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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y 12. 2021

의사가 말했다. "미치겠네~"

환자에 대한 기본 예의가 있는 의사를 바란다.



애 낳고 나면 생리통 싹 없어져.



흔하게 들어온 미신 같은 저 말이 진짜이길 바랐다. 학생 때부터 생리통이 심해 여러모로 힘든 시간들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지만 아이 둘을 출산한 후, 오히려 없던 배란통까지 생겼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배란통까지 생기고 나니 한 달에 배 아픈 날이 배로 늘었고 먹는 약도 늘었다. 완경(完經)이 될 때까지 이 고통들을 참아야 한다니.


마침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 문자가 계속 오기도 하여 어렵게 시간을 내 병원에 갔다. 둘째 아이 출산을 맡아 주었던 의사는 예약이 꽉 차서 새로 온 의사에게 진료를 보게 되었다.


배란통에 대한 질문에 '그럴 수 있다'는 짧은 답변을 내놓은 의사는 암 검진을 시작했다. '그런 답변은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누워 있는데 의사가 갑자기 폴립(용종)이 있다며 별도의 조직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괜스레 불안하여 마음 졸이고 누워 있는 내 앞에서 의사는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무슨무슨 도구를 달라했지만 간호사는 없다고 했고 그럼 다른 거라도 달라며 또 한숨을 쉰다. 그렇게 도구만 몇  번을 바꿨는지 모른다.


나의 불안감 점점 커져갔지만 행여나 내가 말을 걸었다가 더 방해만 될까 봐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애꿎은 손가락들만 서로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중 "미치겠네"라는 또렷한 의사의 말이 들렸고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미치겠네? 지금 의사가 미치겠네 라고 한 건가?'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무슨 문제가 있나요?"라고 의사에게는 보이지 않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조심스레 물었다. 의사는 폴립 위치가 안 좋아서 그렇다며 몇 번의 한숨을 더 쉬면서 도구들을 달그락 거린 끝에 검사를 마쳤다.

 

흔히 산부인과 검진 의자를 굴욕 의자라고 부른다. 나는 진료를 위한 것이니 굴욕이랄 것 까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의자에 누웠을 때의 불편한 심기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 둘을 출산했는데도!


그런 기본적인 불편한 심기에 더해 한참을 누워있으며 (이번처럼 긴 검사시간은 처음이었다) 의사의 한숨소리와 혼잣말까지 들은 나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함이 왔다.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의사에 대한 신뢰감도 생길 리 없었다. 그러나 의사에게 직접 그런 문제제기를 할 용기는 나지 않고 다음에는 원래 진료를 보던 의사에게 가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비겁한 결론이었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내일 오전에 지혈을 위해 넣어둔 거즈를 빼러 오라고 했다. 내가 "내일은 어린이 날인데 진료하세요?"라고 묻자 "아~ 내일 쉬는 날이구나. 잠시만요"하며 당직 의사가 누구인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나는 순간, 아까의 불쾌감에 더해 화가 났지만 폴립이 양성이든 음성이든 제거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에 놀라 화는 둘째치고 수술 얘기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탈장 수술 때 전신마취의 악몽이 떠올라 마취법을 먼저 물으니 수면 마취 한다고 하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벙하게 진료실을 나왔다.


찝찝한 마음으로 병원비를 결제하고 나오려는데 그전에 없던 액자가 걸린 것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이 병원에는 그만 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누구는 저렇게 당당히 팔짱을 끼고 서있고 누구는 또 저렇게 공손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서있는 걸까? 다 같이 당당하든 다 같이 공손하든 할 일이지. 저런 포즈를 요구한 사진작가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 저이들도 성난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다음 날 내원 시간을 확인하려 전화했을 때 전화를 받은 누군가는 되려 나에게 집에서 제거할 수 있는 끈이 달린 거즈 안 썼냐고 물어왔다. 하아.... 의사가 다음날 휴진 인지도 생각 못하고 그렇게 한 걸 왜 나에게 묻냐고, 내가 거즈 종류를 어떻게 아냐고 따져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면 안 되니까.






일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조직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고 지내다 통증이 있으면 내원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되어 의사가 결과와 상관없이 제거 수술을 하자고 했었으니 다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도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통증이 있거나 이상이 있을 때 내원하라 안내를 받았다.


어떤 결과이든 위치가 안 좋으니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여 일주일 동안 사람 마음 심란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를 괘씸한 마음이 들어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다른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나 고민도 된다.






의사를 찾아간 환자는 기본적인 불안함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의사에게 그런 환자의 불안까지 책임지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환자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그 의사의 화려한 약력이 써진 액자가 떠오르자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 빈껍데기 같은 액자만 걸지 말고 환자를 대하는 바른 언행부터 먼저 익히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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