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진 Nov 04. 2021

"쟤 저러다 일 내겠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섯 살 딸아이가 어린이집 하원 후 친구들과 놀다가 친한 남자아이와 손을 잡고 노는 모습을 본 A할머니.


"아까 오전에 어린이집 산책할 때는 ㅇㅇ손 잡고 가더니 지금은 ㅁㅁ랑 저러고 있네. 쟤 저러다 일 내겠네."


주변의 엄마들이 재밌다는 듯 웃고 나도 별 수 없이 그냥 웃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여러 말들이 떠다녔다.


A할머니의 '일 내겠네'라는 말은 '여자'가 조신하거나 지조 있지 못하다는, 나아가 그러다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미소지니 발언 아닌가?


게다가 그런 말을 겨우 여섯 살 난 아이에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지 않나?


평소 언행으로 유추하건대 A할머니의 손자가 다른 여자 친구들과 그랬다면 '여자 여러 울릴 인기남'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하다 보니 화는 배가 됐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할머니에게 바로 되묻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고 능청스럽게 말했어야 하는데!!!!!!






항상 이렇다. 그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다가 뒤돌아서면 할 말이 생각나거나, 할 말이 생각나도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여자'나 '엄마'로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 들어오는 차별적 언행 앞에서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가 화병이 생기진 않을까 싶어 이렇게라도 혼자 끄적이며 화풀이를 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에는 당당하게 앞에서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