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름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은 사실, 불쑥불쑥 화로 둔갑해버리고 만다. 생활 속에서 반복되는 남편과의 갈등에 '다름을 존중하라.'는 이성적 사고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얼마 전 새 차를 구입했는데 2주도 안되어 남편이 주차된 차를 빼다가 옆 차를 박아 문짝을 다 찌그러뜨렸다. 옆 차는 범퍼가 내려앉아 보험처리도 해주어야 했다. 남편이 원래 운전을 잘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다.그래도 원래잘 못하는 일을 두고 입 밖으로 타박할 수가 없어 '참자, 참자.'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보니 남편은 유튜브로 자신이 즐겨보는 노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유튜브가 뭐든 다 알려준다는데 오늘만이라도 '운전 잘하는 법'이나 '자동차 관리법', '자동차 보험 알기' 같은 것을 찾아볼 수는 없었을까?
결국 낮에 꾹꾹 참던 화가 터져버렸다. 오늘만큼은 좋아하는 영상 볼 시간에 다른 걸 볼 수 없었냐고,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노력해 볼 수는 없냐고, 남편의 자존심을 긁고야 말았다.
남편은 운전이든, 차량관리든 더 잘해보려는 의지가 없다. 더구나 차보험 가입 같은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니 보험 내용이 어떤지도 모르고 있다. 잦은 접촉사고 경험이 있으니 개선해보려 할 만도 한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도 그 사람의 성향이라고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하는 걸까? 나라고 차량이나 보험 관련 지식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닌데, 필요하니까 찾아보고 알게 된 것인데 왜 한 사람만 노력해야 되는 것인지 답답했다.
비단 차의 문제는 아니다. 가계 대출 관련해서도 남편은 어디서 얼마를 대출하고 이율이 얼마인지 이자가 얼마나 나가는지에 관심이 없다. 알려줘도 그때뿐 기억은 휘발된다. 때때로 내가 더 낮은 이율 상품으로 대환 업무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목돈을융통하고대환 절차를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남편은 무관심이다. 그저 "수고했어."라는 말뿐.
그래 놓고 한 달 지출이 얼마였는지 월말에 이야기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이 지출했어?"라고 묻는다. '어디긴 어디겠어. 대출이지 대출! 대출!'나문희 배우의 호박 고구마 대사처럼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다시 또 설명을 해야 한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도, 육아와 관련된 일도 내가 먼저 생각해서 말을 해야 이루어진다. 같은 일이 반복인데도 다시 말해주지 않으면 남편은 잊는다. 그런 대화가 하루하루 쌓이니 내 말투가 고울 리 없다.
그럴 때마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떠올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친구나 손님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쉽게 화내거나 불평한 적은 없다. 그러니 얼굴 붉힐 일도 없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시를 떠올리다 못해 소리 내어 낭독을 해보아도 다음 날이 되면 나는 또 남편에게 쉬이 화를 내고 만다. 남편을 환대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남편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인가 보다.
남편 보기를 방문객같이 하다 보면 언젠가 환대의 날이 올까? 그런 정신승리 말고 실생활에서 환대하고픈 마음이 솟아날 방법은 없을까?
나에게도 남편이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려면 서로 다름을 존중하되 각자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을 인정하고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엑셀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남편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