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현 May 26. 2023

안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일

직장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

근래 있었던 일이다. 


a를 하는 것에 모든 사람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a는 필수 절차이기는 하지만, 누구도 매우 꼼꼼하게 신경쓰지는 않는 그런 일이었다. 그러니 a를 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a는 회사 업무 프로세스 상 중요한 일이고, 누군가 꼬투리를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a를 조금 더 강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군다나 a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다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댔다. 그걸 왜 강화하냐는 둥, 할 필요가 없다는 둥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서 a를 하지 말자고 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여기가 공산주의는 아니어서, 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a를 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그런 일도 아니었다. 조금 귀찮을 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진짜 a를 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자였다. 


시간이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a를 안 한 사람들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a가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하지? 이제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a를 처리하지? 웅성웅성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문화된 절차이니 안 해도 된다고 했고, 누구는 해야 한다고 했다. 해야 한다는 사람과 안 해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누가 이길까? 결국 귀찮은 일을 다 해낸 사람이 승자다. 문제가 생길 때 그 일을 한 사람들은 문제가 안 되지만, 뭉개놓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불안감 아닌가?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사느니 귀찮은  일 해버리는 게 훨씬 속 편하다. 


이 때 우리는 a라는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대충 처리하자, 어떤 사람은 제대로 처리하자, 어떤 사람은 미루자고 한다. 나중에 큰 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은 군말 없이 일을 처리한 사람이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디테일한 것을 다 챙긴다고 우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꼼꼼하게 해야만 하느냐?" 아주 좋은 문제의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느질 한 것처럼 그 사람의 행적은 공문서, 문서로 고스란히 남는다. 그리고 그 문서에 대한 평가는 본인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물론 먼 훗날의 일이다. 먼 훗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냥 오늘 하루 월급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그런 평가는 결국 쌓이고 쌓여서 미래의 '기회'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다 타인의 능력과 성품을 재단한다. 물론 안 좋은 습성이다. 그러나 나중에 일하면 누구랑 하고 싶다, 누구랑은 일하기 싫다, 누구랑은 일하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런 느낌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중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사라진다. 그럴 때 기준이 뭘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다. 눈 앞에서 매력적인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나는 a를 안 해도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내 소중한 일을 맡기고 싶진 않을 것 같다. 다른 일도 그렇게 할 게 뻔하니까. 


재밌는 건, 직장에서 a는 중요한 일이 아니니 안 해도 된다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약간은 쿨해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고, 그걸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소수라는 점이다. 여기서 '나 같은 사람'은 사실 원래 'a를 강화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야 했던 사람과 같은 부류인 사람이기도 하다. 나도 사실 'a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싫어할 걸 아니까.  


그런데 인생이 또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게, 나는 항상 비주류다. 그리고 내 반대 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류다. 주류는 월급을 시원하게 올려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경영진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만을 얘기한다. 나도 동조하는 척 한다. 당연히, 그런데 경영진에 대한 불만은 불만인 것이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건 다른 문제다. 경영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을 다 안하면, 결국 불안해지는 건 자신이다. 


a를 어떻게 할까 회의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귀찮아도 그냥 했으면 지금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