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구리의 산책

시나래 마을의 세 번째 이야기

by 밍이
너구리는 귀찮아.png


너구리 퐁. 달곰 카페를 찾는 시나래 마을 주민들은, 종종 걸음으로 부지런하게 카페 일을 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요. 문제는 모두 잘못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바로 퐁은 너구리가 아니라는 것. 너구리가 아닌 라쿤이라는 것이지요.


“너구리 아가씨.”

“너구리 아니에요.”

“너구리가 아니라고?”

“라쿤이에요.”


실없는 질문과 대답이 계속 계속 이어져도 오해가 풀리지 않자, 이제 퐁은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네. 너구리입니다.”


누군가가 너구리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버려요. 계속 아니라고 해도, 기억하는 동물 하나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며칠째 날이 좋은 시나래 마을. 이렇게 날이 좋을 때면, 카페는 더욱 인기를 끌었어요. 다들 점심에 거리로 나와 짧은 산책을 하곤 했거든요. 달곰 카페의 음료 한 잔씩을 들고 말이에요.


“어, 너….”

“네.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너구리입니다.”


퐁은 포스기를 입력하며, 평소처럼 입력해둔 대답을 뱉었어요.


“너구리 용사!”

“...네?”

“엄마! 너구리 용사야.”


아기토끼는 눈을 반짝이며 퐁을 올려다보았어요. 토끼의 부담스러운 기대에 퐁은 왠지 모르게 칼을 빼 들고 하하, 호탕하게 웃어야 할 것만 같았어요.


“그러네. 너구리 용사네.”


토끼의 엄마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토끼의 말을 인정해버리네요.


“코코아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퐁은 아기토끼의 영문모를 말은 애써 무시하며 토끼에게 음료를 건넸어요. 퐁의 모른 척에도 아기토끼는 싸인 받기 직전의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얼마 전부터 퐁을 대하는 몇몇의 태도가 달랐어요. 고생한다며 작은 다과를 가져다주거나 꽃을 가지고 오는 동물들이 있었는데, 그 ‘너구리 용사’라는 게 이유였을지 몰라요.


‘그런 만화가 유행인가?’


퐁은 집에 돌아가면 대체 그 너구리 용사라는 게 뭔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토끼가 음료를 받아 들고 카페를 나서며 퐁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는요.


“어제는 고마웠어요.”


윙크하고 가는 토끼 엄마와 아쉬운 듯 끌려가는 아기 토끼.


‘어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구리 용사. 바이바이!”


아기토끼는 껑충껑충 뛰며 밖으로 나갔어요. 출입문에 걸어놓은 작은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렸지요.


‘대체 뭔데?’


정말, 무슨 영문인지. 퐁은 찝찝한 기분을 안고 퇴근을 했답니다. 저녁놀이 질 때 즈음에는 곰 아저씨에게 배턴을 건네고 퐁은 하루를 마무리하지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답니다.

퐁이 걸으면서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엄마의 잔소리가 뒤따랐지만, 시나래 마을에 머무는 동안에는 마음껏 행동할 수 있었어요. 전화로 종종 의심받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아닌 척 한답니다.



퐁의 부모님은 아주 멀리 살고 있어요. 퐁도 원래 그들과 함께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항상 책만 읽고 방에서, 공원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퐁을 답답해한 부모님이 퐁을 멀리 여행시키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여러 경험을 하고 오라며, 퐁을 다양한 동물들이 어울려 사는 시나래 마을로 보내버렸어요. 엄마가 오랜 친구인 곰 아저씨에게 전화할 때만 해도, 퐁은 ‘설마’하고 생각했답니다. 퐁은 그가 태어난 라쿤 마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나라, 도시, 마을들은 환상 그 자체였답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건너, 어려운 길이었지만 퐁은 지도를 따라 시나래 마을로 한 발짝, 두 발짝 향했어요. 챙이 달린 모자와 가죽을 엮어 만든 작은 가방은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이곳 저곳 실밥이 터지고 헤져 오랜 창고에서 꺼낸 모양새가 되어버렸지요. 솔직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더 심해질 엄마의 잔소리와 지나온 만큼 힘들 돌아가는 길 때문에 계속 시나래 마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긴 여정 끝에 ‘시나래 마을 방향’이라는 표지판을 봤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퐁은 소가 끄는 택시를 타고 달달 거리며 시나래 마을로 향했어요. 산골짜기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시나래 마을이 보일 거라는 말에, 편하게 좌석에 기대어 풍경 구경에 빠졌답니다. 열려 있는 창 사이로 희미한 바람이 볼을 스치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누적된 피로와 함께, 흘렸던 땀도 바람에 씻기고 있었답니다.


