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대하는 태도
지난해와 올 해의 다른 점을 꼽자면, 지난해는 외부 상황에 반응하는 나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면, 올해는 나의 마음 자체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점이 다르다. 어쩌면 '다르다'라는 말보다는 '변하려고 애쓴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작품을 가르치며 갈등은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아가는지에 따라 작품의 주제며, 결말은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시이자, 소설이며, 극이라고. 그래서 우리 삶은 갈등 속에서 삶의 태도를 정하고 저마다 자기 삶을 그려나간다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부정적 언어의 세계와 외부의 부정적 자아를 형성하는데 적합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도 끊임없이 긍정적 언어의 세계를 지향하고, 긍정적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긍정적인 외부 세계에 속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라는 거다. 나의 시는, 나의 소설은, 나의 극은, 나의 수필은 달관하며, 의지적이며, 희망적인 노래를 하길 바란다는 걸 누구보다 그걸 나 자신이 원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애쓴다.
때로는 애쓰는 상황이 억울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누구는 애쓰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을 나는 애써서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잘 안다. 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보다, 연민하며, 연대하며, 사랑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시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내게 부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견디며, 애쓴다. 그리고 그 견디는 속에서 내가 노래하는 언어가 부정적인 언어가 아닌 긍정적인 언어이며, 희망의 언어이길 갈망한다.
삶은 끊임없는 갈등이 존재한다. 내가 갈등을 대하는 방식은 회피하거나 내 탓으로 돌리며 내면을 파괴하는 일에 힘썼다. 지향하는 바와 현실에서 행하는 바는 너무나 격차가 심했다. 그걸 깨닫고 나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회피하지 않고, 이건 내 탓이라며 절망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여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애쓰는 일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며, 그 애쓰는 일이 불공평하거나 억울한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벚꽃이 만발하는 나날이다. 그 가운데 비가 내려 벚꽃 잎이 흩날리며 바닥에 무수히 떨어졌다. 아쉬워하는 마음도 잠시, 그 자리엔 푸른 잎이 솟아나며 나를 반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벚꽃이 만발한 채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비와 바람이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노래하며 지냈다. 그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알면서도 나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마음을 움직이기로 했다. 글을 쓰고, 걷고, 먹고, 보고, 듣고, 말하고 그렇게 애쓰기로 했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