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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l 12. 2021

다시 온도를 맞추어야 할 시간

대화가 필요한 우리




몇 년 만에 '혼자' 카페에 앉아있다. 카페 음악들은 원래 이렇게 말랑몰랑 했었던가? 괜히 가슴이 찌르르하다.


남편의 육아 휴직으로 뜻깊은 1년을 보냈고 우리 부부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궤도에 올라섰다고 믿었다. 그걸 추억하고 기념하고 싶어 브런치북도 발간했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서있는 여기가 다시 5년 전 그 원점인 것 같아서 앉아있어도 어지럼증이 다.





저녁 10시, 남편은 식탁에 노트북과 일거리를 올린다. '오늘도구나.' 속으로 생각한 나는 일과 중 둘째 이야기, 첫째 어린이집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남편은 일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짧은 대답을 한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며 기다려봐도 남편과 대화할 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아 결국 먼저 방에 들어간다. 잠이 안 와 뒤척이다가 새벽 1시 넘어 거실 불이 꺼지는 것을 본다.


복직 후 처음엔 업무에 다시 적응해야 하니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 당연함이 반년 째 계속이다. 열심히 일하려는 게 무슨 잘못이냐 싶다가직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일도 집에서 집중해서 하는 게 좋다고 미루다 가져오니 내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하고 오지.' 하는 마음이 종종 들곤 했다.


누군가는 "남편이 밖에 나가 힘들게 돈 벌어다주는데 투정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남편과 동종 업계에서 일하다 잠시 휴직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남편의 업무를 대부분 알고 있기에 굳이 미루다 집에 와서 하는 것이 마뜩지 않았다.


남편이 집을 회사처럼 만드는 것도, 가사나 육아에 점점 무심해지는 것도 서운함으로 쌓여갔다. 나 역시 반년의 독박 육아 속에서 체력이 밑바닥을 치다 보니 쉽게 지치고 힘에 부쳐 남편의 무심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애써 맞춰놓은 온도는 점점 다시 달라져 갔고 나는 다시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 챙기고 있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직장에 다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가사와 육아를 할 때,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가사와 육아에 무심할 특권이라도 있는 걸까? 만약 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엄마'였다면? 무심함이 용납될 수 있었을까?


내가 첫째 아이 육아휴직 중일 때에도 그런 문제로 다투었었다.


 나 : "내가 복직하면, 일하면서 지금 하는 가사와 육아까지 어떻게 혼자 해?"

남편 : "그땐 내가 더 신경 쓰고 나눠서 할게."


지금 와 생각하니 왜 내가 복직을 해야만 가사분담을 더 할 수 있는 것인지, 왜 가사와 육아는 복직만큼 힘든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엄연히 보수를 받고 가사를 해주거나 아이를 돌봐주는 직업도 있는데) 묻지 않았던 나 자신이 후회된다. 그 부메랑이 지금 다시 돌아왔으니. 


그렇게 시작된 남편과의 다툼이 4일째다. 그전에 삐걱거리던 것 까지 하면 족히 2주 이상이다. 화가 나서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대했고 비아냥거리는 지경이 되었다. 긴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정작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빼고 남편의 잘못을 지적하기 바빴다.


남편도 기분이 상해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였다. 사실, 남편 말도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바빴고, 그 와중에 노력했고, 하지만 잘 못할 수도 있지 않느냐, 당신도 힘들어서 그럴 때 있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음 날, 업무 상 이른 퇴근을 한 남편에게 둘째를 맡기고 집을 나와버렸다. 원래는 오랜만에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던 날인데.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출발시키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용기 내서 남편에게 연락했을 때 남편은 라면을 끓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카페에 앉아있게 된 것이다.


카페도 오랜만이고 혼자도 오랜만이라 숨통이 트이는 듯하면서도 남편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하필 카페 테이블 위에 런던 타워브리지 액자가 있어 남편과 던 여행떠올랐다. 아이를 갖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며 들떠서 갔던 여행. 저 배경 똑같이 찍은 사진도 남아 있는데, 벌써 그게 6년 전 일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무심코 마셨다가 너무 뜨거워 다시 뱉고 말았다.


그땐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 줄 미처 몰랐지. 아니, 6년간 남편과 이렇게 많이 다툴 줄을 몰랐다고 해야 할까. 임신, 출산, 육아는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그 사건들을 거치며 남편과 끓었다 식히기를 여러 차례, 그렇게 온도를 맞춰왔다.


아마 내가 남편을 이해하는 것보다 남편이 나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길었고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뜨거워 내뱉은 커피처럼 남편은 여성의 삶을 이해하느라, 그 뜨거운 온도를 맞춰내느라 꽤나 곤욕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던 남편을 생각한다. 고마운 감정이 제일 크고 뒤따라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일상에서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만 전하고 앞선 두 마음은 전하지 못할까.


복잡한 마음을 잠시 덮고 책을 펼쳤다.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이다. 유진목 시인의 인터뷰 후기를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선생님이 소심한 전지전능이라고도 말했던 그것.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남의 좋음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혼자서도 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는 것. 그러다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부르는 것. (p.184)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읽다 가만히 소리 내서도 읽어보았다.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아침에 굳은 표정으로 나간 남편이 떠오른다. 그 이전에 있었던 내 짜증 섞인 잔소리도 들려온다. 그리고 요새 내내 우울해 보이던 남편을 다시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덧붙여보았다.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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