택시가 높은 언덕 위에 올랐을 때, 아래로 넓고 파란 호수와 함께 그 옆을 자유롭게 채우고 있는 시나래 마을이 한눈에 보였어요.


“와!”


항상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던 퐁 입에서도 감탄이 나올 만큼 색깔로 가득 찬 아름다운 마을. 마을은 호수 위까지 이어져 있었고, 몇 겹의 언덕은 크고 작은 건물들로 뒤덮여 있었어요. 그리고 크기뿐 아니라 색이 다양한 건물들 사이에는 굵고 큰 나무가 한껏 부푼 가지와 잎을 자랑하고 있었지요.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그 큰 나무에도 여러 주민이 사는 듯했지요.


“너가 퐁이구나!”


곰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퐁을 반갑게 안았어요. 너무 덩치가 커서 몸이 으스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지만, 오히려 솜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아서 ‘이게 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곰 아저씨의 환대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자, 퐁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답니다. 그 때문에 곰 아저씨는 그렇게 약해서 카페 일은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하네요.



곰 아저씨네에서 머무르기에는 몸의 크기가 너무 달라 퐁은 마을 모퉁이에 있는 황금빌라에 집을 얻었어요. 가족과 함께 살던 집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꽤 깔끔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집 안을 꾸밀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마을 끝자락에서 마을 중심가에 있는 달곰 카페까지 느긋이 산책을 즐기며 출퇴근하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답니다.


퐁은 ‘너구리 용사’로 오해받은 그 날도, 책과 함께 산책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날의 책은 ‘라쿤의 홀로서기’. 혼자 살게 된 후로, 자취나 여행에 관한 책이 손에 집히곤 했어요. 혼자 인테리어도 하고 요리도 하는 여러 동물의 책을 읽어보았는데, 역시 라쿤은 라쿤의 방법이 제일 맞는 것 같았어요. 낙엽의 바스러지는 소리와 퐁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섞여갔지요.

짧은 숲길을 지나가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리지 뭐예요. 신경 쓰지 않고 장을 넘기려고 하는데, 울먹이는 소리와 고함치는 소리 탓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퐁은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슬쩍 옆을 보았어요. 그리고 퐁을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하고 말았지요. 다람쥐들의 동그란 눈들이 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요. 그중 한 다람쥐가 두 손을 톡톡 치며, 퐁에게 말을 걸었어요.


“혹시…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요?”


퐁은 대체 왜 다람쥐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의 간절한 눈빛에 모른 채 하고 갈 수는 없었어요. 정말이지 다른 동물들 사정에는 관심 없는 퐁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하는 부탁을 무시할 정도로 마음이 모질지도 못했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퐁은 무리의 중심으로 다가갔어요. 다람쥐들은 땅 아래보다 나무 위에 모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덩치 큰 다람쥐가 나뭇가지를 붙들고 벌벌 떨고 있었어요.


“아이고, 저 녀석이 말이지 다람쥐면서 나무 타기를 무서워해. 이번에는 좀 성공하나 했더니….”


수염을 길게 기른 다람쥐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더 높이 올라갔지만, 막상 내려올 때는 무서워하며 도통 내려오지 못한다고. 문제는 다른 다람쥐들이 그를 데리고 내려올 만큼 힘이 세지 못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들은 퐁에게 떨고 있는 다람쥐를 구해달라며 허리를 굽혔어요. 퐁은 어렸을 적 나무를 타기야 했지만, 크고 나서는 산책이 유일한 운동이었어요. 그래서 막상 나무를 타려고 하니, 어색하기만 했지요.


“부탁해요.”

“부탁하네.”

“우리 멍충이를 구해주세요!”


퐁은 어설프게 나무에 발을 걸쳤습니다.


“너구리 용사 화이팅!”


