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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Feb 23. 2024

겨울방학이 두려운 엄마들?

아빠도 두려워할 겨울방학이 오길



작년 겨울의 일이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포털 검색을 하던 중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사 내용은 좋았지만 제목이 못내 아쉬웠다. 실제 방학을 두려워하는 엄마들은 많다. 직장이 있으면 애를 맡길 곳이 없어서, 직장이 없으면 독박 가정 돌봄의 부담 때문에 두렵긴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육아비율이 높다 하더라도(애초에 그게 문제) '이왕이면 아빠도 좀 끼워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양육자를 엄마로 규정하는(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건만 당연히도) 일이 허다하다.


남편과 함께 다니는 집 앞 단골 미용실이 있다. 내가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사장님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은 "애들은 어떻게 해요?", "애들은 누가 봐요?" 류의 나름 애정 어린 말들이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사장님께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아이 학교에 제출하는 신상정보서류에 연락할 사항이 있을 때 "아빠에게 먼저 연락해 주세요."라고 적어놓았지만 늘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선생님이 못 보신건지 잊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서 오는 부모교육 내용에도 "엄마표 놀이", "엄마와 함께하는 요리수업" 등의 표현도 여전하다.


이런 와중에 신문 기사까지 그런 인식을 공고히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기자님께 짧은 메일을 썼다. 기사의 취지는 좋으나 엄마를 양육의 전담자로 염두에 두고 쓰시는 글은 독자들에게 편견을 강화할 수 있으니 혹시 수정해 주실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언짢으실까 봐 좋은 정보 감사하다는 말과 기사 쓰느라 수고하셨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다음날 기자님께 답메일이 왔다. 종이 신문은 발행되어 버려 어쩔 수 없지만 온라인 뉴스의 제목은 수정해 주시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정된 기사제목이다. 부모라는 말도 모든 양육자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정해주셨다는 자체에 감사했다.


수정해 주신 것도 감사했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앞으로 더 예민하게 기사를 쓰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요새는 '예민하다'는 말이 다른 사람과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 독자인 내가 '예민하다'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본인이 예민하게 기사를 쓰시겠다고 하니 이번엔 '예민'의 의미가 제대로 쓰였구나 싶어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예민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일부 공유한다.


나는 이런 시대에 특히 "예민함"이라는 감각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다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서 예민함이라는 감각은(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에의 배려 혹은 통치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약자에게 강요되는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 사람이다. 사실 진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 착취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예민할 겨를이 없다. 예민함이라는 감각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스스로 점점 무력해진다고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권김현영 해제 중


기자님께 감사하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마무리된 그 일을 잊고 지냈는데 올해도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과 다닐 곳을 찾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다. 브런치 글을 쓰며 기자님 이름을 오랜만에 검색하니 요새 번역가 인터뷰 기사를 쓰고 계셨다. 괜한 반가움에 기사 몇 개를 읽어보며 시민의 사소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신 분이니 분명 좋은 글을 쓰실 거라 믿고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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