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괜찮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by 김우진




작년 가을 페이스북에서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프로젝트를 알게 되어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열심히 읽었다. 내가 무심코 썼던 말들이 차별과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반성하는 일이 잦았다.


그중에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발견한 글은 이슬아 작가의 '납작하지 않은 아픔'이라는 글이었다. 「천장의 무늬」라는 책을 쓴 이다울 작가가 '투병(鬪病)'이 아닌 '치병(治病)'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한 이야기와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라는 책에 나온 '건강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건강하세요."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이미 잘못된 전제일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흔한 덕담이자 관심과 사랑의 표현으로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수 없이 써왔던 저 말이 누군가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결승점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 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추천받고 읽기 시작했는,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질병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함에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했다.


책 p.66

위 유형에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질병의 희화화뿐이었다. 나머지 세 유형 차별 표현들 대해서는 차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특히, 건강 중심성에 대한 표현들은 차별은커녕 당연하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다.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소원을 빌 때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말고는 빈 것이 없을 정도였다.


건강만을 중심에 두는 것은 아픈 몸이 평등하게 함께 사는 과정을 방해한다. 아픈 몸이 동정과 시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살아가려면 건강한 몸이 중심이고, 아픈 몸이 주변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을 선으로 규정하고, 질병을 절망과 악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 사이에 발생하는 위계가 해체될 때, 아픈 몸도 차별과 배제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책 p.69)


이 글을 읽고 내가 그동안 질병을 삶에 결코 찾아와서는 안 되는 불행처럼 여겨왔구나, 질병이 있는 삶의 의미를 등한시해 왔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질병이 있는 아픈 몸도 분명히 행복할 수 있고, 아니, 행복이나 불행을 떠나 그냥 건강한 몸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왜 그동안 질병이 있는 삶은 뭔가 결핍된 삶처럼 생각해왔을까. 심지어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많았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건강하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게 아니듯, 아프다고 해서 다 불행한 것은 아닐 텐데.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아픈데도 그걸 이겨내거나, 아프지 않은 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을 '질병이 있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보 안 된다는 것이다.


아픈 몸도 행복한 삶은 질병을 '극복'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을 '정상'으로 교정하지 않아도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에서 가능하다.(책 p.12)






"담배를 그렇게 피니 폐암에 걸리지."

"식습관이 안 좋으니 그런 병에 걸리지."

"그럴 때까지 건강관리도 안 하고 뭐했어."


우리는 흔히 몸이 아플 때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다. 나 역시 내 몸에 대해서도, 타인의 질병에 대해서도 질병의 원인은 개인의 탓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왜 흡연을 많이 하게 되었는지, 왜 불균형한 식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건강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질병의 개인화는 생활습관에 관점을 집중시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구조의 문제는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심지어 아픈 이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이는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책 p.88)



특히, 노동의 시간과 강도, 고용 형태 등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회 구조의 문제를 빼놓고 개인의 생활 방식만을 문제 삼는 것은 질병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악순환시키는 셈이 된다.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갈 때 건강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구조는 휘발되기 쉽다. 정부가 산재, 야근, 성폭력, 가정폭력, 소수자 차별 같은 사회적 건강 위해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새삼 또 생각하게 된다.(책 p.70)



질병의 개인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에 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라고 말한다.


그 책을 읽던 당시 배우고 깨달은 바가 많아 지인들에게 추천도 많이 했었는데 정작 몇 년 사이 나는 또 질병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묻는 일에 무뎌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더구나 질병을 넘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회 구조 속에서 질병과 죽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시는 것은 앞으로의 사고도 막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감기약에 취해 잠든 아이를 보며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소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아플 권리, 우리에게는 바로 그 '질병권'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아파도 괜찮다고, 아픈 몸으로 살아도 삶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는 깨달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아픈 몸에 대한 자책감이다.
우리는 아플 만해서 아프다.
우리에게는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
자책감은 무책임한 사회에게 줘버리자.​
(책 p.332)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 동녘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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