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떠수니 Jan 20. 2021

'집구석'이 처음으로 좋아졌다

집에 마음을 내어준, 어느 날의 고백





글을 쓰던 공부를 하던 무작정 밖을 나섰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구속했고 괴롭혔으니깐. 동네 카페라도 앉아 있어야 안정을 찾고 책 한 페이지라도 제대로 읽었다. 집에 책상을 두고도 카페에서 몇 시간 줄커피를 마시며 공부하던 사람이 나였다. 아이를 낳고도 집에 마음을 쉽게 내어 주지 못했다. 제기랄, 이놈의 집에 앉아 있으면 청소만 하게 된다.



코로나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는 바람에 아이들이 오랜만에 등원했다. 기쁜 마음에 브런치를 혼자 거하게 만들어 먹고, 거실 바닥에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 기간이 길어진 덕분인지 몰라도 우리 집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임신 기간 때도 매일 같이 북카페를 찾아다닌 내가 이상해진 걸까. 요즘은 집에서 집중이 제일 잘 된다. 부엌과 거실에 고정적인 내 작업 공간이 있다. 실체는 없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거나 하원 하기 전엔 후다닥 정리해 한쪽에 몰아둬야 한다. 그 팔자라도 괜찮다. 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해준 자리면 앉아 있는 모든 순간, 내가 빛이 되고 별이 된다.


아이들 흔적도 거실 책상에 그대로 남아있다.


아이들이 등원을 못했을 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거실 한 편에 캠핑의자를 꺼내 앉아 책을 들고 있다.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공부 미련을 떨고 싶은지도 모른다. 책을 한 순간도 놓고 싶지 않은 욕망도 크다. 아이들은 헬조선에서 억지 공부시키기 싫어 대안학교 보내려고 하면서 정작 나는 가열차게 공부한다. 그림도 그린다. 아티스트 데이트(『아티스트 웨이』 책에서 권하는 창조성 회복 활동)를 하겠다고 파스텔로 한글 글자 이미지를 정성스럽게 담아내는 시간도 자주 보낸다.


대학  학부 전공으로 공부의 맛을 알고 공부가 그저 좋았던 나였다.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미국 유학은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다. 퇴사 이후 까미노를 다녀온 이후론 지난 모든 마음이 허무해져서 논문도  쓰고 버티고 있지만 꽂힌 분야가 생기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대학원 석사 전공도 마음이 시키는 분야로 결정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정 하나  때도 지독하게 까다롭게 구는 나인데  실수를 드물게 하곤 한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무엇을 향해 다시 걸어가는 내가 가끔 마음에 든다. '집구석'이라고 말하지 않는 나에게 고마운 요즘. 언제 마음이 돌변할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거실로 가득 들어온 햇살을 즐겨 보련다.



이 글 내용을 정리하다가 만들어 본 영상





매거진의 이전글 눈치 보면서도 그저 행복한 '자유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