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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Aug 06. 2020

오늘도 실패할 것을 찾는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실패 

나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신을 만약 만날 수 있다면 다음 두 가지는 꼭 물어 보고 싶다. 

왜 나를 이렇게 살이 잘 찌는 체질로 만드셨습니까?
왜 저는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데 골프가 늘지 않습니까? 


빠지지 않는 살

내 인생에서  약 8년 정도 나는 90kg이 넘는 몸무게를 유지하고 살았다. 

이 때 당시는 거의 피크를 찍었던 시절인데 2017년 97kg을 찍었다. 

2017년 
운동 좀 하시죠? 

이렇게 말하시는 분도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틈나는 대로 골프연습장에 다니면서 드라이버를 한시간씩 때렸고, 

평일 저녁에는 매일 골프연습을 했다. 

주말에는 라운딩을 나가거나, 등산을 갔다. 

거의 운동을 쉬었던 주말은 없었던 것 같다. 

등산을 한번 다녀오면 육수로 샤워를 했고, 끕끕한 땀냄새를 맡으면서 막걸리를 즐겼다. 

등산 한번 갔다오면 오히려 살이 더 쪄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여담으로 말하지만, 등산은 진짜 위험한 운동이다. 

"운동을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먹어도 되겠지?"라고 보상심리를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운동을 실컷 하고, 

운동한 것보다 더 먹고, 

살은 찌고, 

몸은 더부룩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무게를 보면서 좌절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시간만 나면 인왕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마음 한 켠에 

그래도 나는 건강한 돼지잖아. 마르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될 바에야,
건강한 돼지가 낫겠어. 


그리고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니 나는 건돼(건강한 돼지)이면서 동시에 근돼(근육돼지)이기도 하잖아? 


사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뚱뚱한 내 사진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 사진을 잘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외모가 망가지자 나는 예쁜 아이들과 꽃, 풍경, 그리고 음식을 사진으로 많이 남겼다. 


하루는 회사에서 어떤 분과 상담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 분에게 이것 저것 아는 대로 설명을 해 드렸다. 

한참 뒤, 나중에 그 분이 다시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그 때 상담 받았던 사람인 줄 모르고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때 그 뚱뚱한 분 아직도 회사에 계세요?

그 주에도 나는 운동을 나갔다. 살은 빠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아 밤에 또 한 잔을 했다. 


늘지 않는 골프 이야기 

처음 대전에서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골프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7번 아이언을 처음 잡았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에게 골프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한 번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6시 퇴근하면 바로 저녁도 안 먹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10시까지 4시간 정도 연습했다 

월화수목금을 거의 쉬지 않고 나갔다. 

처음 머리를 올렸을 때(골프장에 골프를 치러 나갔을 때), 

당시 초보 치고는 꽤 타수가 잘 나왔다. 

그래서 

와! 나는 골프에 재능이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고, 몇 번 더 나가면 버디도 하고 싱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세번째 라운딩을 나갔을 때 부터인가? 

드라이버가 안 맞기 시작했다. 

공은 "뽕" 소리를 내며 10미터 앞에 두루루루 굴러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골프에서 드라이버가 안 맞으면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어렵다. 

주변 사람들도 민망한지, "멀리건!"을 한번 더 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 

실력이 이렇다 보니 내기를 한다는 것도 꿈을 꿀 수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골프 내기를 한다는 것은 유치원생과 중학생이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승부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그런데, 

당시 월급쟁이로서는 큰 마음을 먹고 강습비까지 내면서 배우고 있었는데, 나중에 나를 코치해주시던 선생님이 한번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습하시는 거에 비해서 상당히 늦게 느시는 것 같아요.
배가 나오셔서 아마 자세가 좀 힘들 거에요. 

하루 4시간씩 연습하는데 골프에 천부적으로 소질이 있기는 커녕, 골프를 천부적으로 못 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게다가 그것이 나의 소중한 신체의 일부인 뱃살 때문이라니...

골프 경력에 비해서 라운딩을 제법 나가는 편인데, 

아직도 나는 나보다 라운딩 나가서 나보다 골프를 못 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연습을 안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골프 연습장, 스크린 골프장에 쏟아 부은 돈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면 야식을 먹으러 갔다. 

살이 쪘다는 죄책감에 주말에 등산을 나갔다. 

등산을 하고 나면, 이제 운동을 했다는 생각에 밥을 많이 먹었다. 

밥을 많이 먹고 나면 죄책감에 주중에 또 골프 연습을 나갔다. 

연습을 할 수록 아이언은 잘 맞는데, 드라이버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골프장에 나갔는데, 

골프연습장마저 끊게 된 계기가 있었다. 

라운딩을 준비하려고 드라이버 연습을 했다. 

그 날도 평소처럼 드라이버가 3번에 1번 정도만 맞았다. 

손 위치를 바꾸고, 그립을 바꾸면서 연습을 했다. 


손가락 살껍질이 벗겨지는 것은 예사였다. 


그런데 옆에 계시는 나이 지긋하신 여자분이 계셨다. 

그 분은 스윙이 좋은지 살살 치는 것 같은데 드라이버가 빵빵 나갔다. 

한 번도 실수가 없었다. 내공이 상당하신 듯 했다. 

나도 저렇게 치려면 열심히 쳐야지, 마음을 먹고 연습하는데...

아주 드문 경우인데

드라이버를 쳤는데 골프공이 완전히 잘못 맞아서 천장을 때리고, 옆에 계시는 그 아주머니 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천만 다행으로 직접 아주머니가 골프공을 맞지는 않았다. 

곧바로 나는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사과를 했다. 

