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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n 25. 2021

참치회가 뭐라고

뒤 끝 있는 편입니다.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안 되던 친구의 연락처를 겨우 알게 되어 연락한 끝에 만나게 되었다며 친구가 멀리서 와준다고 했다.


평소 친구들이 멀리 살기도 하고 다들 바빠서 자주 못 만나기에 남편은 농담처럼 자신은 친구가 없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잡힌 남편의 약속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흔쾌히 다녀오라 했는데...


친구와 참치집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남편 말에 순간 '뭘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빚만 늘어가는 가계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나도 참치회 좋아하지만 비싸서 사 먹자는 소리 못하고 사는데.'라는 옹졸함이 들썩였기 때문이다. 


평생을 '밥 잘 사 주는 그냥 사람'으로 살던 내가 이렇게 쪼잔한 인간이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기와 지내다 보면 나 먹을 거 챙길 시간도 여력도 아까워 대충 때우게 된다. 요리 비책을 쓰는 남자 복직 후 바빠진 탓에 금요일 야식 시간에만 등판하시고, 엄마의 택배 반찬도 받은 지 며칠이면 똑 떨어진다.


그러면 아이 먹이려고 끓인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 것이 제일 편한 식사법이다. 이런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겠지만 요리하고 차리고 먹는 시간을 줄여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다니는 병원 밑에 김밥집이 생겼길래 사 와서 먹었는데, 평범한 김밥이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남편에게 선언했다. "평일 5일 용돈으로 만원만 쓸게." 이틀만 김밥을 먹어도 끼니도 해결되고 용돈도 4천 원이 남는다. 그래서 "남은 잔액은  다음 주에 추가 적립할게."라고 덧붙이며 왠지 저금하는 것 같은 기분에 신이 났더랬다.


실제로 2주일을 실행해 본 결과 김밥도 사 먹고 떡볶이도 사 먹어도 돈이 남았고, '나를 위한 식사'라는 생각에 왠지 그냥 기분이 좋았다. 5일 동안 만원을 못  써서 적립도 되고 있으니 '많이 모이면 남편에게 야식 한 번 쏴야지!' 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떡하니 참치회를 먹고 온다고 하자 갑자기 머릿속으로 내 3달치 용돈을 하루에 쓴다는 셈이 오가며 남편에게 괜한 화를 내고 것이다. 내가 친구를 만난다고 했으면 아마 남편은 더 좋은 걸 사주라고 했을 텐데, 나는 그날 왜 남편에게 그러지 못했을까. 만원 용돈으로 나 스스로를 옭아맸던 건 아닐까.


더 문제는 그래 놓고서 '이왕 갔으니 혼자 먹기 미안해서 내 것도 사 오겠지.' 하는 이상한 기대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심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나란 인간을 도저히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기다린 남편의 귀가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가벼운 두 손을 보았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뒤늦게 남편을 마주했기에 빈 손을 보며 '벌써 냉장고에 넣어두었나?' 하는 생각을 했고, 아이를 재우러 가기 전에 냉장고를 살짝 열어보았다. 없었다! 내 참치회가. 





서운한 마음에 아이를 재우고도 거실에 나가지 않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올 리가 없다. 참치회가 없어서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를 곱씹었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내 모습이, 돈 얼마에 쩔쩔매는 모습이 너무 싫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베풀 줄 알고 너그러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나는 추잡했다. 게다가 내 것도 사 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왜 말 안 하고 혼자 서운해하는지 이상한 심통을 부리는 내가 한심했다. 밤새 뒤척여봐도 내가 내일 아침 남편에게 할 말은 결국 "미안해." 뿐이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미안하단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아 분위기를 풀려고 남편에게 웃으며 "맛있는 거 먹는데 내 생각 안 났어?"라고 묻자 남편이 진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더 싸해지면서 남편이 너무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내 생각을 했지만 비싸서 안 사 왔다고 하는 것과 아예 내 생각을 못한 것과 어느 것이 더 마음 상하는 일인지 분간은 안 갔지만, 내가 냉장고도 열어 봤노라는 얘기에는 서로 웃었다. 다행이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첫째가 "아빠, 왜 엄마 탈장 수술할 때만 잘해주고 그래." 라며 한마디 해주는데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심지어 저녁에 시골 할머니(외할머니)한테 영상 통화하며 아빠가 그랬다며 일러줌.)


그런데 딸 때문에 한바탕 웃다 보니 정작 남편에게 계획했던 사과는 못했다. "미안해 여보, 다음엔 참치 할아비를 먹으러 간대도 괜찮아."


그로부터 몇 주 뒤, 첫째 딸의 생일이자 어버이날이었던 밤, 우리는 어버이날인데 딸 생일 챙기느라 고생한 우리 스스로를 위해 특별히 참치회를 시켰다. 딸이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 바구니를 앞에 놓고 한 조각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마음이 싸했다. 참치회가 뭐라고.


'멀리서 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 '내가 그들에게 기꺼이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될 '을 우습지만 참치회를 보며 다짐했다.





로 일주일 용돈 만원은 없애버렸다. '만원의 행복'인 줄 알았는데 불행의 씨앗이었다. 무언가를 규정하는 게 몸도 마음도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가끔 병원 가는 날에는 여전히 김밥을 사 먹기도 하지만 그 뿐이다. 그 외엔 그냥 집밥을 먹는게 마음이 편하다.


오늘 점심은 미리 만들어 놓은 짜장 덮밥이다. 아이들 먹을 용이라 싱거워서 맛이 그냥저냥이다. 아이 한 숟가락 주고 그사이 나도 얼른 한 입 먹으며 다시 아이 숟가락을 채운다. 느긋하게 혼밥 할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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