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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r 15. 2021

결혼식 앨범을 보다가 울고 말았다

울지 말아요 엄마


이제 13개월인 둘째 딸아이가 앨범 보는 걸 좋아해 하루에도 몇 앨범을 같이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앨범을 보다가 결혼식 앨범의 차례가 되었다.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인가? 딸아이도 사진 속에서 엄마를 찾지 못한다.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6년 전인데.


지금과 다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진 속의 엄마도 아빠도 훨씬 젊고 건강해 보이신다. 픔이 감춰지지 않는 엄마의 표정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게 나온 사진 같기도 다. 엄마는 결혼식 날짜가 잡힌 후 자주 눈물을 보이셨다. 딸의 결혼을 바라던 마음이 크셨지만 막상 결혼식을 앞두고는 힘드셨나 보다. 그때 엄마는 이승철의 '그 사람'이란 노래를 들으며 '딸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고 했다.



결혼식 날, 나는 일부러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울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방긋방긋 웃으며 하객들을 맞이했는데 웃어야 눈물이 덜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에 엄마 아빠의 모습과 표정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나중에 앨범으로 보게 된 엄마는 사진마다 붉게 물든 눈시울로 울음을 참고 계셨다. 그 사진들을 보며 뒤늦게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한복이 눈에 들어왔다. 양가 어머니 입장 사진에서 시어머니의 한복은 한 눈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엄마의 한복은 뻣뻣하기 이를 데 없고 동정의 무늬들 왜 그리 촌스럽게 보이는지.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하다. 결혼 전 엄마와 함께 한복집에 가게 되었는데 한복을 맞출지 빌릴지를 결정해야 했다. 평생 넉넉지 않게 사시며 절약이 몸에 베인 엄마는 비싼 돈 주고 한 번 입기 아깝다시며 빌릴 돈으로 맞춰 입자고 하셨다. 그럴 경우 원단과 디자인이 다르다고 안내받았지만 엄마는 괜찮다며 극구 맞추시겠다고 했고 그런 쪽으로 전혀 정보가 없던 나도 무심히 그러시라 했다. 며칠 뒤, 시어머니는 한복을 빌려 입으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도 '우리 엄마와 달리 쿨하시네'라고만 생각하고 가벼이 넘겼다.


그렇게 싼 값에 맞춘 엄마의 한복은 사진 속에서 빛바랜 듯 초라해 보였다. 그때라도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주변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직접 살피고 챙겼다면 앨범 속 엄마 더 곱고 우아한 한복을 입고 계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 각자의 한복에 옵션이라도 되는 듯 시어머니는 당당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계시는데 엄마는 붉은 눈시울로 고개까지 살짝 숙이고 계신 게 아닌가! 


불현듯 상견례 자리에서도 엄마는 시종 굽신 모드로 '우리 딸내미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하셨는데 시어머니께서 "하는 거 봐서요."라고 대답하셨던 면이 오버랩되면서 이건 한복의 옵션이 아니라 자식 성별의 옵션이라는 생각이 들 눈물에 더해 화가 나려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다음 장을 넘기고서는 결국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양가 어머니 맞절 사진에서 시어머니보다 곱절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엄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화낼 대상은 없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 가진 죄인'이라는 듣기 싫은 그 말, 가부장제의 산물인 그 말이 우리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엄마가 '딸을 떠나보낸다'라고 생각해 우시는 것도, 상견례 자리에서 '부디 딸을 잘 봐달라'라고 읍소하는 것도 다 그 탓이리라.


내가 우는 모습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 우는 둘째 딸아이와 엄마 왜 우냐며 득달같이 달려와 걱정해주는 첫째 딸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딸이 둘인데 대역죄인이 되려나...




육퇴 시간까지 떠나지 않던 생각들을 주저리 적어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는 결론을 냈다.


하나는 내 딸들이 살아갈 세상가부장제의 불합리함과 차별이 이어지지 않도록 나부터 딸들 앞에서 쓰는 말과 행동, 사고방식까지 개선하는 일이다. 딸들이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지만, 결혼과 상관없이 그냥 이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늦기 전에 엄마 곱고 고운 한복 한 벌을 꼭 춰드리는 일이다. 아마도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시겠지만.


옛날 옛적 엄마의 결혼 생활과는 달리
 잘 살아가려 애쓰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엄마. 울지 말아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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