아주머니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공 좀 살살 치세요. 힘이 들어가서 그래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젠틀하게, 화난 기색 전혀 없이 말씀하셨는데, 

내가 볼이 화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바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는데, 바로 떠나면 창피한 마음이 들킬까봐 좀 더 연습하고 자리를 떴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각난다. 


골프를 웬만큼 못쳐서는 드라이버를 쳐서 공이 인도어 안 쪽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다. 


스윙의 방향이 뒤에서 앞이기 때문에 공은 무조건 앞으로 간다. 그래서 우리는 무거운 골프공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도 안전하게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이 인도어 안 쪽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내 자세가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는 의미이다. 

당시 나는 인도어에서 연습할 실력이 아니라 아직 안전한 그물망에서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할 실력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라운딩 10번 이상 나가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100번 이상 게임 나가고, 2달 정도 정식 레슨 받았던 시점이었다. 


그 다음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골프연습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장비도 하나씩 처분하고 있다. 

논리 회로를 뒤적거려서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 인생 두 가지 골칫거리

나는 왜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왜 살이 안 빠지는 걸까?


이 두 가지 문제는 아직까지 내 인생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첫번째, 골프 문제와 관련해서 항상 나는 직장선배와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골프 스윙이 잘 되는 직장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몸이 고무줄처럼 튕긴다. 

몸 하나가 새 총이 된듯 백스윙부터 다운스윙, 타격, 피니쉬까지 하나의 막힘이 없다. 

내 자세를 비디오로 찍어보면 어딘가 막히고, 걸리고 흔들리며 불안하다. 

그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두번째, 살이 안 빠지는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 많은 분들이 정확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먹는 것을 조절해야 빠진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루에 달리기 두 시간을 해도 식이조절을 하지 않는다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 아침 1시간 저녁 1시간, 두시간씩 달리기를 했는데도 살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야금야금 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이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운동을 하면서 식사량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음주와 안주는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다. 

운동을 하루에 30분만 하더라도 차라리 몇 개월간이라도 조절했다면, 분명 살이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식이요법을 조절하지 않는 이상 살을 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매일 먹고, 매일 뛰었다. 


2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나는 두 가지 문제를 다 해결했다. 


먼저, 안 되는 골프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골프를 안 치고, 골프채를 팔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왜 골프를 못 치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첫번째 골프라는 실패에 대해서 나는 '무시하기'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골프랑 안 맞는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주말마다 보낸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지만, 그래도 매몰비용 때문에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골프를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장비가 있으면 다시 골프가 치고 싶을 것 같아서 장비도 하나씩 처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살 때는 비싸게 샀지만, 팔 때는 싸게 팔아야 팔 수 있다. 왜 이런 작은 깨달음도 큰 비용 지출 없이는 오지 않는걸까? 통장 잔고를 보면서 갑자기 슬퍼졌다. 


둘째, 살이 안 빠지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노력으로 결국 딱 한번의 성공을 이뤄냈다. 사실 이 글은 내가 했던 실패에 관한 글이지만, 딱 한번의 성공에 대해서 언급을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첫번째, 6개월 이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6km이상 매일 달렸다. 6km 미만으로 뛴 날은 있어도 쉰 날은 하루도 없었다. 

두번째, 고기와 생선, 계란과 우유를 먹지 않는다. 소위 비건(vegan)식을 하게 되었는데, 달리기로도 약 7-8kg을 감량했지만, 요요가 살짝 왔었는데, 달리기 한 이후로 비건식을 하면서 어느날 보니 5kg이 쑥 빠져 있었다. 


당시 나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뛰었다. 

덕분에 아래와 같은 칼럼도 쓸 수 있었다. 

http://www.chungnam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73203

살 빠지고 나서 SNS 친구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골프는 내 인생에서 아직까지 '실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이제 "오래 뛰기"는 약간 자심감이 생겼다. 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달리기는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35년 넘게 믿고 있었다.  


인생 고민 둘은 다 이상한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골프를 못 친다는 고민은 '골프를 끊음'으로써 해결되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은 99번 실패 후 딱 한 번의 성공으로 아직까지 작은 성공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 비법이라는 것이 "먹는 것을 조절하면 된다"는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던 그 '작은 조언'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놀랍다. 


"나는 수학을 잘 못하나봐." 하루에 2시간 시간 내서 매일 수학 문제집 풀어봐. 그럼 잘 하게 될 걸? 그 쉬운 이야기를 지키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수학'은 실패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전공자나 하는 거지. 해봤자 쓸데 없어." 

이런 냉소를 무릎쓰고 5년동안 남들 알아주지 않는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더니 다음과 같이 책도 낼 수 있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91163031734&orderClick=


실패의 전제는 시도!

실패의 전제는 '시도'이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를 100번만 하면 한 번 정도는 짜릿한 성공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성공의 확률도 같이 높아질 것이다.


골프를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내 골프 실력이 느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골프는 못 치지만, 골프를 잘 치는 방법 역시 알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면 된다. 


대부분이 실패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언젠가 한번은 성공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계속 실패하면 된다.


실패는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것

마지막으로 실패의 좋은 점 하나만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실패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내가 겪은 실패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겪게 된다. 실패를 거듭하여 내가 무언가를 얻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진입장벽이 된다. 그리고 그 실패는 철옹성처럼 내 자리를 지켜주는 방어막이 되어준다. 내가 있는 자리로 오기 위해서 타인은 실패를 거쳐야 한다. 실패로부터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면? 그럼 다음 실패할 것를 찾아 떠나면 된다. 


오늘도 나는 실패할 것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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