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직장생활 생존기 - 19
2021년은 방황의 한 해였다. 2020년부터 팀은 내가 전혀 관심 없는 제조업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팀의 결정이니 따랐지만 2021년이 되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누구도 관심 없는 것들을 개발하다 보니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2021년의 대부분은 예전처럼 의욕적으로 일할 수 없었다.
2022년이 되었다. 팀의 방향은 변함이 없었다. 팀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월부터 새로운 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2월 중순까지 여러 팀을 알아보다가 그중 두 개의 팀에 최종적인 관심이 있었다.
두 팀 중 한 팀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을 때 우리 탐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팀을 확대하게 되었고 어쩌면 제조업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 방향이 당장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같이 일하던 매니저는 다른 팀의 매니저가 되었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 중 몇몇은 그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 나와 함께 제조업에 남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같이 일하던 모두를 옮기고 싶었으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일단 몇 명만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제조업 관련 일을 최소한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니 팀원들 중에서 팀에 가장 오래 있었던 내가 마지막 인수인계를 위해서 남도록 결정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면 그때 옮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토록 싫어했던 제조업에 새로운 팀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팀을 만들려면 매니저도 새로 뽑아야 하고 팀원들도 뽑아야 하고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팀을 옮기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찜한 팀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그 팀에 지원하고 싶다고. 그리고 4번의 인터뷰를 보았다.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
내가 팀의 변화에 만족스럽지 못해 하는 것을 눈치챈 듯한 전 매니저와 팀의 디렉터가 나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른 팀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나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해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정식으로 다른 팀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조직 변화로 새로운 매니저가 된 매니저에게 팀을 떠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어려운 얘기였지만 세 번째 말하는 내용이라 그리 부담감은 없었다. 매니저는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 뒤 디렉터에게서 시애틀 방문 예정이니 시간 되면 한 번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팀에 남은 카드가 또 있지 않을까, 아니면 디렉터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만남을 수락했다.
새로운 팀에서는 나에게 줄 오퍼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매니저와 새로운 팀 매니저는 내가 새로운 팀으로 잘 넘어갈 수 있는 계획을 위한 회의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난 디렉터를 만났다.
디렉터에게 다시 한번 내가 떠나는 이유와 그동안 물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물어봤다. 팀이 나아갈 방향, 팀원들의 커리어 발전 방향, 조직 변화가 실제 팀원들에게 어떻게 반영될지 등을 물었다. 디렉터는 한 달 전에 했으면 좋았을 얘기들을 해주었다. 정말 한 달 전에 해줬다면 팀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제조업에서 당장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한번 흔들렸다. 그리고 그 기회에 대해서 디렉터는 다시 한번 설명해줬다. 새로운 기회의 중요성과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새로운 기회는 내가 같이 일하던 매니저가 맡게 된 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난 디렉터를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팀에서 그 기회를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옮겨갈 팀의 매니저에게 미안하지만 현재 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고 난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팀에 남기로 했다고 했다.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었기에 그 매니저는 좋아하지 않았다. 혹시나 나에게 다른 변화사 있을 시 다시 알려달라고 했다. 물론 그때 나를 다시 받아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디렉터와 전 매니저는 내가 팀 내에서 옮겨도 현재 매니저가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현재 매니저에게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말을 걸었더니 나에 대해서 그리 탐탁지 않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재 매니저 입장에선 그리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다른 팀으로 간 나에게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내용을 물어보는 것보다 크게는 같은 팀 안에 있는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현재 매니저의 태도는 조금 불편했다. 물론 나 혼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2년 가까운 방황을 끝낼 수 있을 기회를 팀 내에서 얻었다. 물론 그 기회는 썩은 동아줄일 수도 있고 황금 동아줄일 수도 있다. 결과는 결국 내가 책임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다시금 내가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팀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새로운 팀으로 옮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