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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Nov 19. 2021

"아프면 안 돼."(a.k.a. 어린이집 못 가잖아)

둘째 아이 어린이집 적응기(2)




지난 3월, 세 번 등원 후 어린이집을 퇴소한 둘째가 9월부터 다시 등원을 시작했다. 재입소를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빈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이제 아이도 19개월, 제법 말도 하고 말귀도 잘 알아들으니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줄여보려고 첫 등원 며칠 전부터 어린이집 문 앞까지 산책을 다니며 "이제 저기 가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 거야"라고 반복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9월 1일, 기대와 달리 아이는 예전처럼 대성통곡을 하며 들어갔고 다시 30분의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30분 후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벌게진 눈으로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지려는데 선생님께서 3월보다 훨씬 덜 울었다고, 울음 그치고 놀잇감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포기하지 마시라고 응원해주셨다. 그렇게 2주 동안 30분씩 아이를 다독이며, 내 마음도 다독이며 등원을 시켰다.


2주 후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을 1시간으로 늘렸고 그렇게 또 2주가 지났다. 아이는 여전히 울면서 들어가지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어느 날엔가 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왔을 때는 기쁘면서도 눈물이 핑돌아서 한참 동안 사진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그즈음 어린이집 현관문에 귀를 대보는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다 벌에 쏘이고, 열감기를 앓으며 2주간 어린이집을 못 가게 되었다. 그 후, 다시 등원한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이는 또다시 대성통곡을 했고, 적응 기간을 다시 가져야 하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우려와 달리 아이는 점심 식사까지 하고 잘 머물다 왔는데 그날 마침 할로윈 행사가 있어서 볼거리도 많고 신기해서 잘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다니! 어린이집을 다녀도 늘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니 하루가 빠듯한 기분이었는데 하루 세끼에서 한 끼만 빠졌는데도 내 일상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출산 후 20개월 만에 아이가 없는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소망해마지 않던 '혼밥'! 특별할 것 없는 커피 한 잔과 샐러드를 먹으며 브런치 피드를 열고 구독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심장이 두근댈 정도였다.


이후부터였다.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한 것이. 하원 후 산책을 할 때도, 집에서 잠시 환기를 시키는 동안에도 아이가 감기에 걸릴세라 신경 또 신경을 썼다.


어느 날인가 산속의 지인 집을 방문할 때는 마스크 착장은 물론 발끝까지 오는 큰 겉 옷을 입힐정도였다. 그렇게 아이에게 점퍼나 조끼를 입히다 보면 무심코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아프면 안 돼, 어린...... 얼른 입자."



내 말은 사실 "어린이집 못 가잖아."라고 이어지는 것을 아차 하고 고쳐 말한 것이었다. 아이가 못 알아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민망함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재빨리 말을 바꾼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당연히 속상하고 걱정도 많이 된다. 그런데 이제 그 이면에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못 가고, 그래서 나의 고요한 일상(4~5시간 정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이런 변화를 같이 느끼고 있는 한 사람이 더 있으니, 바로 남편이다. 남편이야 어차피 출근을 하니 아이의 등원 여부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11월 둘째 주에 처음으로 낮잠을 자고 온 날이었다. 그날 내가 기꺼운 마음으로 남편이 해야 할 가사를 다 해놓아서 퇴근 후에 남편이 몹시 기뻐했더랬다. 그런데 육퇴 후 비어타임에 남편이 추가로 말하길,


"애기 자고 오니까 여보가 나한테 화를 덜 내는 것 같아서 좋다."


순간 둘 다 크게 웃었고 나는 민망함에 "내가 뭘~ 똑같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나도 인정한다. 아이한테 시달린 하루 끝에는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짜증스럽게 대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남편이 대놓고 그렇게 말하니 나의 작은 그릇에 부끄럽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적응 잘해주고 있는 둘째에게는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고.





오늘도 나는 겉 옷을 여며주며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가야 미안해,
그런데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아프면 안 돼. 어린이집 못 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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