 기회라는 생각에 속으로 킬킬거렸어요. 그리고 손을 모아 한 모금 들이켜 보았지요.


“악. 퉤퉤.”


이것 참. 라라한테 아메리카노는 너무 썼나 봐요. 이걸 왜 마시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라라는 코 아래까지 몸을 푹 담갔어요. 맛은 없지만, 어쨌든 따뜻하고 온몸이 풀어지는 기분인걸요. 야단을 맞아 속상했던 일, 분했던 일, 화나는 일 모두가 따뜻한 커피 향에 씻겨 나가는 것 같았어요.



“라라. 대체 어디 있다 온 거야.”


커피가 식을 때까지 컵 안에서 나른하게 졸던 라라는, 날이 어두워지자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야단맞는 게 싫어 도망치기는 했지만, 딱히 갈 곳도 없었거든요. 엄마는 라라에게 한참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눈을 가늘게 떴어요.

야단을 치느라 알아채지 못했지만, 라라를 보니 몸에서 짙은 갈색의 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킁킁. 엄마는 라라의 털 냄새를 맡았지요.


“커피잖아? 몸에 커피는 또 어디서 묻혀 온 거야?”


엄마의 잔소리는 더욱 길어졌어요. 라라에게는 절실히 커피가 필요했지요. 물론 마시려는 건 아니고, 몸을 담그려는 것이었지만요.


이튿날, 라라는 장난을 치다가 엄마가 아끼는 접시를 깨버리고 말았답니다.


“라라! 넌 정말 애가….”


라라는 또 달렸어요. 오솔길을 지나, 나무들을 지나, 건물들 사이를 지나. 터덜터덜 걷던 라라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어요.


‘그냥, 어디였는지만 보자.’


그렇게 라라는 몰래 어제 들어갔던 곳 근처로 가 보았어요. 밝은 곳에서 보니, 곰 아저씨네 카페가 있는 곳이었어요. 라라가 들어갔던 곳은 카페와 이어진 아저씨네 집이었지요. 곰 아저씨는 가끔 본 적이야 있지만, 덩치도 너무 크고 험악한 인상에 무서워서 항상 멀리 떨어져서 인사하곤 했답니다. 그대로 돌아갈까, 하다가 커피가 또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살펴보기만 하기로 했어요. 나무를 타고 창문을 들여다보니, 어제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놓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라라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 다짐한 듯 한 발짝 창을 열고 몰래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또 한 발짝 커피에 발을 가져다 대니 발끝부터 귀 끝까지 털이 파르르 떨리며 몸이 순식간에 따뜻해지는 것 같았어요. 라라는 결국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잔 속으로 몸을 담갔답니다.


그렇게 혼날 때마다, 사고를 칠 때마다 라라는 아무도 몰래 곰 아저씨네 부엌을 찾곤 했어요. 가끔 밖에 누가 있는 것처럼 기척이 들리곤 했지만, 다행히 누군가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어요. 처음 소리가 들릴 때, 털끝을 곤두세우던 라라도 이제 작은 소리는 무시했답니다.

커피의 종류도 커피잔의 모양도 매번 바뀌곤 했어요. 아메리카노뿐 아니라 어느 날은 에스프레소가, 어느 날은 카라멜마키아토가 담겨 있었어요. 커피잔도 둥그스름했다가 네모나기도, 높았다가 낮아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낮은 커피잔만이 있었지만요. 라라는 여러 커피 중에서 카페라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답니다. 따뜻할 뿐 아니라 우유의 폭신폭신함이 너무 좋았어요. 마치 구름을 휘젓는 기분이었지요. 그리고 가끔 입으로 들어오고 마는 음료의 달짝지근함도 좋았어요.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는 너무 썼고, 카라멜마키아토는 너무 달아서 몸이 설탕에 절여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따뜻한 라떼에서 몸을 녹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평소보다 컵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어요. 털이 너무 많이 자란 탓에, 젖은 털이 전보다 훨씬 무거워졌기 때문이었어요.


“왜 이렇게 털이 많이 자랐지? 다듬으러 가야겠네.”


