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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r 01. 2024

"결정장애인 당신을 위한 pick"

누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동네에 지인들과 가끔 들리는 카페가 있다. 특이한 커피 이름들이 즐비하여 늘 고르기가 쉽지 않은, 갖가지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지역에서 꽤 인기 있는 카페이다. 그날도 지인들과 저녁 식사 후 들른 이 카페의 빵 진열장에서 눈에 훅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결정장애인 당신을 위한 pick"


언제부터인가 결정장애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고 심심치 않게 귀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직접 눈앞의 활자로 접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만큼이나 그 말이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권위원회의 판단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에 제작한 혐오표현 대응 안내서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 특정한 속성을 이유로 그러한 속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모욕, 비하, 멸시, 위협하거나 또는 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은 당연하거나 필요하다고 부추기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혐오표현의 예로는 김치녀, 쿵쾅이(성별), 급식충, 틀딱충(나이), 짱개, 똥남아(출신국가), 병신, 결정장애(장애), 게이/레즈 같다(성적지향) 등을 지적했다. 인권위는 “혐오표현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퍼져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당연시하게 되어 사람들의 차별의식은 더 깊어지고, 사회적 소수자들은 더욱 불안하고 불평등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며 “혐오표현은 결국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존엄한 존재라는 인권의 가치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설명했다.
                                                                                             - 더인디고, 2020.8.4 기사 인용


더구나 몇 년 전 굉장히 화제가 되었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의 프롤로그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결정장애'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 역시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중 자신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혐오표현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혐오표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된 지 1년 만에 10만 부 기념 리커버 한정판을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고 지금도 꾸준히 블로그에 리뷰들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읽고 있다는 것일 텐데도 여전히 일상에서'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마주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그 카페의 직원 혹은 경영자도 '선량한' 마음으로 카페를 찾은 고객들을 '돕기' 위해 그런 안내 스티커를 붙였겠지. 하지만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내 그런 생각에 휩싸여 어떻게 건의를 할까 고민이 되었다.


혹시나 통합 고객센터나 홈페이지가 있는지를 찾아보며 매장 직원과 직접 통화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려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방편은 없어서 결국 매장으로 직접 전화를 해야 했다. 혹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문구를 쓴 직원이 곤란할까 봐 매장 책임자를 먼저 찾았는데 연결할 수가 없다고 하여 메모를 부탁드린다는 말로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전화받은 직원은 자신도 그 문구가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며 메모를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 뒤로 몇 주, 그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떼어졌는지, 문구가 변경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가끔은 기억 속에서 잊힌 채로 시간이 흘렀다. 꽤 오랜만에 간 그 카페의 빵 진열장에는 그 스티커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떤 과정과 결정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더 이상 그런 혐오표현이 손님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나도 얼마든지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 역시도 여전히 그런 노력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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