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떠날 때면 항상 무거운 카메라를 가지고 나선다. 요즘 세상엔 가볍고 간편한 미러리스도 널려 있고, 초경량 DSLR까지 나왔다는데도 무게 나가는 DSLR을 가져간다. 참 고집스럽고 미련스럽다. 카메라 세상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아마추어에 불과할 뿐이니깐.
첫 DSLR은 아버지가 홈쇼핑에서 싸게 구입하신 니콘 D5000이었다. 고급 기종이 아닌 보급 기종이고 나름 최신 기종이긴 했지만 더 좋은 최신 기종도 나와 있던 떨이 제품. 그래도 나는 이 녀석을 4년 넘게 썼다. 얼마나 뽕빠지게 들고 다녔는지 카메라 바디가 참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들반들할 정도다. 난 이런 손때가 고맙고 소중하다. 그래서 중고시장에 팔 마음도 없다.
나만의 고집스러움이 그냥 좋다. 일부러 비싸고 무거운 장비를 욕심내는 부류도 아니다. 사진 강의를 들으면서 평소에 자주 찍으면서 손에 익은 '나만의 카메라'를 들고 갈 뿐인 거다. 나란 사람은 고급 카메라나 렌즈를 산다고 행복해할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내 수준에 맞고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카메라와 함께라면 행복했다. 무엇이든 내 몸에 딱 맞는 옷이 가장 편한 법이다.
신혼여행과 태교여행 때도 카메라는 필수 준비물이었지만 내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카메라를 가볍게 들고 다녔을 때가 있다. 바로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로 향하던 '까미노(까미노 데 산티아고)' 시절이다. 다들 어깨와 허리 부담을 줄이려고 종이 한 장 버리기 바쁜데 나란 녀석은 1kg가 되는 카메라를 들고 900km를 넘게 걸었다. 6kg 남짓의 가방 무게에도 양쪽 어깨 피부가 다 뜯기고 살점이 밀려 나가는 와중에도 카메라만큼은 두 손에 쥐거나 목에 매달고 다녔다. 대신 트리트먼트와 얼굴 스킨, 수분크림 등을 과감하게 숙소에 기부해 가방을 비웠다. 한국에 있는 지금도 없으면 죽을 것 같은 필수품이지만 카메라는 그만큼 내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외국인 친구들이 "Alicia(내 영어 이름), 넌 포토 그래퍼니?"라고 물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언젠가부턴 까미노에선 "나=Alicia=신경원=포토그래퍼"가 되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어 대면 동무들은 당연한 듯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찍든 신기해했다. 그들이 보기엔 사소한 것들이겠지만 나에게는 사소한 피사체 하나하나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기도 때로는 나의 심정에 맞춰 다독거려주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난 늘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를 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느 물체를 내 삶으로 받아들이기까지도 오래 걸린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손때와 정성, 눈물, 사랑이 가득 담긴 카메라가 더 소중하다. 앞으로도 카메라와 함께 나만의 값진 여행을 만들어 가련다.
나의 카메라야,
네 녀석 하나라면 여정이 그토록 아름답고 감사할 수가 없구나.
항상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