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참 무탈하지 않고, 참 불편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기준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이끌어주는 대로 살며, 그 삶에서 여러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깊어지며 나름의 기준이라는 게 생기고,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이 생긴다.
나의 가치관과 신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의 삶의 태도는 왜 그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음을 요즘 나의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각자의 시간과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제 6학년이 되는 딸은 5학년 때 교우 관계로 힘들어하며 나에게 공감을 바랐다. 그때마다 나는 딸에게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그게 바른말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의견을 표현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쉽게 말하자면 나댄다는 소리 듣지 않게, 입바른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너만 더 다치고 손해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내게 공감을 원한 거지, 조언이나 해결책을 바란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덧붙여 자신은 계속해서 할 말은 다 하겠다며. 아들은 3학년 1학기때 부반장을 하며, 담임 선생님께서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반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해서 미움을 사곤 했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선생님도 조용히 못 시키는 일을 네가 한다고 해서 말을 듣냐며, 적당히 하라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계속 욕을 먹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나의 말에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런 게 아니라며 엄마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방어적이나 수동적으로 살기를 바라면서 나 역시도 그러지 못함을 안다. 원칙이 있으면 지켜야 하며, 옳고 그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당함에는 목소리 높이는 사람이 바로 나이다. 태생이 이래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참 무탈하지 않고, 참 불편하다.
잠자리에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들에게 방어적 태도를 취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전했다.
"성격은 나를 닮지 않고 아빠 닮기를 기도했는데 어찌 너희는 나를 닮았니? 엄마가 학교에서 교장선생님한테 원칙은 이겁니다라고 말해서 눈밖에 났어.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엄마를 재계약 안 하잖니. "
아이들은 까르륵 웃으며, 어떻게 교장선생님한테 그럴 수 있냐며, 우리보다 더하다며 박장대소했다. 그래서 날 닮은 너희들에게 아무리 옳고, 그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세상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얘기한다고, 너희는 엄마보다 세상이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방어적 태도로 살라고 그랬노라고. 이렇게 밥줄이 끊길 정도면 엄마도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한 맘을 전했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양쪽에서 나를 안아주었다. 나 닮은 두 아이가 이런 나를 보고 조금은 현실과 타협하길,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게 욕심일까.
나는 오늘도 울먹울먹 하면서, 내 할 말을 교무부장에게 다하고는, 집에 와서 말을 삼가지 않음을 후회했다.
"채용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일어난 일이니깐요. 하지만 절차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어요. 내년에도 일 할 수 있냐고 말한 건, 여지를 준 건데, 상황을 미리 알고 계셨으면, 1차 서류에서 저를 걸렀어야 해요. 적어도 다른 학교도 지원하라고 귀띔하셨다면 이 정도로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어요. 선생님 다음에 기간제 교사 뽑으실 때는 이렇게 하지 마세요."
사람 생각이 다 나 같지 않은데 어떻게 누구에게 맞고 틀리고를 논하며, 통하지도 않을 말을 허공에다 던졌는가. 내가 말한다고 해서 미동도 하지 않을 텐데 나는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오길 원치 않아서 통하지도 않은 말을 울먹이며 내뱉었다. 이러면서 어찌 내 아이들에게 방어적으로 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이 무지렁이 신념 따위 버리고 살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