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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Feb 16. 2024

"내일 아침 반찬이 달라질 거예요"

반찬보다 묵은 생각이 달라지길 바라며


운전 중에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그날도 무심히 방송을 듣고 있는데 한 부부의 사연을 소개하던 라디오 진행자가 "여자는 예쁘다고 하면 다 좋아해요",
"그러면 내일 아침 반찬이 달라질 거예요"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 순간 귀를 의심하며 해당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기까지 하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이 남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적 자리에서 나눌 법한 성차별적 이야기가 공영 방송에서 라디오 진행자의 입을 통해 듣는 모두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물론  진행자 분도 사연을 보내신 분께 다정히 전하는 말씀이었을 것이지만 여자와 예쁨의 연결고리를 당연시하는 것도, 아침부터 밥상 차리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남편의 빈 말 한마디에 맛있는 반찬을 차려내는 아내의 모습이라니.


며칠을 두고 고민하다가 청취자 게시판에 짧은 건의의 글을 올렸다.


○○프로그램 청취 중 진행자분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 글 올립니다. 공영 방송에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성차별적 발언을 하신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가볍게 하신 말씀이실 수 있지만 여성의 미에 대한 강박을 당연시하고 식사 준비가 여성의 몫임을 전제하는 내용이지요. 작가님 비롯 연출가님께서도 더 나은 프로그램을 위해 조금 더 성인지감수성이 반영된 방송 내용을 송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올리기 전까지 고민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내가 사소한 일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예민한' 청취자의 의견이라 치부되면 결국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무용한 일이 될 것 같아서, 기우이지만 신상공개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혹시라도 관련된 누구 한 명은 다르게 생각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글을 올렸고 기대하지 않았던 제작진의 답변이 달렸다.


해당 방송 청취에 불편함이 있으셨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언 잘 새겨서, 더 나은 방송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떠한 건의에도 달렸을 법한 간결한 답변에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지만 형식적인 답변일지언정 막연하게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되었다.


요즘도 여전히 그 진행자의 프로그램을 곧잘 듣는다. 그리고 '잘하나 어디 보자.'가 아닌 전에 없던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 시간 그 진행자의 말 한마디로 마음에 위안을 얻을 청취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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