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준비 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약간은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첫째, 나는 남들이 일하면서 자신을 소모할 때, 지식을 얻고 있구나. 둘째, 나가서 잘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 대학원 생활은 내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방패같은 것이었고, 나는 사회에 나갈 날을 꿈꾸고 또 꿈꿨다.
라푼젤은 어렸을 때 탑에 잡혀와 18살이 되어서야 겨우 탑에서 나갈 수 있었다. 그 때 도둑이지만 심성만은 착하고 잘생긴 플린을 만나서 결국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라푼젤이 처음 만난 사람이 운 좋게 플린이 아니라, 진짜 사기꾼이었다면? 순진한 라푼젤을 꼬드겨서 착취했다거나, 노예로 팔아먹었다면? 안타깝게도 인생에서 라푼젤처럼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소원을 이루고 궁으로 다시 입성하게 되는 경우보단, 나쁜 사람을 만나 죽도록 고생하는 스토리가 더 흔한 것 같다.
라푼젤만큼은 아니지만, 학부 입학한지 14년만에 정식으로 학교에서 밖으로 나가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깡패들은 없을까(ruffians and thugs)? 라는 고민보다는 그냥, 나가서 좋다, 나가도 될까? 이런 마음이 반반이었던 것 같다. 진짜 라푼젤이 플린을 만나 탑에서 나갔던 것처럼, 나도 어떤 회사를 만나서 학교를 훌쩍 떠났다. 며칠 근무하다가 학교에 남아있는 책을 싹 정리해서 봉고차로 불러서 회사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6년, 네 회사를 다녔다. 그 중에는 조금 짧게 다닌 회사도 있고, 2년 넘게 다녔던 회사도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회사에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간 겪은 일들을 나열하자면, 사실 브런치가 아니라 대하소설을 써도 모자라겠지만, 이직과 퇴직을 생각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직하면서 느낀 몇 가지 지점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직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하면 조금 더 좋을 것 같다.
첫째, 이직하고 나서 연락할 수 있을만큼 친한 사람을 꼭 만들어놓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전 회사와의 관계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냉랭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전 회사이다. 오히려 제법 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이직하면 연락은 뚝 끊긴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딱 한 명 정도는 내가 내일 그만 두더라도 꼭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물론 실패를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서로 법적 쟁송관계에 얽혀있고, 친한 직원이 다 나간 회사에도 나중에 연락할 일이 생겼다. 스스럼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그 회사에 한 명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둘째, 이직할 때, 경력 일관성이 중요하다. 30대의 나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썼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난 다음에 이직준비를 할 때는 이런 저런 경력이 다 소용없었다. 오직 그 회사에서 보려고 하는 그 경력만이 중요했다. 심지어 면접장에서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알아요"라고 말하는데, "차라리 멋 모르는 사회초년생이 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완전히 젊잖게 말씀하셨지만, 폐부를 찌르는 코멘트였다. 사실 이것도 조금 해보고, 저것도 조금 해본 나는 그 분야 실력으로는 사회 초년생과 다를 바 없었다. 이직할 회사를 고를 때도, 미래를 보고 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당장 돈 많이 주는 직장은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
셋째, 아무도 당신을 모를 것 같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이직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산다. 그래서 한 곳에서의 평판은 다음 직장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의외로 업계는 좁고 사람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빨리 전파된다. 한 직장에서 다음 직장으로 옮길 때, 당신을 둘러싼 수많은 평판이 이직을 막을 수도 있고, 불가능한 이직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서로 자존심 상하게 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어놓으면, 그 사람에게서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영원히 반복된다. 술을 마시면 또 당신의 뒷담화를 하느라 몇 시간을 허비한다. 물론 그런 뒷담화는 직접 자신의 미래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게 쌓이고 쌓이면 당신이 분명히 알 수 있는 불이익으로 다가온다. 그런 상황을 겪고 나면 "아! 세상이 이런 곳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겸손해지게 된다.
넷째, 이미 이직에 대해 마음을 굳혔다면, 끝까지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 삼십대 후반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멘탈이 약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일단 서류에서 떨어지는 것에서도 멘탈에 스크래치가 난다. 면접 때 면접관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바른 말, 고운 말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면접에 갔다오면 1차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고 2차로 떨어지면, 또 스크래치가 난다. 다음 지원할 때는 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하고, 또 면접기회가 오면 전 면접처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면접에 다시 가면 또 당신의 자존심을 상처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떨어지면 또 상처를 받는다. 자신과 잘 맞는 회사를 만나기 전까지 당신이 몇 번의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른다. 마지막에 썼던 원서 중 하나가 서류에서 탈락한 것을 확인할 때, 진짜 온 몸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심리적인 충격(?)이 진짜 인간의 몸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회사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진짜 바닥을 봐야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글은 이직 후기가 아니다.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몇 가지 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던 내용이다.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정말 몸으로 체험하지 않아,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던 것들이다. 이직하기 전에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했으나, 이직이 결정되고 나서야 겨우 이런 글을 쓴다.
변화를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직이란, 그 불안을 성장을 위한 연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고자 사표내고 휴학계 내신 분들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