집에 돌아온 라라를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밖에서 대충 말리고 들어온 탓에 털이 더 부풀어 올라 있었거든요. 아마 진짜 길이보다 더 길어 보였을 거에요.

라라는 정말이지 미용실에 가는 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 공작새 아저씨의 미용실에 갔어요. 공작새 아저씨의 실력은 확실했지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미용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거기다가 자꾸 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엄마가 라라를 구박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가 아저씨랑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라라에게 잔소리를 했어요.


“봐봐. 다람이는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다는데, 너는 항상 놀기만 하고. 응?”


라라는 미용 중이라 가만히 있어야 하니, 손으로 귀를 가릴 수도 없었어요. 라라는 엄마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저씨 털을 전부 밀어버리는 상상을 했지요.


“음. 돌아가는 길에 커피 사서 가야겠다.”


라라의 털이 예쁘게 정리되고, 엄마와 공작새 아저씨의 수다가 다 끝나자 엄마는 라라를 이끌고 곰 아저씨네 달곰커피로 향했답니다. 낭패에요. 하필 곰 아저씨네 카페라니.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라라는 창백해졌어요. 곰 아저씨야 당연히 라라가 벌인 일들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주치기는 껄끄러운걸요. 라라는 최대한 엄마의 뒤에 붙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요. 라라 엄마는 얘가 왜 이래, 라고 말하면서도 라라가 붙어 있는 게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어요.

라라는 힐끔 계산대를 올려다보았어요. 다행히 오늘은 곰 아저씨가 아닌 알바생인 너구리 누나가 있었답니다. 라라는 그제야 엄마의 등에서 떨어져 편안하게 서 있었어요. 엄마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요.


“고마워요. 커피 맛이 너무 좋아요.”


엄마는 너구리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총총총 카페를 걸어 나왔어요. 손에는 작은 테이크 아웃 잔이 꼭 들려 있었지요.


라라가 곰 아저씨네 커피잔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익숙해진 어느 날,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어요. 라라는 언제나처럼 커피 향을 맡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지요. 그때, 멀리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어요. 멍하니 있던 라라는 깜짝 놀랐답니다. 평소 같은 작은 소리가 아니었어요. 누군가가 이곳으로 올지도 몰라요. 라라는 황급히 일어났어요.


“아저씨! 커피 가루 받으러 왔어요.”

“엄마 심부름으로 왔구나. 부엌 안쪽에 놔뒀다.”

“가지고 갈게요!”

“그래…. 아, 잠깐!”


곰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지만, 작은 코끼리의 발은 이미 문지방을 넘고 있었어요. 라라가 컵에서 나와 황급히 창문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사이, 방금 들어온 아띠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답니다.


“어?”

“아….”


라라의 젖은 발은 그대로 책상 위에 딱 붙어버렸어요. 라라는 당혹과 부끄러움으로 몸을 붉게 물들였답니다. 아띠는 예상하지 못한 손님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어요.


“라라? 너가 왜 여기….”

“그게…, 나는….”


곰 아저씨가 아띠의 뒤를 따라 빠르게 들어왔어요. 곰 아저씨를 보니 라라는 정말 울고 싶어졌지요. 전에 들었던 해적 곰 선장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는 무서운 곰 선장. 라라는 곰 아저씨가 곰 선장이 되어 마음대로 집에 들어온 자신을 혼내는 상상을 했지요. 너무 무서웠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요. 라라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그런데, 곰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라라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답니다.


“아, 내가 라라를 초대했단다. 작은 동물들을 위한 커피 온천을 만들고 있는데, 라라가 도움을 주고 있거든.”


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곰 아저씨를 보았어요. 곰 아저씨는 윙크하며 라라를 보고 웃었답니다.


아띠가 돌아가고, 라라는 총총걸음으로 곰 아저씨에게 다가갔어요.


“아저씨…. 아까는 감사했어요.”


라라는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반으로 접어 배꼽 인사를 했지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라라는 한 번 더 몸을 접었어요. 곰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 손가락으로 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답니다.

“하하. 괜찮아.”

“제가 또 고백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라라는 쭈뼛거리며 코를 찡긋거렸어요.


