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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y 10. 2021

어버이날에 태어난 딸

선물처럼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나: 생일 축하해.

딸: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5월 8일 아침이면 나누는 딸과의 대화이다. 딸아이의 출생 예정일은 5월 8일이었는데 딱 예정일에 태어나게 되어 생일이 어버이날이 되었다. 그때는 어버이날에 태어난 딸이 마치 어버이날 받는 축하와 선물처럼 느껴져 정말 좋은 날에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도 어버이가 되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보니 약간의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는 이유어쨌든 그 날 하루는 엄마 아빠 말도  듣고 그러는 법인데... 우리 집은 생일인 딸을 챙기느라 어버이의 고생이 한층 더해진다.






작년 생일에는 동생이 백일도 안되어 집에서만 보냈는데 이번엔 큰 맘먹고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한적한 시간에 다녀오려고 오전에 집을 나서 도착해보니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코로나와 미세먼지가 걱정되어 마음이 무거웠는데 딸아이는 신 나서 이리 보고 저리 보느라 바빴다. 어린이들은 역시 뛰어놀아야 하나보다. 


이제 키가 110cm를 넘은 딸아이는 키 제한에 걸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많아져서 훨씬 즐거워했다. 어릴 때 타본 미니바이킹이나 작은 비행기들을 다시 타보고서 시시해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어른들이 타는 큰 바이킹을 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레짐작 키가 안될 거라고 말했는데 막상 가보니 제한이 110cm였다. 바이킹을 못 타는 나를 대신해 아빠와 바이킹을 타러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타다가 울거나 오줌이라도 싸면 어쩌나 걱정을 한가득 했다.


바이킹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가 없어서 운행이 멈출 때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렸는데 드디어 내린 딸이 달려오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다. "끝에서 한 번 더 탈래!" 나는 한사코 만류했지만, 결국 딸아이는 아빠와 한번 더 바이킹을 타러 갔다. 멀리서 바이킹 끝쪽에 앉아는 딸을 바라보며 언제 저렇게 컸나, 저렇게 씩씩했나 생각에 잠겼다. 내 예상보다 딸은 더 빨리 자라고 있구나.






그렇게 딸아이는 놀이공원을 정말 가열차게 누볐고 덕분에 나의 족저근막염 통증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꼬셔 잠시 쉬려는데 딸아이가 근처 야외 공연장에서 시작되는 댄스 공연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스크림이 다 녹는다고 말해주었는데도 딸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포기하고 공연 관람을 선택했다.


어쨌든 나는 앉아있을 수 있어서 좋았고 너무 집중해 박수도 못 치는 딸아이의 옆모습 자꾸 훔쳐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생각한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이스크림보다 좋은 게 생기듯, 엄마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기겠지. 내가 알 수 없는 너의 세계는 더 크고 넓어지겠지. 공연 음악소리는 너무나 신나는데 내 눈가는 자꾸만 촉촉해졌다.


늦은 오후가 되어 돌아오려니 딸아이는 더 놀고 싶다고 아쉬워했지만 스스로도 많이 지쳐 잘 걷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꼭 밤까지 놀자고 약속하고 차에 탔는데 출발한 지 10분도 안되어 딸은 잠이 들었다.


그 후, 집에 도착한 이후부터 씻고 잠들 때까지 피곤하다고, 다리 아프다고 짜증을 내는 딸을 좋은 말로 타이르느라 나와 남편은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생일이니까 봐준다는 마음으로... 안 그랬다면 "잘 놀고 와서 왜 짜증을 부려?" 같은 말들이 난무했을 것이다!)  


늦은 육퇴 후, 남편과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비어타임을 가졌다. 우리는 "어버이날 맞니?"라며 잔을 부딪히고 웃었다. 식탁 위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 바구니에 꽂힌 사진 속의 딸아이도 웃고 있다.







요새 아이에게 화내지 않은 날이 잘 없었다. 매일 반성해도 다음날 또 화를 낸다. 아이가 먼저 짜증내고 화를 냈다는 핑계를 대며. 6살 난 아이와 똑같이 행동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여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매일이 아이의 생일이라고 여기면,
어버이날의 선물이라고 행복해하던
그 날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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