응원 중에 무언가 이상한 말도 섞여 있었지만, 나무 타기에 집중하느라 그냥 넘겨 버렸지요. 나무 타기를 한 지는 오래됐지만 그래도 몸이 기억하나 봐요. 나무 끝까지 올라 다행히 무서워하던 다람쥐를 구출해낼 수 있었답니다. 퐁이 다람쥐를 땅에 내려놓자 주변 다람쥐들이 털을 맞대고 뺨을 쓰다듬으며 기뻐했어요. 몇몇은 덩치가 큰 다람쥐의 등을 뚜들기며 잔소리하기도 했지요. 퐁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생각하며 몸을 털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운동으로 평소보다 더 피곤했거든요. 집에 돌아가서 빨리 쉬고 싶었지요. 그때, 다람쥐들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어요.


“용사님. 고마워요.”

‘용사님?’


다람쥐들이 찬사를 늘여놓느라 한동안 놓아주지 않아, 퐁은 길어진 그림자가 사라진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퐁은 지친 몸을 빠르게 씻고 자리에 누웠어요. 침대 옆 협탁 위 책을 집어 들며 실수로 그 옆에 올려둔 도토리들을 치고 말았어요. 도토리들은 옆으로 살짝 구르다가 멈추었지요. 좀 전에 다람쥐들이 감사 선물로 주었던 것이에요. 싱숭생숭한 기분과 함께 퐁은 책장을 넘겼어요. 작가가 직장을 어떻게 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하고 있었어요. 퐁은 책에 금방 빠져들었지요.



퐁이 카페에서 일할 때도 느꼈지만, 시나래 마을 주민들은 다들 크기도 종족도 다르다 보니 서로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친한 동물들끼리는 또 엄청 친했지만요. 모두 가족이거나 친구였던 라쿤 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요. 라쿤 마을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간섭하거나 도와주기 일쑤였는데, 시나래 마을은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각자 일은 각자 하는 느낌이 더 강했어요. 남에게 관심 없는 퐁에게는 이런 부분도 시나래 마을이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였어요.


“앗, 용사님이죠?”

“저는 아닌….”

“다행이다. 좀 도와주세요.”


그런데 요새 왜 자꾸 알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퐁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까요. 퐁은 주변을 홱홱 돌아보았어요. 넘어진 개와 자전거, 당황하는 뱀을 보고 다가오던 몇몇 동물들도 퐁에게 말을 거는 뱀을 보고선 안심한 듯 뒤돌아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어요.


‘왜 나한테만?’


퐁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지요. 하지만 접질린 발을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개를 무시하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뱀이 현관문을 나가던 중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개와 부딪혔다고 해요. 퐁은 또 늦어지는 귀갓길을 생각하며 개를 부축하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그 이후로도 퐁의 저녁 산책길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생겼어요. 어느 날은 어린 수달의 나무배를 고쳐주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황새의 잃어버린 보자기를 찾아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또 하루는 마을의 유명한 잔소리쟁이 라마 영감을 마주치기도 했지요.


“혹시 이 노인을 좀 도와줄 수 있겠나?”


퐁은 못 들은 척하려고 했지만….


“쿨럭쿨럭.”


라마는 퐁이 돌아볼 때까지 기침을 거칠게 했답니다. 그러다가 아주 침까지 뱉을 기세였지요. 결국 퐁은 라마 할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길쭉한 나무를 찾아왔어요. 할아버지는 고마워하며, 퐁이 구해준 나무를 짚고 걸어갔어요.


날이 갈수록 퐁의 집에도 색다른 선물이 쌓여갔답니다. 물건도 있었지만 대부분 간식이었어요. 그중에는 퐁이 처음 보는 음식도 있었지요.


‘이건 무슨 맛일까?’


솜처럼 부드럽고 사탕처럼 달다는 그 음식이 다른 것들보다 제일 궁금했어요. 퐁은 이 보드라운 것을 먹어보려고 물에 씻었습니다. 깨끗이 먹는 게 퐁의 신조거든요. 그렇지만 퐁이 잔뜩 기대하며 솜사탕을 물에 집어넣고 빼내자 그것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요.


“거짓말….”


퐁은 물 속에서 손을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어요.

이렇게 가끔 제대로 쓰이지 못한 선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즐길 수 있었어요. 퐁은 선물들을 보면서 남몰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렇게 다른 동물들을 도와주는 게 여전히 귀찮지만 익숙해진 퐁은 평소처럼 저녁 산책을 하러 가고 있었어요.


“앗 어떡하지!”


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최대한 모른 척을 했을 텐데, 습관이 참 무섭지요. 그런데 반대편에서 퐁과 똑같이 곤경에 처한 햄스터 커플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이 있었어요.


