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현 Aug 25. 2020

영어공부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

Why do we study English?

작년 2월에 있었던 어떤 일은 면도날처럼 내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경영 상의 위기'라고 우리가 흔히 이력서에 쓰는 그런 상황 때문에 갑자기 나는 새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 박사논문과 경력이 있어 현재 근무하는 연구원으로 곧바로 취직할 수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일 년에 최소 5번 이상 해외출장이 있었고, 영어를 공부해야 할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사실 내가 영어 특기자로 입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지에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회사를 소개해야 할 위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회사 내 다른 사람보다 영어를 조금 잘 한다고 사람들이 나를 보아 준 덕분에 내가 그런 위치에 갈 수 있었다는 것도 자명했다. 


국내 연구원에 입사를 하게 되자, 

영어를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여기서는 심지어 보고서를 쓸 때도 영어 원개념조차 거의 쓰지 않았다. 공무원들과 주로 일하다보니 오히려 법률용어와 한자어(한자가 아니라)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민감해져야 했다. 나는 그런 생활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해도 쓸모 없어

이 말은 과연 틀린 것일까? 내가 만약 연구원에서 계속 근무한다면, 위 말은 단 한치도 틀림 없는 사실일 것이다. 현재 연구원에서 앞으로도 영어가 필요할 일 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영어를 잘하는 연구원들도 적어도 연구원 내에서는 영어 잘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문서에는 영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문장을 쓸 때 중요한 개념들은 다 영어로 쓰던 대학원 시절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다. 


대학원에서 쓰던 개념들은 거의 영어에 기원이 있었다. '세계화'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globalization의 번역어이다. 세계화와 지방화를 더한, 세방화라는 말은 역시 glocalization의 번역어이다. 초국가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을 줄여서 TNC라고도 하고,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enterprise)라고 해서 MNE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학원가가 모여 있어서 생기는 이익은 집적 경제(economies of agglomeration)이라는 말로 정리해도 된다. 입찰지대론에서 나오는 지대지불용의 곡선은 bid-rent curve라는 개념이 훨씬 입에 착착 붙는다. 


이렇게 사고하다 보면, 사실 우리가 쓰는 대부분 개념들이 영어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사실 영어 개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세계화'라는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국어사전에서 뜻을 찾아볼 것이 아니라, globalization을 다룬 논문을 찾아보아야 좀 더 의미 있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내 직장에서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나에게 안도감 대신 극도의 불안감을 주었다. 설마 한국어로만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국어로 된 정보만 보면서 내가 뭔가 안다는 착각에 빠지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 때문에 철저하게 영어에 매달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영어에 매달렸다고 했지,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하지 않았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지난 2년간, 영어를 위해서 했던 일들을 적어본다. 


1. 영어가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만 본다. 최근 2년동안 나는 한국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아주 최근에서야 "비밀의 숲"을 다시 한번 보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아빠가 한국 드라마도 봐!"하고 놀랄 정도였다.  처음엔 영어자막만 틀어놓고 보다가, 뜻을 모르겠으면, 한국어자막을 확인한다. 


2. 아이폰, 아이패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설정을 모두 영어로 바꿔놓았다. 


3. 영어 교육을 빙자한, 영어 발성연습: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같이 드라마를 보면서 쉐도잉을 했다. 하루 2-30분 정도 6개월 정도 하면 발음 교정에 꽤 도움이 된다. 

 

4. HelloTalk 어플을 깔아서 거의 매일 포스팅을 했다. 보통 한 패러그래프 정도 하는데, 원어민들이 친절하게 고쳐준다. 물론 100% 완전히 수긍되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어민이라 확실히 어색한 표현들 잘 잡아준다. 

HelloTalk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 외국인 친구 만들기 

- 외국인과 채팅하기

- 외국인과 단톡방에서 놀기 

등등... 


5. 영어책 읽기: 가장 최근에 하고 있는 방법이다. 하루 5-10페이지 정도 시간 나는 대로 소리 내어 영어책을 읽는다. 해석이 어느 정도 되는 수준에서 큰 소리 내어서 읽는다. 현재 Harry Potter and the prizoner of Azkaban 읽는 중. 


6. 전화영어는 2015-2016년까지 약 1년정도 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전화영어를 할 때는 오히려 "영어공부를 돈 내면서 한다"는 생각에 진짜 영어실력이 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전화영어를 끊고 나서 진짜 영어공부를 한 케이스. 아마 지금 전화영어를 하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 


7. 코로나 시국 전에는 꾸준히 TEPS 시험을 봤다. 점수는 공개할 수 없음. 


8. 일상생활에서 "이게 영어로 뭐지?"라고 질문하고, 영어 사전을 찾아본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단어가 엄청 많다. 예를 들면,


얘들아, 오늘 파티 하자, 아, 그런데, "파티를 열다"가 영어로 뭐지? throw a party

야! 시금치 반찬도 먹어, 그런데 시금치가 영어로 뭐지? spinach


9. 영어 유튜브를 끊임없이 시청한다: 라이브아카데미, 러닝그라운드, 양킹, 에릭 선생님, 지후영어, 니나 쌤 등등.. 솔직히 요건 요즘 좀 많이 뜸하네요. 


10.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면서 녹음한다. 들어본다. 매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자투리 시간에 영어공부를 한 시간을 모아서 평균을 내면 하루 한시간 이상은 거의 매일 한 것 같다.

나도 가끔 하기 싫다. 

아주 가끔은 회의(?), 까지는 아니고 그냥 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요즘 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다. 

그래도 하는 이유는?

내 사고를 한국어 안에 가둬놓기 싫기 때문이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하나 정도는 있어야, 내 사고에 조금이라도 싱싱한 재료들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세상에 나오는 신기하고 새로운 정보는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연구하는 사람은 평생 영어 글을 읽고 살아야 하니, 영어야 말로 나에게 몰빵하기 가장 좋은 언어임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배우면서 좋은 점 하나만 공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외국 친구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좋아요'에 훨씬 관대하다. HelloTalk에서 한국의 예쁜까페에 관한 간략한 포스팅만 하나 올려도, 한국 친구들이 대부분엔 페이스북이나 브런치보다 훨씬 많은 수의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으면 영어로 글을 쓰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실패할 것을 찾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