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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y 25. 2021

첫째의 퇴행이 시작되었다

네 살 터울 자매를 키운다는 것(1)




여섯 살 딸아이는 요새 중2를 방불케 하는 변화무쌍한 감정으로 우리 부부를 들었다 놨다 한다. 4살까지는 큰 소리 날 일 하나 없이 지내왔는데 5살부터, 정확히는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 많이 달라졌다.


동생이 뱃속에 있었을 때는 너무나 다정했던 언니였다. 만삭 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배를 쓰다듬으며 배에 대고 사랑한다고 빨리 보고 싶다고 말하던 언니, 동화책을 읽어준다며 배에 대고 이야기를 들려주던 언니, 엄마가 먹은 김치 때문에 동생이 매울까 봐 "김치야, 너는 바다(태명)한테 가지 말고 다른 데로 가야 돼"라고 김치에게 당부까지 하던 언니였는데...


동생이 생기는 일이 첫째에게 큰 심리적 충격일 수 있다고 익히 들어온지라 남편과 나는 육아서도 미리 읽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첫째를 위한 몇 가지 육아 원칙도 세웠었다. 


1. 첫째에게 사랑 표현을 더 많이 하고 안아주기
2. 둘째는 아빠 전담, 엄마는 첫째와 시간 보내기
3. 첫째 앞에서 둘째에게 애정 표현 자제하기
4. '언니니까', '동생이니까'라는 이유를 붙이지 않기
5. 동생을 돌보거나 놀아주라고 말하지 않기


그러나 이런 원칙을 지키며 생활했는데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첫째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더불어 우리도...






첫째 딸아이가 5살이 된 2월, 드디어 동생이 태어났다. 집에 온 동생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고 동생을 만져보고 싶어 평소에 귀찮아하던 손 씻기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분유도 먹여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어 하는 첫째를 보며 "터울이 있으니 그래도 동생을 잘 챙겨주네."라는 생각을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애정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흡사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을 때랑 비슷한 패턴이었달까. 생각해보면 모성애도 저절로 생기지 않듯 자매간의 우애도 갑자기 생길 수는 없는 것이겠지.


렇게 동생에 대한 호기심이 시들해진 다음 첫째에게 서서히 질투의 감정이 찾아왔다. 동생이 태어나면 자신과 재밌게 놀 줄 알았던 첫째는 누워만 있는 동생이 자신과 놀기는커녕 자신과 놀아야 할 엄마 아빠마저 빼앗아간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퇴행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딸아이는 자신도 젖병에 분유를 타 달라고 했다. 못 먹게 하면 더 집착할 것 같아서 몇 번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분유를 주었다. 대신 아주 묽게 타서 맛이 없게 느껴지도록 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맛있다며 매일 저녁 분유를 먹었고 매일이 주 2~3회, 그리고 간헐적으로 요구하다 완전히 찾지 않기까지는 3개월 이상이 걸렸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되어갈 무렵, 딸아이는 자다가 침대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놀라 우는 아이가 안쓰러워 괜찮다고 달래며 오히려 다정히 안아주었다. 동생이 생기면 그런 퇴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네 번째 실수까지도 그저 이해하고 달래주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럴까 걱정도 되어 여러 정보나 조언들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다섯 번째 실수를 했을 때 아이는 잠결이 아닌 또렷하고도 약간은 신난 목소리로 "엄마 나 쉬했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이번에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마 자다가 쉬를 하면 엄마 아빠가 자기를 더 챙기고 사랑해준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섯 번째 실수 때는 무심한 듯 그러나 수습이 엄마 아빠에게 힘든 과정이란 것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후 딸아이는 더 이상 자다가 쉬를 하지 않았다. 쉬를 일부러 했던 것도, 하지 않게 된 것도 모두가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니 그 작은 마음이 안쓰러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으로 나타난 퇴행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동생에게 사랑을 뺏길까 봐 두려워하는 첫째의 불안이 엄마 아빠의 도움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걸까. 화장실이 무섭다고 절대 혼자 가지 않았고, 밥도 엄마가 먹여주길 원했다. 옷 입는 것도 놀이하는 것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변해갔다.






거기에 더해 동생의 발달에 맞는 장난감들을 차지하고, 배밀이를 시작한 동생을 따라 기저귀를 내복 위에 차고 거실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제지하기보다 한두 번씩 해보게 하는 것으로 딸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고 계속 반복되지는 않도록 설득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과 내가 유지했던 방식은 '동생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랬다간 동생편만 든다거나 동생만 좋아한다는 말을 대번에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가 아기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있거나 자는 아기를 깨우려는 듯 필사적으로 큰소리를 내며 놀 때도 우리는 다른 이유를 붙였다. "아기 침대가 작아서 네가 불편할 것 같은데?", "큰 소리에 아랫집이 시끄러울 것 같아."라고 말하며 동생 때문에 피해의식을 갖지 않도록 애썼다. 그렇게 몇번을 말해야 그나마 수긍하는 첫째...


신기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첫째는 때때로 동생을 귀여워하고 돌봐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한없이 자상한 미소로 동생을 쓰다듬거나 우는 동생을 달래려 장난감을 동원하기도 했다.(물론 쓰다듬는 척 때리기도 하지만.,)


그런 첫째를 보며 '동생이 좋긴 하지만, 엄마 아빠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하는 복잡한 감정이제 다섯 살 난 아이가 감당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남편과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그래서 육퇴 후 비어타임의 결론은 항상 비슷했다. "우리가 첫째에게 더 신경 쓰자."






그러나 늦은 나이에 둘째를 돌보는 일도 쉽지 않은 나에게 다섯 살 난 아이를 세 살 배기처럼 다시 수발하는 일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머리로는 첫째의 퇴행 시기를 받아들이고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짜증과 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런 내 감정을 읽 첫째는 더 예민해졌고 그렇게 우리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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