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진 Apr 04. 2021

꽃길만 걷지 않기를

걸음마를 시작하는 딸에게




현관에 놓인 작은 신발을 보며

아장아장 걸을 너를 떠올린다

신발은 점점 커질 테고

어느 날엔 고운 구두도 신을 테지


꽃길만 걸으라는 어느 유행어처럼

사뿐히 걷기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세상에 길이 어찌 꽃길만 있겠니

모래밭을 걷거나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겠지


꽃길만 걷던 사람이

진흙탕에 빠진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한 나라의 수장도 꽃길만 걷느라

진흙탕에 빠진 국민들을 아몰랑 하잖니

네가 어떤 길을 걸어가든

이웃과 함께 걷기를

다른 길을 걷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기를



2017.2.6.
첫째 아이의 첫 신발을 보며





신발장을 정리하다 첫째 아이의 첫 신발을 보고 몇 년 전 끼적였던 글을 찾았다. 다행히 남아있었네.


이제 여섯 살이 된 첫째는 발이 큰 편이다. 현관 앞에 제법 큰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고 있는 딸아이의 세상을 상상해본다. 요즘 들어 부쩍 놀이터에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친구와 집에서 놀 때도 방문을 잠그려 한다. 벌써 품을 떠나려는 것일까 덜컥 겁이 나다가도 고개를 끄덕여본다. 너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함께하고 싶다고, 늘 여기서 기다리겠노라고.


이제는 그 신발을 물려 신을 둘째 아이에게도 4년 전 그때와 여전히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아이들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될지, 손이 필요한 사람이 될지는 모른다. 그 어느 쪽의 사람이 되든 간에 잡을 손이 있는 삶이라면 그걸로 충분할 거라 생각해본다.


우리, 손잡고 살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모유 수유 꼭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