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현 Nov 09. 2023

볼티모어와 세종시의 경험

David Harvey는 왜 마르크스를 밝히길 꺼려했을까? 

(참고) 이 글은 여기서 더 예쁘게 보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20대 청년들이 보면 세종시는 원래 있었던 도시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 이름조차 없었던 도시였다. 


수도이전은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세종시의 첫 마을은 2011년 12월 26일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세종시를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도시구조가 조금은 독특하다. 세종시 가운데로는 금강이 흘러가고 한 가운데는 공원이나 녹지이고, 그 주변을 뺑 돌면서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둥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환상형’ 도시라고 한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이 설계는 국제공모를 통해서 이뤄졌다. 

세종시 도시설계는 2005년 11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추진위원회가 국제 공모를 통해 공동 1위작으로 선정한 스페인 건축가 안드레스 페레아 오르테가(Ortega)의 ‘1000개의 도시’였다. 


정부는 당시 “사회적 특권과 차별이 없는 민주적 도시 구조”라며 “도시 기능이 분산된 위계 없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사람과 돈, 교통이 도심에 집중될 것을 우려해 아예 도심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 국제공모의 공동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데이비드 하비였다. 이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비는 ‘도시디자인을 평가하고 도시 생활의 질을 비평하는데 필요한 여섯 가지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런 조건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하비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자본』13장의 네번째 각주에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비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자신을 마르크스에 심취한 앵무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느낌에서였다고 한다. 실제 이와 같은 느낌은 하비의 코멘트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비는 한동안은 어떤 아이디어가 마르크스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에서 왔다는 걸 아는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969년 볼티모어의 폭동 이후 존스 홉킨스 대학에 갔을 때, 그 폭동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때 하비는 주택문제에 주목했는데, 폭동이 도시의 불평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사회학이나 도시경제학으로는 이와 같은 주택 불평등과 폭동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하비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비는 연방주택의 관리와 관련한 보고서를 쓰면서 주택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점에서 썼고, 이 내용을 은행가, 집주인, 부동산 업자, 시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다. 당시 이와 같은 해석은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하비는 몇 년 동안이나 이 아이디어들이 마르크스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재미 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해석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아이디어가 마르크스에서 왔다고 하면 다소 의아해 하더라는 것이었다. 반면 하비는 그런 경험이 아주 짜릿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4-5년 동안 그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인터뷰). 시기적으로 보면 1969년에 지리학에서의 설명(Explanation in Geography)를 쓴 이후로 4년이 지난 1973년에 『사회정의와 도시』(Social Justice and the City)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노골적으로 도시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해석하는데 있어서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Harvey, 1973: 287). 그러면서 그는 소위 ‘마르크스주의자’(so-called Marxists)들이 그의 저작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precious tool)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다. 


1973년 『사회정의와 도시』(Social Justice and the City)는 하비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이 책에는 인터뷰에서 하비가 밝혔던 도시구조와 사회 불평등, 그리고 마르크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철학적으로 연결되는지 규명을 시도한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하비의 이 저작은 하비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전에 나온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후로도 하비는 대학원생들과 마르크스의 저작을 계속 읽으면서 자신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킨다. 사실상 하비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자리 잡기까지는 몇 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똥손도 화가로 만들어주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