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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n 04. 2021

베이비룸 아니고 언니룸

네 살 터울 자매를 키운다는 것(2)





동생이 10개월이 되자 기어 다니거나 잡고 서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것은 언니의 물건을 만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는 시종 기어 다니며 언니의 놀이를 궁금해하고 만져보려 했고 첫째는 동생 그런 행동을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는 거나 빼앗는 것으 여겼다.


특히 첫째가 그 무렵 좋아하던 놀이는 작은 소품들을 이용한 소꿉놀이였다. 첫째는 기념일마다, 스티커 100개를 모을 때마다 힘들게 얻은 장난감 집들을 콜라보로 꾸며 역할 놀이하는 것을 즐겼다. 


언뜻 보면 그냥 작은 소품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딸아이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스레 꾸민다. 하지만 소품들이 너무 작아서 나는 물론이고 첫째 스스로도 꾸미다 자주 넘어뜨리거나 떨어뜨려서 집을 꾸밀 때마다 첫째는 아주 예민한 상태가 되곤 했다.



펭귄집, 미미집, 토끼집, 강아지집, 백설공주집 소품들로 꾸민 것


그렇게 공들여 꾸며놓은 집이란 걸 알 리 없는 동생은 조절되지 않는 팔을 휘두르다 순식간에 와르르 쏟아버리고 만다. 그럴 때우린 첫째의 헤비메탈급 샤우팅을 들어야 했고 저러다 동생을 때리진 않을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게다가 언니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 둘째까지 울음을 터뜨리면 정말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블럭 놀이동산과 맥포머스 2층집. 맥포머스는 더욱 쉽게 부셔진다.




우는 첫째를 달랠 때 동생이 아가라 모르고 그런 거라고 하면 동생 편만 든다고 서운해하니까 "동생이 언니랑 놀고 싶었나 봐"라고 돌려 해도 첫째는 울고 불며 동생 밉다는 소리를 반복다. 그러면 둘째와 눈은 맞추지 않고 엄한 목소리로 나무라듯 말하고 동생을 데려와 언니에게 미안하다고 쓰다듬는 시늉을 하게 한다. 제야 첫째는 마음이 누그러 투덜대며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면 나중엔 그냥 각자 다른 방에 머물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겉으로는 동생을 나무라는 척하며 우는 첫째를 달래주었지만 사실 진심으로 첫째 마음을 공감해주진 못했. 상황을 빨리 종결시키려 '그런 척'을 했을 뿐. 그러나 우리는 동생이 맞을까 봐 걱정하기 앞서서 공든 탑이 무너진 딸아이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었어야 했다. (자신이 만든 집과 블록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2~3일은 기본으로 보존해야 해서 청소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이다.) 생각해보면 육아서에서도 첫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동생으로부터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었는데, 읽고도 잊었다.


그때부터였다. 둘째를 위해 설치한 베이비룸이 '언니룸'이 된 것은. 우리는 앞으로 엄마 아빠가 동생이 부서뜨리지 못하게 지켜주겠노라 호언을 하며 베이비룸 첫째에게 내어주었다. 그 후 첫째는 소꿉놀이를 하거나, 블록, 맥포머스, 비즈 놀이 등 동생이 쉬이 망가뜨릴 수 있는 놀이를 할 때 아예 베이비룸 안에 들어가서 놀았다.


그러면 둘째는 베이비룸을 잡고 서서 울타리를 쩝쩝 빨며 언니가 하는 것을 가만히 구경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울타리 사이사이 틈으로 작은 팔을 집어넣어 언니 것을 만지려 하거나 베이비룸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럴 때면 첫째도 조금은 미안한지 울타리 틈으로 장난감 몇 개를 선심 쓰듯 내주었고 둘째는 그마저 좋다고 웃으며 만지작 거리며 놀았다.


우리는 이때다 싶어 첫째에게 폭풍 칭찬과 함께 "하지만 억지로 주지는 않아도 돼."라며 짐짓 첫째를 위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둘째가 언니의 말과 행동에 유독 잘 웃고 반응을 보일 때마다 "동생이 언니를 너무 좋아하네."고 자주 말해주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효과가 조금씩 나타났다. 첫째는 동생이 자신을 제일 좋아한다고 믿기 시작한 것 같았다. 동생을 안아주려 하거나 웃겨주고 싶어 하는 빈도높아졌, 첫째를 위하는 척 동생을 나무라면 "아가라 몰라서 그렇지, 괜찮아."라고 오히려 말리기도 하였다. 첫째의 작은 변화에도 남편과 나는 안도하며 가끔 첫째와 둘째가 사이좋게 앉아 함께 웃는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역시 잠시이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엔 동생 때문에 화가 나거나 울고 마는 첫째를 보며 아주 긴 시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둘째가 돌 즈음부터 걷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베이비룸이  없어도 될 것 같아 처분했는데, 아뿔싸, 잊고 있었다. 베이비룸은 언니룸이였다는 걸. 이제 언제 어디든 언니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된 동생은 신이 났고 언니는 더욱 화가 많아졌다.


동생이 걷게 된 후 첫째가 제일 자주 소리치는 말.



으악~~ 바다 좀 저리 데려가,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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