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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Apr 06. 2020

지금 당장 페북을 멈춰야 하는 이유

10년동안 페이스북에 서성된 이야기

2020년 페이스북을 비활성화(deactivate) 시켰습니다. 아래와 같은 후기를 간단히 남겼는데요. 사실 페이스북을 그만둔 속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기억되니, 거의 10년은 했던 셈이네요. 7분밖에 안 됐을 때 찍어서 반응이 몇 개 안 찍혔네요. 

사실 지금도 제가 페이스북을 완전히 떠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 활성화를 처음 시켜본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데요. 왜냐하면 제가 페이스북을 떠난다고 공식 선언했거든요. 


갑자기 계정 비활성화 시키고 없어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시간을 정해놓고 그 때까지 댓글에 반응했습니다. 하루 이상 끌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5시간(?) 정도 열어놨던 것 같습니다. 


몇 몇 분들이 인사를 남겨주셨어요.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서 자주 뵈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페친의 경우에 7년전인가? 어떤 모임에서 뵙고 페친을 맺었는데, 그 뒤로는 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뵙지 못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 이후부터는 거의 글을 쓰면서 살다 시피 했습니다. 글을 안 쓴 날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편지가 되었든, 야매 소설이 되었든, 거의 매일 썼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지금까지 보고서 몇 편, 논문 몇 편, 단행본 2권 정도 썼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동안 쓴 것에 비해서 수확량이 너무 작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정말 많이 썼거든요. 블로그에 올렸던 야매 소설도 10편 가까이 되었던 것 같고요. 책을 쓰려고 20페이지 정도 집필하다가 중간에 집어던진 원고도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적은 산출물 밖에 없었던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끈기 부족이죠, 뭐. 긴 글을 완성하려면 엄청난 동력과 끈기이 필요하거든요. 여러번 실패해봐서 잘 알아요. 그런데 사실 긴 글도, 작은 글의 모음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순간 순간 글을 쓰기 바빴지, 큰 그림에서 기획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의 글을 기다려주는 독자가 없다고 생각했다고나 할까요? 항상 저는 글을 쓰는데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불만이었습니다. 원래 초심자가 연장을 탓하는 법이죠. 


그런 점에서 페북은 제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이어서 좋았어요. 글을 쓰면 즉각 반응이 오기도 했고요. 그 덕분에 제가 누군지도 조금은 알릴 수 있었죠. 그리고 페북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 전에는 도무지 나에 대해서 1도 모르던 사람들도 이제는 "글 쓴다고 하는 애구나"라는 정도는 알게 된 것 같았어요. 큰 수확이죠. 


특히 페북은 자기가 글 좀 쓴다 싶은 사람들은 전쟁터처럼 몰려들어서 글쓰기 경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하죠. 어느 날, 의사도 와 있고, 저명한 물리학자도 페북을 하고 있었고, 정치인들도 페북에 유입되었어요. 심지어 대통령도 중요한 메시지를 페북 포스팅으로 남기기도 하죠. 이제 페북은 말 그대로 국민신문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어쩌면 정말 좋은 거죠. 왜냐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항상 전문가들이 쓱 나타나서 전문적인 썰을 풀어주니 팩트체킹하는데 도움도 되었어요. 


저는 페북의 엄청난 헤비유저(heavy-user)였어요. 골수분자이지요. 하루에 한번만 포스팅하기로 마음속으로 규칙을 세웠다가 어느날은 두 개, 세 개까지 글을 올리죠. 글을 올릴 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글거리가 생각나거든요. 지금은 그런 짓까진 잘 안하지만, 예전에는 유명한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Harvey)의 글을 번역해서 올리기도 하고, 폴 크루그먼(Krugman)의 인터뷰기사를 번역하기도 했어요. 여기가 학문 교류의 장이라고 생각한거죠.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지만, 잃은 것도 많아요. 첫째, 저는 많은 시간을 잃었어요. 아직도 저는 할 일이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의 1/10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제 안에서 차분히 실력이 쌓여야 할 시간을 페북에 너무 많이 써버렸어요. 좋아요를 확인하고, 댓글을 확인하고, 상대방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물론 이것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 많은 시간은 어떤 한가지 촛점을 향해서 모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정치, 사회, 생물, 경제, 지리, 여성문제, 지구온난화, 비건, 영화, 드라마, 영어공부, 운동, 프로그래밍 등에 대한 글을 썼는데, 그 모든 글은 사실 "나는 이런 것도 쓸 수 있어요"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별다른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어요. 하다못해, 제 전공인 지리학에 대해서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면 저는 어엿한 지리학자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의외로 페북을 통해 많은 친구를 잃었어요. 무슨 의미냐면, 첫째, 제 글은 항상 비판점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어요. 저는 누구나 좋아할 글을 절대 쓰지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제 주장을 싫어하게 되죠. 또 제가 포스팅을 너무 자주하기 때문에 제 글에 싫증을 내는 분들도 아주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제 포스팅에 댓글로 반박하지 않고, 자기 담벼락에 "저런 무식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저런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비판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 사람은 왜 내 글에 직접 반박을 하지 않고 자기 담벼락에 나를 비난하는 댓글을 썼을까요? 저 사람과 부딪치기는 싫지만, 저 사람이 틀리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는 심리인 것 같았어요. 


어느 날은 안암동의 명문대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제 포스팅에 "뇌는 어디다 쓰냐"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어요. 저는 솔직히 그 댓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는 그 사람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정도로 예의없이 글을 쓰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서 그 사람의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놀라웠어요. 그 분은 하루에도 몇 개씩 거의 욕에 가까운 사회비판을 매일 쏟아내었어요. 물론 전문지식이 있었고, 나름대로 통찰과 시각이 있었어요. 문제는 우월감과 태도였어요. 옛날 교수가 학생을 눈물 찔끔 나게 혼내는 것처럼 그런 톤과 태도로 정치인과 관료들을 비판했어요. 그런 태도로 어떻게 교수직을 유지하는지 솔직히 궁금했어요. 그리고 그 분의 학생들이 불쌍했어요. 그런데 그 분에게는 많은 팬들이 있었어요. 그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 분의 글을 보는 것이 피곤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그 정신건강에 나쁜 글을 끊지 못했어요.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여러 꿈을 꾸었지만, 그 중에 한번도 변하지 않았던 꿈은 "글쟁이"였어요. 사실 그 꿈을 어느 정도는 이뤘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매일 글을 쓰고 글을 써야 밥을 벌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궁극적으로 제 글을 제 이름으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자기의 내공을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글의 고유성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남과 비교하고 싶지 않고, 제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페북은 좋은 곳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어요. 더 이상 내 글을 조각내어 쓰고 사람들에게 평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싶지 않았어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까지 충분하게 글을 쓰고 난 이후에, 그 다음에 조금 더 완성된 전체를 가지고 평가받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요. 


지금도 저는 브런치를 포함하여 매일 어딘가에 글을 쓰고 있어요. 


그 변화가 무엇이든, 우리에겐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북을 끊은 것은 큰 도전이지만, 그 도전이 뭔가를 제 인생에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어요.


무엇보다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만나고 싶어요. 페북에서 안부인사 나누느니 만나는 것이 우리를 훨씬 행복하게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친구는 랜선 밖에 있는 법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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