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아빠

사진 4

by 나무

어린 시절 우리 집 여름휴가는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부산에서 무궁화호에 몸을 실어 김천을 지나 간이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함창역에 내려 거기서도 버스나 택시를 잡아, 시골 할머니댁을 가는 일 그게 우리 집의 여름휴가였다. 그래서 내게 여름 방학 동안 생긴 에피소드는 할머니댁에 가는 것, 그것이 휴가이며, 여행이라 여겼다. 그 여정은 내게 꽤나 지루했고, 맛도 멋도 없었다. 그런 나와 달리 아빠는 평안해 보였으며, 누구네 셋째의 모습으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네 누구의 첫째 딸로 불리었다. 나에게 여행은 새로울 것 없는 궁금하지 않은 세계였다. 여행은 '누군가의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라는 인식과 이는 '한 사람을 위한 휴가'라는 생각에 지루함과 고루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반복하며, 휴가를 보내고 그게 여행이라 믿고 살았다.

해와 멈춤

명절이 다가오는 출근길 해를 봤다. 처음엔 지는 달인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빨간 신호등에 멈춰 바라보니 떠오르는 해였다.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이 남동생네와 함께 명절을 보내려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4시간이 걸려 친정을 가던 일을 역으로 친정 식구들이 하기로 한 건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여행은 끝이 났다. 매년 휴가철 시골에서 보낸 아빠는 아들의 휴가철에 맞춰서 여기저기 따라가게 되었고, 본인 위주의 휴가도 끝이 났다. 아빠는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내며 심심하다고 다신 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빠의 여행이 지루하게 된 것이다.


나는 부모의 곁을 떠나 나의 뜻대로 여행을 계획했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한비야의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꿈꿨던 인도 배낭여행을 가겠노라고 말했다. 엄마는 혼자 가기 위험하다고 말렸다. 아빠도 말렸다. 그런데 아빠가 말린 이유는 내게 퍽이나 놀라움을 안겼다. 속된 말로 신박했다. 자기는 평생 비행기 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네가 먼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말에 엄마는 아빠에게 아빠와 다른 의견을 말했다.-부모로서의 입장 차이를 이야기하며, 거기에서 아버지는 날 것을 나에게 보여줬다.- 이야기의 흐름은 어찌 흘러갔는지 한 살 어린 군대를 제대한 남동생이 나와 함께 인도를 동행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첫 해외 여행지로 인도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는 달인줄만 알았던 것이 뜨는 해임을 안 것처럼 말이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며 해가 마치 달 같다고 보냈다. 내일이면 보겠다고 흥겨운 마음을 전하며, 이 여행에서 지루해할 사람이 아빠 한 사람임을 마음속에 두며, 아빠의 신박한 답변에 느꼈던 쓴맛이 올라옴을 느꼈다.

심심하다고. 오지 않겠다는 아빠를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다 비운 아버지를 보며, 어쩌면 나보다 할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조카가 말하는 '애기 할아버지'를. 어린아이 같은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함을 느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