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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Sep 17. 2021

엄마, 임신으로 검색해줘

고민되는 아이의 성교육




둘째 출산이 임박했던 작년 겨울, 첫째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할 때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그러나 정작 첫째는 그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결혼'에 관심이 많았다.


다섯 살이던 딸아이에게 알라딘 책을 읽어주었을 때다. 이야기가 끝난 뒤 요술램프가 있다면 소원 세 가지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딸에게 물었다.


첫째, 정우(가명, 친구)랑 결혼하는 신부가 되는 것. 둘째, 동생 같은 아기를 낳는 것.
셋째, 결혼할 때 엄마가 할머니여도 내 결혼식에 꼭 오는 것.


두 번째 소원까지는 귀여워서 웃기도 하고 '다섯 살이 왜 이렇게 결혼에 얽매이게 되었나' 순간 고민 중이었는데 세 번째 소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울고 말았다. 그때가 정말 온다면 울지 않고 기쁘게 축하해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딸이 6살이 되자 갑자기 임신과 출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과 동생이 태어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다 급기야 키즈 유튜브에서 임신으로 검색을 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제 그런 이야기를 궁금해할 때가 됐나 보다 싶어 가벼운 성교육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키즈 유튜브여도 임신 관련 동영상들에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임신으로 검색해달라고 하면 불편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다른 콘텐츠로 유도해보아도 아이는 임신 아니면 출산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싶어 했다. 


아이는 옷 속에 인형을 넣고 임신 흉내를 내기도 하고, 동네에 임신하신 분이 지나가면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 그려진 임산부 표시를 보고 반가워 쓰다듬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들려주는 출산기가 식상했는지 "아빠가 여자라면 진통할 때 어떤 소리를 냈을 것 같아?"라고 물어 남편이 적잖이 당황한 적도 있었고,

통이 심하다는 나에게 남편이 "진통제 먹었어?"라고 묻자 옆에 있던 딸은 눈을 동그랗게 트며 "뭐? 진통?" 이러며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가끔 나에게 임신 과정을 설명해준다며 '정자, 난자, 음경, 질, 자궁'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딸을 보면서 아직 너무 이른 나이에 저런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넌 아직 몰라도 돼."같은 말을 하거나 대화를 기피하는 인상을 주어 혹시나 아예 그런 대화를 하려 하지 않을까도 걱정이 되어 내색 없이 들어주고는 한다.


혹시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책도 찾아보고 검색도 해보며 머릿속으로 여러 답변들도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놀라거나 거북스러운 느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답변을 해주고 싶어서.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 아빠에게 성교육받았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나도 묻지 않았고 학교 수업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것이 성교육의 전부였다. 물론 지금 기준에서 그 성교육은 순결교육에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사실 딸에게 성교육을 한다면 '정자와 난자'의 만남보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자라도록. 더불어 나와 다른 젠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인간으로 컸으면 좋겠다. 가끔은 이런 방향성이 교육 기관이나 사회에서 습득하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가정에서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친한 어른일지라도 귀엽다며 볼에 뽀뽀를 요구할 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나아가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그럼 대신 뽀뽀해줘." "뽀뽀해주면 주지."같은 농담과 장난식으로 성적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게 우리 부부의 규칙이다.


또는 아이가 동성의 친한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할 때 굳이 "결혼은 남자랑 여자가 하는 거야."라고 정정해 주지 않고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하는구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언젠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결혼은 남자랑 여자가 하는 거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또래(결국은 그 보호자들)의 영향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아이도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주는 존재일 테니 나도 다시 아이에게 이야기해준다. 


"예전에는 남자랑 여자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사랑하면 누구나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건 자신이 선택하는 일이야."


과연 아이는 친구에게 다시 이야기해줬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적어도 '고민'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나와 남편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감추려 하지 않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와 남편 마음 속에도 '꼰대'가 살아 숨쉰다. 아이에게 탁 터놓고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 아이가 깊은 내용을 질문할까봐 두려워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멀다.


요새는 성인 대상의 성교육 강의도 많던데 일단 나부터 더 배워보는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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