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의 시작은 용돈기입장이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금융교육을 논할 때 이 말은 거의 경전이나 다름없다. 나 역시 그것이 금융에 입문하는 수준에선 좋은 도구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올시다'에 가까운 태도다. 우리가 정석이라 믿어온 이 도구가, 어쩌면 아이들의 경제적 사고를 좁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1. 용돈기입장, '소비 중심 사고'의 함정
용돈기입장의 목적은 계획적인 소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돈은 소비하는 것이라는 소비 중심의 마인드다. 돈의 출발점을 '지출'에 두고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잘 썼는지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합리적인 소비자'의 프레임 안에 갇히기 쉽다. 돈을 축적이나 운용의 수단으로 바라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2. '착한 소비자'를 길러내는 시스템의 한계
"용돈 기입장으로 계획적인 소비를 하자", "과시 소비는 나쁘다", "약자를 착취하는 상품을 사용하지 말자"
교육과정 내내 접하게 되는 이러한 내용들은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지만, 이는 금융교육이라기보다 도덕교육에 가깝다. '착한 소비자' 프레임 속에서 아이들은 금융을 선택의 기술이 아니라 착함의 문제라는 오개념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실제 금융(위험과 보상, 정보의 비대칭, 신호/잡음/유혹 등등)을 선악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금융은 가치중립적인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으로 들어올 때에는 적잖이 선악의 가치판단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도덕교육이 금융교육의 탈을 쓰면서 실생활과 괴리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3. 결국은 '지연된 소비'일 뿐인가?
아무리 용돈기입장을 써가며 계획적으로 소비했다 한들, 축적과 운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저축은 결국 언젠가 쓸 돈이다. 운용하지 않는 저축을 달리 표현하면 지연된 소비에 불과하다. 이 표현이 다소 불온하고 도전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솔직히 말해 선생님들보다 훨씬) 똑똑한 인재들이 AI, 빅데이터, 뇌과학을 동원해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24시간을 연구한다. 이런 마케팅의 파도 속에서 고작 "과대·허위광고를 조심하고, 용돈기입장을 쓰면서 돈을 아껴써라"는 훈계는 너무 순진한 종이방패다. 단순히 용돈 기입장을 쓸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상실해갈 구매력을 방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씨앗'을 사는 종잣돈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4. 이제는 '기입'이 아닌 '사유'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비를 합리화하는 기술이 아니라, 돈을 둘러싼 선택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용돈기입장은 그 자체로 정답도 오답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생각의 출발점이 아니라 생각을 가두는 도착점이 될 때 문제가 된다. 이제 아이들에게 얼마를 썼는가를 묻기보다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를 물어야 하지 않나 싶다.
(1) 기록에서 질문으로: 얼마를 썼는지 적게 하기보다, 이 소비가 내 미래의 어떤 선택(기회비용)을 포기한 대가인지 생각해보기
(2) 관리에서 역할로: 돈을 통제 대상인 '숫자'로 보기 전에, '그 돈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3) 절약에서 선택으로: 단순히 아끼는 게 아니라,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선택하기
마치며.
여기까지 읽은 분들에게 다소 맥빠지는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교사인 나조차도 가계부에다 지출한 이유를 세세히 써가면서 엄밀하게 돈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다. 모든 지출에 기회비용을 따질 정도로 인지적인 자원이 풍부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을 한창 모으던 초반에는 10원짜리 동전 하나 아껴보기 위해 갖은 수를 쓴 적이 있었다.
'그 돈을 씀으로써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포기했느냐'하고 물음을 던지는 행위는 분명 지속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교육적으로 탁월한 의미가 있다. 어렸을 때 이런 인지적 부하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무형의 자산인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이런 과정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교육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한마디 건네보자. 기업이 네 지갑을 열기 위해서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