“저 집에 몰래 들어온 거 오늘만이 아니에요. 전에도, 그전에도 커피에 몰래 들어가곤 했어요. 죄송합니다! 아저씨가 마신 커피, 실은 제가 들어갔던 것일지도 몰라요.”


라라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아무리 아저씨가 착해도 이번 일 만큼은 넘어가지 않을지 몰라요. 무언가 고민하던 아저씨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어요.


“라라야. 실은 말이다, 나도 사과해야 할 것이 있구나. 내가 너에게 비밀로 한 것이 있어.”

“네?”

“네가 커피에 들어간 첫날부터 난 알고 있었단다.”

“네? 어떻게요?”

“그야, 커피가 묻은 발자국이 사방에 찍혀 있었는걸.”


라라의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되었어요.


“첫날, 이튿날. 네가 커피에 들어갔다가 나온 걸 보고, 매일 다른 커피들을 창가에 놔두었단다. 네가 커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개운해진 것 같았거든. 항상 들어가기 전에는 슬퍼 보였는데 말이야.”


라라는 곰 아저씨가 라라를 위해서 컵도 더 낮은 것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라라는 감사함과 쑥스러움이 뒤섞인 알 수 없는 감정에 코를 두어 번 찡긋거렸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어요.

“감사해요. 아저씨.”

“뭘. 그리고 나도 고맙다.”

“아저씨가요?”

“그럼. 아까 아띠에게 말했던, 커피 온천 말이다. 널 보고 떠올렸거든. 진짜로 커피 온천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곰 아저씨는 엄지를 내밀어 보였어요. 씨익 웃는 곰 아저씨의 입안에 가득 보이는 이빨들이 더는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지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돌아가는 길, 라라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곰 아저씨는 몰래 들어온 라라를 혼내지도 않고, 라라를 위해서 매일 매일 작은 온천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리고 라라가 알면 부끄러워할까 봐 들키기 전까지 모른 척해주었어요. 작은 동물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말이에요. 라라는 그동안 자기가 지니고 있던 큰 동물에 대한 오해가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그동안 아띠를 괴롭혔던 게 정말 미안했지요. 작은 라라를 신경 써준 곰 아저씨처럼 라라도, 몸집이 큰 아띠를 배려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라라는 그림자가 길어지고 길어질 때까지 계속 고민에 빠졌답니다.


며칠 뒤, 라라와 아띠 그리고 친구들은 또 함께 놀기로 했어요.


“우리 장애물 달리기하자.”


라라가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말했어요. 그 말에 아띠의 귀가 축 처졌지요.


“난 또 꼴등이겠네….”


라라가 그 말에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어요.


“우선, 놀이터로 모여!”


시나래 마을 놀이터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놀이터에는 천으로 됐지만 엄청나게 큰 터널이 만들어져 있었거든요.


“이게 뭐야?”


아띠가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렸어요.


“우리가 만든 터널이야!”


라라가 웃으며, 손을 위로 높이 들었어요. 토끼와 원숭이, 다람쥐 친구들도 쑥스러운 듯 코를 긁적였어요. 며칠 전부터 라라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궁리하며 만든 장애물이에요.


“그동안 네가 하기 힘든 놀이들을 해서 미안. 우리도 너랑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생각해볼게.”


라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내밀었어요. 아띠는 해사하게 웃으며 코를 내밀어 손을 툭 쳤답니다. 여전히 라라는 장난꾸러기이지만, 크기가 크다고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는 나쁜 짓은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동물들을 배려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고요. 물론 라라 엄마는 여전히 라라가 눈치가 없고 배려가 부족하다며 혀를 차긴 하지만요.


곰 아저씨의 커피 온천도 대성공! 작은 동물들은 커피잔에 앉아서 더 작은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한답니다. 큰 동물들도 곰 아저씨에게 커피 온천을 만들어 달라고 성화지만, 그건 너무 돈이 많이 든다고 하네요. 커피 온천 때문에 곰 아저씨네 달곰카페는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알바생인 너구리도 곰 아저씨도 매일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항상 북적북적, 시나래 마을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네요.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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