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진 Jun 09. 2021

동생은 네가 낳아달라고 했잖아

네 살 터울 자매를 키운다는 것(3)



동생 괜히 낳아달라고 했어.
다시 뱃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



동생이 태어난 지 1년이 지나 여섯 살이 된 딸아이가 올봄에 자주 하던 말이다. 걷기 시작한 동생이 자신의 물건을 만지거나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첫째의 언행도 한층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단순히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동생이 밉다는 말은 기본이고 동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게다가 동생을 향해 주먹질하는 시늉을 자주 내다가 실제로 때리는 경우도 종종 생겨났다. 그냥 '콩'하고 꿀밤 주는 정도이긴 하지만 모르는 척할 수도 없고 훈육을 하면 자신만 혼낸다며 는 통에 난감한 경우가 늘었다.





여전히 아주 사소한 것도 부러워하고 질투하여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첫째의 심한 투정을 나도 점점 받아주기가 힘들었다. 아이는 엄마에 대한 애증이 쌓일 대로 쌓인 모양이고 덩달아 나는 화가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짜증을 내며 부엌에 있는 나를 부른다. 밥이라도 안치고 있어 바로 못 가면 짜증 섞인 목소리는 커지고 내 마음속 화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아침 등원 전에 아이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여러 번 참았지만,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내 안에 끓던 화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속사포로 쏟아냈다.


왜 아침부터 짜증을 내. 기분 좋게 시작할 아침에 너 때문에 가족 모두가 기분 안 좋아지잖아. 엄마가 너 등원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는 거지, 어떻게 네 옆에 계속 있어.


내뱉는 동시에 후회하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나오는 가시 돋친 말들이 첫째 마음속에 날아가 콕콕 박힌다. 아이는 시무룩해서 울상을 짓다가 결국 울어버리고 만다. 


며칠 뒤 아이가 사소한 잘못에 갑자기 "내가 다 망쳐버렸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이지 내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다. 아이를 자책하게 만드는 말은 해서는 안됐었는데... 내가 뱉은 가시 돋친 말들은 아이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 상처로 남았다.


알고 있다. 아이가 원하는 건 깼을 때 엄마가 옆에 있는 것, 부르면 달려와 잘 잤느냐 토닥여 주는 것이라는 걸. 하지만 모르겠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을 흔쾌히 해주지 않고 고작 여섯 살 난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만 쏟아내는 내 마음을. 


이러다 머지않아 첫째에게 "동생은 네가 낳아달라고 했잖아"라는 원망의 말을 뱉게 될까 봐 두렵다. 내가 선택한 걸 네 살밖에 되지 않았던 딸의 책임으로 돌리는 비겁하고 못난 내가 마음속에 숨어 있다.





첫째는 훈육의 의도 없는 단순한 안내 혹은 질문에도 자신을 혼낸다고 받아들이고 삐지거나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모습을 이해하고 다독이지 못하는 나는 덩달아 큰 소리로 아이를 혼낸다.


그러면 아이는 울거나 더 화를 내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더 화를 낼 때는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다. 물론 그렇게까지 흥분하는 데에는 같이 화를 내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던 탓이 크다.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 속에 이제껏 아이에게 화 한 번 낸 적 없던 남편도 지쳐서 화를 내는 일이 생겨났다. 어쩌면 아이에게는 마지막 보루였을 아빠마저 화를 내버리니 아이는 정말 서러웠을 것도 같다. 그런 밤이면 남편과 나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한숨을 쉬며 반성하고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하고 다짐해서 좀 더 이해하려 노력하면 아이는 오히려 '아직 혼날 정도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지 더 심하게 행동했다. 그러면 결국 삼일을 못 넘기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마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화를  내보려고 꾹 참고 말하면 너무 무미건조하거나 나도 모르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게 된다.


"네가 두 살 때도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해줬어."
"동생이랑 너를 자꾸 비교하지 마."
"엄마가 몇 번 말했어."
말은 안 하지만 대신 '한숨 쉬기'


화를 참으며 내가 자주 하는 표현들인데 육아의 기본인 '공감'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는 표현들이다.


저런 말에 딸아이는 엄마 목소리가 커지지만 않았을 뿐이지 자신에게 곱지 않은 감정이란 걸 대번에 안다. 그래서 "엄마 화났어?"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는데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애써 아니라고 하면서 속상해진다. 엄마가 화났는지를 눈치 보게 만드는 내가 또 미워서.  


한 번은 아이가 "엄마 왜 억지로 웃어?"라고 말해서 너무 민망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아이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대상의 감정에 예민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아이는 나의 말과 행동에서 사랑인지 화인지를 정확히 구별했고 화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나는 두려웠다. 아이가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늘 반성만 하고 변하지 않는 엄마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가 미운 날이 많아진 딸에게 결국 어느 날 맞고야 만다. 그날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딸이 나를 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이비룸 아니고 언니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