“엥?”

“우와!”


그것도 퐁과 정말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었지요. 퐁과 비슷한 그 동물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어요.


바닥 틈에 끼인 햄스터의 발을 빼주고, 닮은 꼴인 두 동물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어요. 살면서 이토록 닮은 동물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야, 너 진짜 나랑 똑같이 생겼다.”

“뭐…. 그러게.”


퐁과 쌍둥이 같은 동물은 퐁의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았어요. 눈, 코, 입. 둘은 정말 똑 닮았어요. 퐁도 신기한 것은 매한가지니, 그러는 것이 이해는 됐지만 좀 많이 불편했지요.


“너도 너구리야? 우리 가족들도 나랑 이렇게 닮지 않았는데.”

“너구리? 너 너구리야?”

“당연한 거 아니야?”


너구리라는 그 동물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난 라쿤인데.”


퐁도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라쿠운?”


너구리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갑자기 몸을 벤치 뒤로 내밀었어요.


“뭐해?”

“네 꼬리 좀 보게.”

“뭐?”


너구리는 퐁의 꼬리를 보더니 킬킬거렸어요.


“아, 나 아빠한테 들었거든. 너구리랑 닮은 애들이 있는데 라쿤이라고. 근데 걔네는 꼬리에 줄무늬가 있댔거든. 그런데 너 있네.”


퐁은 너구리의 꼬리를 보았어요. 자신의 것과 다른 색깔에 모양도 조금 달랐어요. 그러고 보니 자기보다 너구리의 털이 조금 더 진한 갈색인 것 같기도 했지요.


“이야. 근데 진짜 신기하다. 너랑 나랑 그럼 종족도 다른데 엄청 닮은 거잖아.”


퐁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고 보면, 요새 내가 하지 않은 것 가지고 나한테 감사하다고 하는 어르신들 있었는데 혹시 너가 도와드리고 다닌 거냐?”

“도와? 감사?”

“응. 요새 이것저것 마을에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달라고 하고 있거든. 좀 오지라퍼라.”


퐁은 너구리의 해맑은 얼굴을 쳐다보았어요. 함께 있지 않으면 헷갈릴 것 같은 외모…, 다른 동물들 도와주기….


“설마 네가 너구리 용사야?”

“너구리 용사?”


너구리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어요.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지요.


“아, 처음 만난 꼬맹이한테 언니는 왜 자길 도와주냐고 들었거든. 그래서 뭐라 하기 그래서 용사라고 했는데 소문이 그렇게 났나 보네.”

“아, 너 때문에…!”


퐁은 미간을 찌푸렸어요. 용사라는 오해 때문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면, 피곤하기 짝이 없었지요. 물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 왜 그렇게 오지랖 부리고 다닌 건데.”

“뭐,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다른 동물들이랑 잘 지내고 싶기도 하고, 하나둘 참견하다 보니. 천성인가?”

“으.”

“나 전에 살던 곳에서도 그랬거든. 그래서 다들 날 히어로라고 불렀어. 나중에 일도 도우미나, 봉사 뭐 그런 쪽으로 할까 싶고. 거기서는 나 혼자 해서 조금 심심했었는데 여기서는 둘이라니까 너무 좋은데?”


너구리가 퐁의 어깨를 감싸 안았어요.


“잘 지내자고, 용사들끼리. 아 참, 내 이름은 우리.”

“난 용사 안 해.”


퐁은 가볍게 우리의 손을 어깨에서 떼냈지요.


우리는 퐁에게 같이 동물들을 도우며 지내자고 했지만, 퐁은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어요. 제대로 된 용사를 찾았으니, 이제 자신의 몫은 다 한 셈이었지요. 그렇지만 앞으로도 동물들이 우리와 퐁을 헷갈릴 텐데, 그게 걱정이었어요. 다행히 우리가 자신도 겹쳐 보이는 건 사절이라며, 특색있게 염색을 하겠다고 하네요. 뭐 그렇다고 앞으로 퐁이 다른 동물들을 전혀 모른 척 할 거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겠지요. 어떨 때는 퐁이 먼저 나서버릴지도 몰라요. 말했듯이, 습관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근데 너 어디로 이사 왔어?”


퐁이 마지막 남은 음료를 들이켜며 우리에게 물었어요.


“나? 저기 마을 끝에 있는 황금빌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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