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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y 31. 2021

엄마의 택배 앞에서는 항상 불효자가 된다

효도는 손녀가 대신합니다.




[Web발신]
김우진님 받으실 상품이 배달 예정입니다. OO택배



핸드폰을 바꾸었던 2019년 5월부터 며칠 전까지 받은 똑같은 문자메시지를 세어보니 모두 39개였다. 2년 동안 20일에 한번 꼴로 택배를 받았다는 뜻이다.


발송인은 다름 아닌 엄마.

혼자 들기도 어려운 큰 박스를 낑낑대며 부엌으로 가져와 여는 순간 나는 항상 불효자가 된다.




각종 김치류와 불낙전골, 전복장조림, 구운 생선, 찜닭, 밑반찬, 미역국, 직접 기르신 양파와 마늘이 들어있다. 반찬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부엌에 서계신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주 5일 근무에 토요일은 등교, 일요일은 밭일로 스케줄이 꽉 찬 사람인데, 이 많은 걸 틈틈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미안함에 불효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반찬 보내신 다고 할 때 힘드시니까 보내시지 말라고 거절부터하는 나에게 엄마는 늘 별거 없다고, 조금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계속 거절하면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여 어쩔 수 없이 조금만 보내시라고 말하는데, 늘 택배 상자는 무겁고 가득 차 있다. 이번에도 엄마는 "이번엔 진짜 뭐가 없어~ 물김치 조금 보냈어"라고 하셨는데...






사실 엄마의 반찬 배달은 1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불효자의 세월이 길었구나 싶어 새삼 부끄럽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결혼 전까지는 멀지 않은 곳에 계셔서 직접 가져다주셨고(그래도 1시간 이상의 거리였지만) 결혼 후 귀향하신 뒤로는 택배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나도 요리를 즐겨한 적도 있고 이제 즐기지는 않아도 필요한 만큼은 해 먹고사는데, 엄마 눈에는 늘 못 먹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셨나 보다. 사회 초년생 때는 처음 사회생활하니 힘들 거라고, 몇 년 지나서는 바쁘니 힘들 거라고, 결혼 후에는 두 사람 몫하려면 힘들 거라고, 임신•출산기에는 더 말할 것도 없 엄마는 당신 힘든 것보다 딸이 바쁘고 힘든 것이 걱정되어 반찬을 보내오셨다.


나물과 채소를 좋아하는 나와 정반대의 입맛(달고 짜고 튀긴 것을 좋아하는)을 가진 남편과 살다 보니 남편이 잘 안 먹는 반찬들은 다 먹기 전에 상해버리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고 나는 반찬을 버리며 자주 울었다. 밭에서 길러 수확해 반찬으로 만들어 보내기까지의 엄마와 아빠의 노고가 눈에 아른거려서.


그런 속상한 일을 안 만들고 싶어 절대 반찬 보내시지 말라고  당부를 드리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철에 맞는 김치와 나물 등의 밑반찬을 때때로 보내오셨다.


그러다 내가 첫째를 임신 중일 때 시어머니께서 딱 한번 반찬을 보내신 적이 있다. 죄송하지만  못 먹고 상해버린 반찬을 그날 뒷정리를 하던 남편이 버리게 되었다. 그때 싱크대 앞에서 어머니의 노고를 나 들으란 듯 고 있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찬 남편의 뒷모습을 았다.


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껏 엄마 반찬을 버릴 때와 너무 다른 모습에 마음이 상해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은 사라지고 삐딱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을 나는 매번 느끼고 있었어. 당신 어머니만 고생해서 만드시는 거 아니야."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 역시 괜한 말을 했다 싶어 후회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누구나 내 부모의 고생이 더 깊이 다가오는 것일 텐데 헤아리지 못하고 내 생각만 한 것이 나 역시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 뒤로 남편은 장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더 감사히 잘 먹게 되었고 전화로 맛있었다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쌀, 고춧가루, 양파, 마늘, 깨, 참기름. 밥은 물론이고 반찬 만들 때 기본이 되는 재료마저도 다 엄마 아빠의 밭에서 나온다. 당연히 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엄마 아빠의 땀이 들어가 나온다. 남편뿐만 아니라 사실 나도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감사함을 잊고 지낼 때도 있다. 그러나 한 번씩 택배가 올 때마다 다시금 감사함을 깨닫는다.


고생하신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서, 그 감사함을 또 깜박하는 내가 미워서, 나는 엄마의 택배 앞에서 항상 불효자가 된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불효를 만회하고자, 첫째 딸아이가 할머니 반찬을 맛있게 먹는 사진과 동영상을 자주 보내드린다. 엄마는 모습을 보시며 정말 행복해하시고 기뻐하신다. 결혼 초에는 나보다 사위가 잘 먹는 걸 더 좋아하시더니, 이제는 손녀가 잘 먹으면 그게 엄마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신 것 같다.


지난달에 친정에 갔다가 손녀에게만 전복을 내주시기에 농담으로 딸아이에게 "할머니가 엄마 아빠한테는 안 주시고 손녀한테만 주시는 거니까 많이 먹어."라고 했다. 우리는 분명 다 같이 웃었는데 이번 택배에 전복이 평소보다 2배로 들어있었다. 


엄마에게 전화해 왜 이렇게 많이 보냈느냐고, 다못먹는다고 했더니 "너희도 같이 먹으라고 많이 했어." 하신다. 괜한 나의 농담이 엄마에겐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결국 두 배로 전복을 손질했을 엄마에게 나는 또 미안해진다.


작년 여름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을 앞에 두고 딸아이와 밥을 먹다가 나는 과연 엄마처럼 딸에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절대 못할 거라는 결론을 내고 "엄마는 나중에 네가 따로 살아도 할머니가 지금 해주시는 것처럼 해주지 못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딸은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서운하다고 삐진 건가 긴장하던 찰나, "그럼 내가 그렇게 해서 엄마 줄게."


요새 말로 이런 순간을 '심쿵'이라고 하는 걸까. 물론 진짜 그럴 일은 아주 희박한, 아니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지만 두고두고 그 말이 마음에 남아 뭉클했다.


'딸로도 엄마로도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 이왕이면 '딸로도 엄마로도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일부러 두 배나 보내신 전복장을 엄마의 참기름과 깨를 넣고 쓱쓱 비벼 안 남기고 싹싹 먹는다. 마흔을 앞둔 딸이 혼자 점심 굶을까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밥상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 이렇게 쌓인 불효를 차감하다 보면 플러스 '효'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엄마 반찬에 밥을 그득히 먹은 날은 아메리카노보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믹스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지금쯤 엄마도 사무실에서 믹스커피 한잔 마시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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