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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Apr 14. 2023

남의 말을 잘 듣는 것과 귀가 얇은 것

자기 힘으로 생각하기 위하여 

유튜브 강연에서 

"남이 어떻게 말하든 자기가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그대로 살아라."라는 말을 들었다. 

음... 그런가?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말.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근데 그 말이 사실이면 왜 어른들은 다 부자가 아니고, 

왜 다 인생을 잘 사는 것도 아닌거지? 

아무래도 인생의 진리는 전자에 가까운가 보다. 

그런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귀가 얇은" 사람들이 있다. 

누가 뭐라던데? 
누가 뭐라고 하던데? 
그분이 거기에 대해서 많이 알던데? 

귀가 얇은 것과 경청을 잘 한다는 건 동의어일까, 반의어일까, 유의어일까? 

내 생각에는 동의어도, 유의어도, 반의어도 될 수 있다. 

경청을 한다는 건 listen and think 즉, 생각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다. 

귀가 얇은 건 listen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맞는지 틀린지 까지 생각이 이르지 않고, 

그냥 그 말 자체를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왜 B에 대해서 반대했어요? 

라고 물어봤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그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답을 못 한다면,

들은 것도 아니고, 이해한 것도 아니다.

사실 그 사람이 '찬성'이냐, '반대'냐 보다 중요한 건, 

"왜 찬성하느냐?"와 "왜 반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찬성과 반대는 '가치'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그 사람이 어떤 근거로 이 사안에 반대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우선 가치로 두기 때문에 이 사안에 반대하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치에 동의하는지를 논의하면 된다. 

삼단논법처럼, 

어떤 가치에 동의할 것인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에 이르는 길이 쉽다. 

예를 들어, "수능시험만으로 아이들을 대학에서 뽑는 것이 우월한 전략이다."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는 '수능시험이 줄 수 있는 공정성'에 가치를 둔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명시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때, "다양성" 가치를 언급한다. 

고로 그는 하버드에서 왜 '다양성'을 입학기준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때, 누군가 그의 견해를 "수능시험에 찬성한다"고만 얘기하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가 "공정성"이라는 가치 때문에 수능 시험으로만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야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공정성'이냐, 이건 또 별개의 논의이다. 

고로 수능시험이 공정한 것이라는 논증에 실패하면 그의 주장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이 때, 그가 교수인지, 학생인지, 변호사인지, 변리사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에 서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남의 말을 옮길 때, 

자기가 그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해하지 못했으면 옮기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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