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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Nov 02. 2021

어린이집 현관문에 귀를 대보는 마음

둘째 아이 어린이집 적응기(1)




올해 초, 13개월이던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어린데 보낸다고, 아이는 세 살까지 엄마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한 마디씩 했지만 하반기 복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만류하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우리 애 좀 봐주실래요?'라고 속으로 말하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3월 2일이 되었다.


원래 어린이집을 처음 가는 첫 주는 보호자와 같이 1시간 정도 적응기간을 가지는데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 아이만 들여보내야 한다고 했다. 


2020년 2월생인 둘째는 코로나 베이비다. 1년간 거의 외출이 없었기에 유독 낯도 많이 가린다. 그런 둘째가 어린이집 현관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바로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다 엄마가 갑자기 자길 그곳에 내려두고 멀어지니 충격을 받았는지 공포감에 휩싸인 얼굴빛을 하고 나를 바라보며 "엄마, 엄마"하면서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20분만 있어보자는 선생님 말씀에 현관문을 닫고 나왔지만, 문밖으로 들리는 아이의 통곡 소리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들어가셨는지 울음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나도 모르게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우는 것도 걱정이고 너무 울어서 혹시 선생님이 힘들어 화를 내시면 어쩌나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1층이라 사람들이 자주 오가니 어린이집 현관문에 계속 귀를 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생님들을 믿고 기다리자며 자리를 떴다. 어린이집 근처를 서성이며 2시간 같은 20분을 보내고 다시  어린이집 벨을 눌렀다.


곧 아이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며 현관문이 열렸다. 다시 아이를 봤을 때 나는 놀라서 얼른 아이를 받지도 못했다. 낯선 사람들과 있게 된 아이는 머물던 20분의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울었다고 했다. 머리를 감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악을 지르며 울고 있는 아이는 나를 보고 더 크게 울었다.


겨우 품에 안고 달래며 집에 돌아왔지만 아이는 멍한 눈빛으로 축 쳐져서 긴 울음 후의 끅끅거림을 반복했다. 말도 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맞추려고도 하지 않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자면서도 한참이나 끅끅 거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울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너무 어린아이를 보내서 이런 상황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남편과 내가 잘못 결정한 것일까. 우리 욕심이었을까. 


다음날은 어린이집 현관을 보자마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20분 동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집에 와서도 또 축 쳐진 채 내 품에 안겨있다 잠이 들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것처럼. 아니, 지옥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처럼.





아이는 설상가상으로 그날 오후부터 콧물과 기침을 동반한 감기 증상을 보였다. 결국 수요일부터는 가정보육을 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보내봤으나 여전히 아이는 울다 지쳐 돌아왔다. 마음이 약해진 남편과 나는 결국 어린이집 보내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내년에 어린이집을 보내면 적응기간을 다시 거쳐야 하므로 복직 시기는 최소한 1년 6개월 후가 된다. 경제적으로도 나의 경력에도 제동이 걸린다는 것을 알지만 혼절 직전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내년에 어린이집 입소대기에서 탈락하는 것인데, 그런 경우의 수까지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보내지 않는 것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요새 출생률이 낮아 지자체마다 출산 장려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장려금이 아니라 마음 놓고 언제든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이다.


다른 아이들과 입소 경쟁하지 않고,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맞벌이 부부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이 일회성의 장려금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


둘째, 셋째일수록 출산 장려금이 높던데, 첫째조차 마음 놓고 키울 수 없다면 어떻게 그다음을 도모할 수 있을까. 양육자가 첫째를 키우며 사회 보장을 충분히 누린다면 자연스럽게 둘째도 낳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면 좋겠다. 일의 만족도는 낮은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만을 강조해서 어린이집 학대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교사들의 복지 수준과 업무 만족도를 높이면 좋은 기운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 텐데.


며칠 동안 어린이집 현관문에 귀를 대보며 속상하고 염려했던 마음은 언제나 미안함으로 귀결되었다. 게다가 그렇게 돌아서 나올 때마다 그 시간에 1층을 청소하시는 미화원 할머니께서는 어린 게 안쓰럽다고 혀를 찼고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일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는 엄마를 슈퍼우먼이라 칭찬하는 우리 사회는 아이의 문제가 발견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일하는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다.






죄인이 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싶다.

교육 기관을 의심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싶다.

'나'와 '엄마'가 공존하는 생활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게 그렇게 큰 욕심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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