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먼쓰 유럽 허니문 스토리 : 파리
Pray for Paris...
안타까운 파리 소식을 들으며, 지난 파리와 나와의 관계를 다시 떠올려 본다.
이렇게 미워했던 파리인데....
파리는 여전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날씨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해가 떴다, 검은 구름이 떴다가 다시 해 떴다고 좋아하면 그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하루 종일 욕을 부르는 날씨가 바로 파리 날씨다. 개선문 옥상에 올랐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 비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을 선서한다. 덕분에 어두운 개선문을 사진에 담게 되었다.
삐뚤빼뚤한 성격은 날씨는 물론 파리지앵과 파리의 관광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이곳에 발걸음 한 사람들을 지독하게 차갑게 대하고 지독하게 낯설게 만드니깐. 본인들 세상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엄청난 장벽을 세워둔 것 같다.
마담이라... 통용되는 명칭이지만 듣기엔 참 어색하다. 오해를 일으킬 만큼 매우 부드럽게 '마담(Madame)'이라고 부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려는 그다지 없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다른 언어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가득 담겨있다는 느낌만 받은 채 호텔 체크인(check-in)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좀 별로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틱틱거린다는 인상. 영국을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미국 영어 발음에 거부감을 느끼는 걸 보면 영국보다는 미국이 더 싫은가 보다. 나처럼 미국 발음이 익숙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누군가 '불어'로 얘기하면 진짜로 고마운 마음에서인지 요조숙녀처럼 살랑살랑 모드로 바꾼다. 간사하다.
우리 부부는 허니문의 첫 3일을 하얏트 리젠시 에뚜알 호텔에 묵었다. 프랑스 하얏트의 정책만은 특별한 걸까? 호텔리어 같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걸 알면 스위스 출신들은 놀라 자빠질지 모른다. 불어를 사용하지 않는 손님에겐 뭔가 거칠고 반항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서비스가 뭔지 아시는가? 누가 갑이고 을인가? 그렇다. 여기선 내가 을이다.
당황스러웠던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커피포트가 없다는 사실. "하얏트가 왜 이래!" 룸 서비스 담당자한테 전화 걸어 요청을 했는데 1,000개 방이 있다 보니 남아 있는 건 없다고 한다. 하나가 들어오는 대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소식이 없다. 감기 걸렸다고 공갈치면서 "너무 아프다.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고 어필하니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 주었다. 그 물이라도 가져다주어 우리는 그 물로 봉지라면 두 개를 해 먹을 수는 있었다. 이때부터 난 커피포트를 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허니문인데 방을 혹시라도 업그레이드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넌 충분히 좋은 가격에 훌륭한 방을 얻었다"며 딱 잘라 답한다. 그리고 바로 룸키를 건네준다. 물론 방에서 본 파리 시내와 에펠탑 풍경은 죽이게 좋았다. '젠장~'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또 하나. 대빵만 한 침대는 어디 가고 더블침대 두 개가 나란히 합쳐진 룸을 준다. 그렇다고 트윈룸도 아니다. 이 방의 정체는 뭘까? 곧장 로비로 내려가 "통짜로 된 침대가 없느냐. 난 더블룸을 찾았다"고 하니 "거기가 바로 더블룸"이란다. 내가 너무 어이없어하는 걸 보며 "방을 바꿔주겠다"고는 한다. 빈 방을 알려주면서 "직접 다른 방을 확인해보라"고 하지만 역시 똑같은 방. 트윈 침대 두 개를 딱 붙여놓고 더블룸이라고 우기는 건가? '헬! 로우~' 우리 지금 신혼여행 왔거든요? 중간이 금을 그어 놓고 자라는 겁니까? 독일에 살고 있는 선배 말을 들으니 유럽엔 2인용 큰 침대 자체가 없어서 더블룸이 대부분 이런 식이라고 했다.
개선문에 오를 때도 살짝 당황했던 게 생각난다. 입구는 어디란 말인가? 개선문을 둘러싸고 있는 열세 개 도로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찾고 찾아야 했다. 안내판이나 표지판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내가 미쳐 보지 못한 안내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관광대국 프랑스여~ 참으로 이기적이 도다.
조그마한 슈퍼도 오후 9시면 다 닫혀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돈 벌 욕심은 없나 보다. 심지어 샹젤리제의 카페나 레스토랑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깜깜해진 샹젤리제 거리를 흑인 오빠들 한 명 없이 산책하는 맛은 좋지만 뭔가 느껴지는 으슥함에 슬쩍 놀래도 본다. 파리가 로맨틱의 도시, 낭만의 도시라고 불리는 건 왜 일까?
이 호텔은 방에 미니바도 없어 비싼 돈 주고 물을 먹을 수도 없었다. 찾다~찾다~ 호텔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음료수를 샀다. 허름한데 사람들이 꽤 많았고 장사가 잘 되는 가게였다. 나름 철학이 담긴 아저씨만의 샌드위치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 아저씨는 프랑스 사람 같지 않다. 가게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노숙자에게 포테이토 튀김을 하루 이틀 준 게 아닌 사람처럼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잔뜩 봉지에 넣어 주었다. 아무튼 신혼여행 와서 정신없이 사진 찍다 놓쳐버린 저녁. 첫 끼를 이렇게 해결한다.
걸리적거리는 부분은 사실 또 있다. 센강은 어떠한가? 센강 주변을 거닐면 낭만적이지만 시선을 중단시키는 정리되지 않은 나무들이 강가에 많다. 그래서 유람선을 타도 답답한 감이 없지 않다. 그냥 센강 만 믿고 사는 사람들처럼 쓰레기도, 노숙자들도, 크기만 한 나무들도 방치한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아닌데 의식 없는 사람들 마냥 그랬다.
미국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발칙한 유럽산책』에 남긴 파리에 대한 인상에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 맨 마지막에 남긴 말은 격하게 동조하고 싶다. '역시 파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그 말. 미국 작가라 프랑스를 엄청 흉봤지만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게 이해는 되었다.
(*빌 브라이슨 작가는 미국인이라 그런지 프랑스 자체에 엄청난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