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진 May 20. 2021

엘리베이터에서 아빠 냄새를 맡았어

남편의 그리움을 위로할 수 있을까




늦은 밤, 차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다녀온 남편이 의자에 털썩 앉더니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빠 냄새를 맡았어. 술 많이 먹은 사람이 탔었나 봐. 아빠가 술 드시고 오셔서 수염 난 턱을 얼굴에 비비실 때 나는 냄새랑 똑같더라. 사실 술 냄새는 안 좋은데 방금은 그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어. 아빠가 생각나서.


남편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애잔한 눈빛은 감출 수 없었다. 책을 읽던 나는 가만히 책장을 덮었다. 덮은 책장처럼 입도 닫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초 사이에 수많은 대답생각하다 그냥 같이 웃었다. 나의 말 몇 마디로 남편의 그리움을 위로할 수 없다면 그냥 그리워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버님은 타국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시다 입국을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이 스물한 살 되는 해였다. 그곳의 정확한 사정과 죽음의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도 없는 외로운 죽음이다는 것에 남편 늘 안타까워했다.


책을 좋아하시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으셨던 아버지, 주말마다 같이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주셨던 아버지,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에게 긴 편지를 써주셨던 아버지, 의로운 일을 하려다 회사에서 내쳐진 아버지,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떠나야 했던 아버지를 남편은 많이 그리워했다.


남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결혼을 앞두고 더 커졌다. 청첩장을 맞출 때도 결혼식장의 부모님 자리를 떠올릴 때도 남편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아버님을 모신 납골당에 같이 갔다. 남편 몰래 아버님께 써온 편지를 읽으며 결혼식장에 오시지 못할 아버님 앞에서 먼저 결혼반지를 나눠 끼웠다.


1년 후 첫째 아이 임신 중에 남편과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었는데 그 드라마에는 과거의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무전기가 나온다. 남편이 자기에게도 저런 무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왜냐고 물으니 "아빠한테 연락해보고 싶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 씁쓸하게 말했다. 


게다가 그 드라마가 미제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인지라 남편은 자기그 당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타국에 가서라도 끝까지 더 알아봤어야 되는데 무력하게 있었다며 후회하고 죄스러워했다. 그때부터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 남편의 마음이 어떨까 헤아려보곤 한다.





첫째 아이를 낳고 난 후 남편은 아버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손녀를 무척 예뻐하셨을 거라며 아쉬워도 하고, 딸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를 키울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씩 납골당에 가서 딸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세 살 무렵이 되어 갔을 때 딸아이는 납골당에 흘러나오는 반야심경 외는 소리에 갑자기 흥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불상 앞에서 춤을 추는 딸아이를 급하게 말렸지만, 어쩌면 아버님은 흐뭇하게 보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딸아이는 그 뒤로 부처상을 보면 절 할아버지(아버님)가 계신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족을 손으로 꼽을 때 꼭 절 할아버지도 챙겨서 남편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딸아이가 4살 때 친정 엄마가 며칠 다녀가신 적이 있는데 그날 밤의 대화는 이러했다.


나: 할머니 와서 좋았지? 엄마도 엄마의 엄마랑 있어서 너무 좋았어.

딸: 할머니 가니까 속상해. 눈물 날 것 같아. 근데 아빠는 엄마(어머님)가 아프고 아빠(아버님)는 하늘나라에 가서 속상하겠다.



순간 마음이 울컥하며 말문이 막혔다. 딸이 생각할 때 할머니가 와서 엄마는 좋겠지만, 아무도 올 수 없는 아빠는 속상할 것 같았나 보다. 나도 늘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 중인데 43개월의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아이 눈에도 아빠의 그리움이 보이는 걸까?

다행이다. 남편의 그리움을 위로할 한 사람이 더 있어서.






아버님의 기일이 되면 평소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그때 못 드셔 본 요즘맛있는 음식들을 에 올린다. 그리고 아버님의 사진 앞에서 음식을 먹으며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들려주는 아버님과의 추억 이야기를 나도 딸아이도 좋아한다.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할 수는 없을지라도, 같이 그리워하고 오랫동안 이야기하며 아버님을 추억하는 이 남편에게 작은 위안이 되길 소망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아버님과 함께 있지 않지만 함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금바스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