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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Dec 06. 2021

"ㅅㄹ...ㅅㄹㅎ...사랑해"

딸아이와 함께 본 알사탕 뮤지컬



첫째 딸아이와 알사탕 뮤지컬을 보고 왔다. 아이가 살 때 뽀로로 뮤지컬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2년 만에 찾은 공연장이었다.


딸아이는 이전부터 알사탕 책을 좋아했는데 특히 아빠의 잔소리 부분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과연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한 장면이기도 했다.




딸아이는 몇 주전부터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는 꿈쩍도 안 하고 보며 몇몇 장면에서는 크게 웃거나 열심히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나는 원래 공연을 보면 눈물이 맺히는 이상한 병(?)이 있는데 공연의 내용과 상관없이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들이 무대에서 저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자주 울곤 했다.


게다가 지금은 공연계가 좀 나아진 편이지만, 코로나가 한참 심해 공연도 못하던 시기에 저분들은 어떻게 지내셨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니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구슬이 역할은 물론 할머니, 친구 역할까지 다역을 소화하신 배우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의 잔소리 부분이 지나고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마음 장면이 시작되었다. 동동이가 알사탕을 먹고 아빠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는 장면인데, '사랑해'라는 가사 하나로 이어지는 노래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딸아이도 그게 꽤나 감동적이었던지 집에 와서 남편에게 똑같은 연기를 주문했고 혹시라도 아빠가 잊을까 싱크대 앞에 쪽지를 써서 붙여놓고 침대에 누워 아빠가 노래를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사랑해'가사의 ㅅ,ㄹ 부터 작은 소리로 딸아이의 귓가에 들려야 하는데 부엌과 방 사이가 멀어 재연에 어려움이 있자 남편은 나름 방법을 고안해냈다. 전화기 스피커폰 기능을 활용해서 아주 작게 'ㅅ,ㄹ,ㅅ,ㄹ' 소리부터 들려주기로 한 것이다.


스피커폰을 켜고 딸아이와 누워있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ㅅ,ㄹ' 소리는 점점 커져 노래가 시작되었고 딸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설거지하는 남편을 뒤에서 꼭 안고 말했다.


 "나도 사랑해."


공연의 일부를 흉내 낸 것인데도 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딸아이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고 노래를 부른 남편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딸아이는 자주 알사탕 OST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뮤지컬의 장면들을 자주 떠올리며 즐겁게 재잘대곤 했다.





나는 내심 딸아이가 스스로 '사랑해'장면을 재연했으니 잔소리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이제 딸아이는 나와 남편이 자신에게 잔소리를 다 싶으면,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하는 노랫말을 읊는다.


내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면 "나 그냥 노래 부른 건데." 하는 능청스러움과 함께.


한 편의 공연이 주는 설렘과 감동이 우리 집에 아직도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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