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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r 29. 2021

모유 수유 꼭 해야 할까?

엄마에게도 좋은 선택을 하자.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좋아했고 막연하지만 당연하게 나도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임신을 했고 나는 내 안에 생명이 자란다는 사실이 꿈만 같아서 감사하고 기뻤다.


그러나 '힘들기도 하겠지'라고 상상한 것보다 훨씬 힘든 열 달을 보냈다. 여러 통증을 달고 살던 임신기간 중 가장 큰 통증은 요통이었다. 결국 의사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제왕절개를 권했지만, 그건 내가 상상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 바로 엄마 품에 안기는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식분만(자연분만이란 용어는 제왕절개를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에 지양한다.)이 아기에게 더 좋다는 세간의 인식까지 나를 옭아 탓에 수술 날짜 잡기를 미루던 중 예정일 전 날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었다. 첫 진통 후 22시간 만에 첫째 아이를 질식분만고 그렇게 스스로 모성 신화에 가둔 채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생각할 것도 없이, 특히 엄마''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믿었다'. 젖몸살을 하고 유두에서 피가 나도 '그럴 때 모유 수유하는 법'을 검색했지, 분유를 검색하고 구매할 생각은 했다.


한동안수유 시 사출이 심해, 아기가 젖을 먹다 사들려 울고, 우느라 안 먹어 배고파서 울고, 허기지니 길게 못 자 울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배고파 우는 아를 두고 사출이 되지 않도록 수유 전에 매번 손으로 미리 유축을 한 뒤 먹여야 했, 수유 후엔 젖양을 늘리려 유축기를 사용해 남은 젖을 다 짜내야 했다. 준비부터 수유시간과 후처치까지 대 2시간이 걸렸고, 1시간 후엔 다시 그 일을 반복해야 했다.


하루 8번, 한 번에 3~40분을 목석처럼 앉아 밤낮으로 우는 아기에게 양쪽 젖을 번갈아 물리려 자세를 바꾸거나 새로운 수유자세를 시도해보다가 어깨에서 찌릿하는 통증을 느꼈다. 아기가 울면 번개같이 안아주면서도 내 어깨가 보내는 신호는 무시했다. 어깨는 계속 아팠지만 약을 먹으면 모유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참았다. 


결국 아기가 백일이 될 때쯤엔 통증이 너무 심해 약을 처방받았고 3일간 분유를 먹이게 되었다. 나는 어깨가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분유를 먹게 된 아기'에게. 결국 3일 만에 나을 리 없는 어깨를 스트레칭하면 괜찮다며 다시 모유 수유를 시작했다.



어깨가 아프니 수유뿐만 아니라 기저귀를 갈거나 아기를 안는 것도 힘들어 몸이 쉽게 지쳤다. 지친 몸으로 내 밥 챙겨 먹는 게 귀찮아 미역국에 밥만 말아먹는 날이 늘어갔다. 아기에게 '백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고 나는 연속 2시간 이상 자본 적 없는 날들을 8개월째 보내게 되었다. 나는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육아에 무심한 남편과도 자주 다투었다.


한 번은 남편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젖 물릴 때 기분이 어때? 막 감동이 밀려와?" 하고 묻는 것이다. 피가 나는 유두에 약을 바르고, 통증 있는 어깨로 아이를 감싼 채 30분째 허리도 못 펴고 수유를 하고 있는 나에게.


사실 남편 말대로 감동을 느낀 적도 있고, 젖을 빨며 눈을 맞추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을 글썽한 날도 있었다. 그러니 남편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하는 건 어려운 일도 거짓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힘든 몸과 지친 마음에는 관심도 없고 모성애의 감동만 떠올리는 남편에게 괜히 부아가 나서 한 판 크게 싸운 적도 있다.


그렇게 아이가 만 9개월이 되었을 때, 어느 병원에선 과잉진료로 수술을 권하고 또 다른 병원에선 주사치료를 권했다. 나는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은 후에 비로소 단유를 결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유  미안함과 서러움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리고선 바로 맥주를 한 잔 마셨는데, 세상에! 언제 울었냐는 듯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맛.있.어.서.




그 후, 분유 수유를 하며 일과 중에 수유에 매달리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아이도 배불리 먹어서인지 보채지 않고 잠도 잘 잤다. 도대체 왜 분유를 안 먹였던 것인지 지난날의 미련한 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모유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던가? 무엇이든 나보다 아기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란 존재감추듯 살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을까?


임신 중 금기사항, 질식 분만, 모유 수유, 엄마 손 맛(집밥, 이유식), 가정 보육 등 '엄마' 희생으로 점철되는 '모성 신화'에 빠져서 살았던 내 모습을 진지하게 오랫동안 성찰해보았다.


여성에게 '여자라면, 아내라면, 엄마라면'으로 시작되는 의무 아닌 의무의 굴레를 씌어놓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권장하면서도, 정작 그 주체인 엄마 욕구는 당연히 희생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모성애를 강요당해온 것은 아닐까?


물론 모유 수유나, 직접 만든 이유식에 보람을 느끼고, 육아에 전념하며 행복해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분들의 정성과 노력은 마땅히 상찬 받아야 한다. 때로 존경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제왕 절개를 하고 모유 대신 분유를 주고 이유식을 사 먹이고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덜 사랑한다거나 엄마답지 못하다거나 심지어 이기적인 엄마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나는 첫째 아이 때 모유 수유나 이유식 만들기에 시간과 체력을 쏟느라 정작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시간도 그럴 여력도 부족했다. 아기가 자는 시간에도 유축을 하거나 이유식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면 아기는 깨버렸다. 나는 24시간 아기와 함께였고 '나만의 시간'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우울감이 높아지고 예민해졌다.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오로지 '엄마'로만 존재하느라 오히려 '좋은 엄마'에서 점점 어져 갔다.


둘째 아이는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도 사 먹여서 여유 시간에 아이와 더 많이 놀아줄 수 있고 아기가 잘 때는 짧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덕분에 우울감도 줄고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일도 줄었다.


둘째를 낳고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걸. 내 능력치를 넘어 남들이, 사회가 말하는 '좋은 엄마' 기준에 맞추려다 몸도 마음도 병들었었다는 걸. 

이제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엄마 기준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스스로는 첫째 육아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가 더 많이 웃고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고 안아줄 수 있다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까?




육아를 하며 선택해야 할 많은 지점들에서 오로지 '아기'에게 좋다는 일들로 모든 걸 선택하기보다 '엄마'에게도 좋은지, '엄마'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숙고해서 선택하는 엄마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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