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진 3

by 나무

겨울이 되면 엄마는 월동 준비를 한다. 재례식 화장실 맞은편 연탄 창고에 연탄을 채워 넣는다. 갈색 페인트로 구색을 맞춘 나무 창틀에 박힌 유리창 하나에 두꺼운 비닐을 덮고 문풍지를 사서 바른다. 장롱 속에 있던 목화솜이불을 꺼내 바느질을 한다. 밖이나 안이나 온도 차이가 나지 않는 마루에서 김이 폴폴 올라오는 삶은 메주콩을 방망이로 쪄서 메주를 만든다. 검은 눈동자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를 바라보면, 아기새 입에다 모이 넣어주듯 삶은 콩 몇 알을 입에 넣어 준다. 그리고 메주를 만들고 남은 콩은 내방 한켠에서 담요에 쌓여, 일정 시간 동안 둔다. 담요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남동생은 내 방에 오지 않는다. 엄마는 한 번씩 내 방에 와서 콩을 살펴본다. 콩을 띄우는 냄새는 정겹다. 온 방이 청국장 냄새로 가득 찬 어느 날 엄마가 "이제 됐다."라고 말할 때쯤 콩을 띄운 자리의 담요는 사라지고, 밥상엔 청국장이 올라온다. 아무리 두꺼운 목화솜이불을 덥고, 연탄불이 시뻘겋게 타올라도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없다. 콧물이 줄줄 나와도 감기 한 번 크게 걸리지 않았던 나는 매년 겨울 엄마의 청국장을 먹고 자랐다.

수능이 끝나고 그 해 겨울 눈이 내렸다. 부산에서 눈이 내린 건 초등학교 때 한번, 그리고 두 번째 일이다. 처음으로 주말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가는 길 차도 사람도 뱅뱅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그 겨울, 나는 돈 버는 일이 쉽지 않음을 체험하고 버스로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집까지 갔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다. 집에서 설거지하듯 설거지했다가 선임에게 욕을 먹었다. 바쁜데, 누가 그렇게 설거지를 하냐며, 컵을 하나 들어 입구 주변만 훔치는 기술을 보여줬다. 바빠도 너무 바빴다. 혼나기도 바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그만두라고 했다. 그만두고 난 후 받은 알바비로 아빠 지갑을 샀다. 지갑을 사고 돈이 남았는지, 용돈을 더 보태서 샀는지 기억이 없다. 너무 낡아서 너덜한 아빠의 검은색 지갑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타지 생활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매섭다'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느꼈다. 타지의 기온이 부산의 기온보다 낮았고, 비보다 눈이 더 많이 내렸고, 빙판길이 많았다. 청국장도 없었고, 목화솜이불도 없었다.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는 엄마의 월동 준비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러면서 월동 준비는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고, 나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꽁꽁 언 저수지 둘레를 걸으며 아이가 말했다. "저 위를 걷고 싶어요." 아이에게 걷게 해 주겠다며 발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내민 발과 호수 위를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더니, 걷다가 또 찍어 달란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월동 준비를 한다. 아이들의 방한신발 사이즈가 작아졌는지 확인을 하고, 장갑과 군밤 모자, 목도리를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그리고 각자 방에 자던 아이들을 한 방으로 몰아넣고 둘째를 마치 콩을 띄우는 것 마냥 한켠에 이불자리를 깔아주고 첫째와 함께 자게 한다.-겨울은 난방비가 많이 들어서, 둘째의 방은 내 어린 시절 마루와 같아진다.-그런 방에 띄어진 콩을 보러 가듯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핀다.

꽁꽁 언 물이 추워 보이지 않는다. 그 위에 꽃을 수놓듯 햇볕과 바람이 스쳐 지나갔으며, 꽁꽁 언 가운데에서도 제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는 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옆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내가 있고, 아이가 있다. 아이는 제법 자라서 자기가 인간 난로라며 차가운 엄마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앞장서서 걸어준다. 겨울은 춥다. 매섭기도 하다. 그 추위와 매서움을 오랜 세월 월동준비한 덕분에 묵묵히 서 있다. 서 있는 가운데, 햇볕도, 바람도 스쳐 지나갔으며, 꽃을 수 놓듯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