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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Nov 24. 2015

#3 멍하게 파리 경험하기

파리 시청사 앞. 갑자기 몰려든 구름이 파리에 있는 '지금의 나'와 어울린다. 그래서 더 기가 찼다. 멍~~해진다.


2012년 7월 이야기


지난 2012년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는 길(까미노 데 산티아고)을 앞두고 파리를 둘러볼 수 있던 시간은 단 하루. 정처 없이 떠나기로 마음먹고 온 나이기에 '에브리바디 원츠' 명소를 둘러보는 일은 접기로 했다. 일부러 자제한 건 아니다. 내 마음이 시킨 일이다. 이번 기회에 파리는 그냥 멍~하게 부담 없게 둘러보고 싶다. 스스로에게 어떤 부담도 지워주지 않도록 말이다.


  




# 노트르담 대성당(클릭:) 지나치기


프랑스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발걸음 하는 명소.



파리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꼽히는 노트르담 성당에 도착했다. 나폴레옹 대관식(1804)과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 예배(1944) 등 5세기 동안 많은 역사적 사건이 묻어 있는 대단한 대성당인데 별 감흥이 없다. 에펠탑보다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찾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 성당을 둘러보지 않고 무심결에 지나쳤다.



『노트르담의 꼽추』를 읽을 적만 해도 주인공 콰지모도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종을 직접 보고 싶었거늘 지금은 파리를 발발거리며 구석구석 다닐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지금 보니 성당 앞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나 참 기가 찬다.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원래의 나'라면 한 곳이라도 알차게 다니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여행정보와 일정을 완벽하게 정리했겠지.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도 어디선가 닥치는 불안감에 '부디 오늘만 이렇기를..'이라고 주문을 건다.



머릿속엔 순례자 길(이하 까미노)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잘 걸을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냥 심란하다. 이래저래 잡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고딕 양식의 화려함 만큼은 눈에 조금은 들어온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음 번 파리를 찾을 땐 노트르담 성당의 명물, 탑과 종소리는 경험해야겠지? 종에서 흘러나올 파 샵(#)의 옥타브를 들으러, 그리고 종탑에 올라 파리의 여유를 감상하러 반드시 오리라.



근데 노트르담 성당을 왜 그리 냉담하게 지나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정처 없이 걷고 싶은 욕구가 그 시점엔 특히 강했던 것 같다.


그래 앞으로 걸을 날 많으니깐. 그래 그래. 경원아, 조금만 참아 보렴. 너의 소원대로 원 없이 걸을 날이 머지않았어.





#콰시모도의 눈물겨운 사랑 만큼은 떠올라


파리 시청사 앞. 시커멓게 몰려 있는 구름이 그냥 밉다. 그래서 파리도 밉다.




시청 앞 그레브(greve;옛 이름) 광장에 한참 서 있었다. 콰시모도가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사랑하는 여인 에스메랄라를 처형대에서 구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에스메랄라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 바로 이 광장이구나라고 애써 줄거리를 생각은 해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견을 꺼내보기도 한다.



콰시모도는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클로드 부주교로부터 에스메랄다를 구출해 보호했고,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클로드를 죽였다. 클로드 말이라면 완전 복종을 했던 그였는데.. 그만큼 클로드는 나쁜 놈이었으니 콰시모도가 잘한 일이다. 덕망과 학식을 갖췄다고 해도 위선 덩어리인 클로드를 나 역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콰시모도를 생각하는 순간, 검은 구름이 걷혀진다. 하늘도 콰시모도의 진심을 아시는 게지.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시모도의 눈물겨운 노력에 당시 여성들도 환호성을 질렀던 건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였을 것이다. 콰시모도가 절름발이건 꼽추이건, 심지어 애꾸눈이와 벙어리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지랖 넓게 내가 그저 감사한 마음. 남자의 진심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에나 어떻게든 드러나게 돼 있나 보다. 



시커멓던 하늘이 1분 만에 파랗게 돌변했다. 이게 파리 날씨다. 




한결같은 사랑, 그리고 매 순간의 진심어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사한 마음 따윈 예전이나 지금이나 취급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운명의 반쪽'이라고 변명하면서도 그녀를 요사스러운 마귀로 부각하며 사형을 받게 한 클로드 부주교가 정말 싫다. 에스메랄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교수대에 있는 그녀를 나 몰라라 하고, 결국엔 그녀를 배반하고 좋은 집안 규수를 선택해 버리는 기사 페뷔스와 같은 사람도 평생 경계할지어다.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에스메랄라를 바라보는 애잔한 콰시모도의 눈빛이 떠오르는데, 내 옆에는 지금 아무도 없구나. 메라마저 들고 오지 않았다면 외로워서 어째스까나. 그래서 난 지금 파리가 그냥 그렇다.

 



※ 노트르담 대성당 관련 참고 포스트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클릭)

[네이버 카페: 유럽의 든든한 동반자 유랑 '파란바람pooh'님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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