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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Sep 10. 2021

잘 가, 다른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해

5살에게도 작별 의식은 필요하다




낡은 소파는 가루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잦은 마찰이 있던 부분의 재질이 자꾸 벗겨졌기 때문이다. 버릴까 고민하다가 소파 커버를 씌워 조금 더 연명시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염이 있는 남편과 첫째에게 커버의 먼지들은 해로웠다. 더구나 커버와의 마찰 때문에 소파 표면은 계속해서 벗겨져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이제 곧 둘째가 기어 다닐 것을 생각하니 결국 처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폐기물 스티커를 사 와 붙여 남편과 함께 수거장으로 옮겼다.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넓어진 거실을 보며 남편과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자 잘못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후 집에 온 첫째가 소파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더니 버렸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을 시작한 것이다.


소파 보고 싶어, 인사도 못했는데



아이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계속 울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남편과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결국 남편은 폐기물 수거장으로 딸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덩그러니 놓인 소파를 보고 달려가 앉아 다시 울기 시작했단다. 여느 때처럼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한참 시간을 보내더니 손을 흔들고 작별을 고했다고 했다.


그날 밤 육퇴 후 남편과 나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딸아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었던가에 대한 반성이었다. 집안의 물건을 '어른'인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아니, 그렇다는 인식조차도 없이 당연한 듯 그냥 처리해버린 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파는 우리보다는 딸이 더 많이 사용하던 가구인데... 첫째는 9개월 때 소파를 잡고 처음 게걸음을 걸었고, 소파에 수없이 오르락 거리며 미끄럼을 타고 점프를 뛰었다. 3살 무렵엔 TV에 집중한 나머지 소파에 앉은 채로 소변을 보았고 아침잠이 덜 깬 날이면 으레 소파에서 한참이나 뒹굴거렸으니 소파가 무던히도 우리 딸을 잘 받아주었던 셈이다. 


우리에겐 그냥 앉는 곳이었지만 딸에게는 놀이터이자 쉼터였고 성장의 기록이었다. 딸아이의 앨범을 보면 난아기가 5살이 되는 세월 동안 가장 많이 사진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소파였다. 해마다 쑥쑥 자라난 아이의 배경에는 늘 똑같은 소파가 함께 했다.


남편과 나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의사 결정권을 가진 가족 구성원으로 대우해주지 않은 것도,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준 것도 모두 우리 잘못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실내 미끄럼틀을 중고로 구입해 거실에 두고 소파가 없으니 미끄럼틀도 놓을 수 있다고 과장하여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한동안 딸아이는 바닥 생활이 불편해서인지, 그리워서인지 소파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지난여름, 새 차를 구매하게 되어 타던 차를 중고로 팔게 되었다. 차가 더 크고 편안해서 아이도 신나 할 거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비밀로 하고 "짜잔~" 하고 공개했을 때 딸아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다가 입을 떼었다. "우리 하얀 차는?" "그건 이제 다른 사람한테 팔아야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작년 여름의 소파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중고차 매매업자가 차를 가져갈 때 남편에게 딸아이를 대동하게 했다. 아이는 울면서 뒷 좌석에 누워도 보고 앞 두 자리에 각각 앉아보기도 하고 차를 쓰다듬기도 하더라고 남편이 전다. 차를 가지러 온 사람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며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딸을 만류해 차와 작별을 고했고 매매업자가 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떠나는 차 뒤로 딸아이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단다.


잘 가, 다른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해!



남편은 덩달아 마음이 울컥했다고 했다. 전해 듣는 나 역시도 아이의 마음과 표정을 상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의 감정도 언제나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아이에게서 또 배운다.


소파 때와 달리 작별 의식을 가진 딸아이는 금세 새 차에 적응했다. 가끔 차창 밖으로 옛날 차와 같은 모델이 지나갈 때면 "우리 차도 누군가 저렇게 타고 있겠지?"라고 감상에 젖은 듯 말할 때만 빼면.






사실, 나도 울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 그동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무려 '일시불'로 구매한 나의 첫 차였다. 애정과 추억이 듬뿍 담긴 차를 떠나보내며 내 마음도 허전해서 눈물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내 정든 차와 작별 의식을 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이든 물건이든 정든 것과의 작별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른이든 아이이든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딱히 애칭도 없었던 내 첫 차, 지금쯤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또 다른 추억을 쌓고 있겠지.


수고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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