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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Sep 20. 2020

비건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

+ 비건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좋은 점들(+나쁜 점들)

작년 10월경, 페이스북에

"이제부터 고기 끊습니다"라고 포스팅을 올린 이후 비건 생활을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더게임체인져스(The game changers)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을 잘 쓰고, 운동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 실험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실험은 아니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모든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과학보다 삶의 진실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내 몸으로 실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기왕 하지 않을 거면, 많은 것을 포기해보고 싶어서 동물성 식품이 들어간 음식은 다 피하려고 한다.


먹는 것: 밥, 채식라면, 김치, 채식만두, 두부, 밥, 잔치국수, 멸치국물...

안 먹는 것: 소고기, 돼지고기를 비롯한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 생선회, 생선 조림류, 달걀, 우유, 달걀과 우유가 들어간 제품


비건(vegan)을 한 이후 10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내 채식생활을 간단히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남긴다(채식주의자와 비건은 다른 말이다). 정리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들 중 자주 받는 질문만 모아서 답을 해보려고 한다.


1. 가족도 하나요?

아니오. 그런데, 가족도 제가 채식을 하는 덕분에 고기 소비량을 조금은 더 줄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채식 햄버거, 채식라면을 먹을 수 있고요. 그렇지만, 가족에게 저의 식단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 참고로 이 질문은 내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SBS TV 프로그램인 동상이몽에서 자신의 채식 식단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부모가 한 번 나와서 엄청나게 욕을 먹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은근히 내가 자신의 식단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사람인지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가족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애들아, 앞으로 채식을 해볼래?"라고 권유한 적도 없다.


2. 왜 비건을 하시게 되었나요?

처음 이 질문을 받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채식을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에 반대해서요. 다이어트 때문에요. 건강해지려고요. 운동효과가 더 좋아진다고 해서 한 번 해보는 겁니다. 이런 모든 대답을 해봤지만, 지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동물을 좀 좋아해서요."


이 답 안에 거의 모든 의미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권장하는 어떤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눈이 있다면 먹지 말고, 다리가 있다면 먹지 말고, 엄마 아빠가 있다면 먹지 말라."


나는 인간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투사같은 이미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그런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 하나가 동물을 먹지 않음으로써 전체 동물의 소비량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비건 하는 거다(go vegan). 그렇게 내가 먹지 않음으로 인해서 한마리라도 덜 희생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좋아 보여서 같이 하는 사람이 더 생긴다면 더 많은 동물을 사육으로부터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건강에 이상은 없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안 좋은 것은 거의 없고, 거의 좋은 점만 있다고. 그러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성욕이 없어지고... 그런 해탈의 경지를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보았던 효과는 일단 채식을 함과 동시에 별다른 특별한 운동을 늘리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냥 5kg 정도가 빠졌다(이렇게 말하면 내가 살을 빼려고 채식을 했다는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당시 이미 나는 살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어쨌든 일부러 살을 빼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체중이 줄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


건강과 관련해서 만큼은, 안 좋은 점보다 좋은 점만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일단,

채식하면 건강해지는지 나는 잘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채식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하루에 최소 30분 이상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출퇴근하면서 걷고 뛰는 시간은 제외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직 식단만 바꿨을 때 어떤 효과가 나는지를 말하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운동을 하면서 고기를 먹을 때와 운동을 하면서 비건을 했을 때를 나 개인에 국한해서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훨씬 나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소기업에서 식품 관련 개발을 해본 적이 있고, 다큐멘터리와 책 등을 통해서 나름대로 식단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영양을 어느 정도 맞춰서 먹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비건을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절대 편식을 해서는 안 된다.

채식을 하는 순간부터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먹는다. 예전에 잘 먹지 않았던 나물 류나 콩나물 류도 이제는 아주 잘 먹는다. 또 식당에 가면 일부러 김을 달라고 해서 먹는다. B12라는 비타민은 채식을 하면 부족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또 김에서 B12를 구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B12의 증상을 나는 한번도 겪지 못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점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별한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은 비건으로 계속 살 생각이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비건을 하지 않게 된다면, 고기나 어류 등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히 나 개인의 선택이며,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몸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권리는 나에게 있다.


4. 회식 때는 뭘 먹나요?

제발 회식 때 많이 불러주세요. 저는 밥 시켜서 먹으면 됩니다. 저는 사람들 모이는 자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조건 불러주시면 나갑니다."

회식을 언급하면, 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비건의 유일하고 확실한 단점은 주량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하고 다니니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절대 채식 하면 안되겠네."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내긴 어렵지만, 어쨌든 내가 겪은 일이니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늙어서 자연스럽게 주량이 약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채식을 시작하고 난 전후의 차이가 확연히 달랐다. 채식을 한 이후 같은 량의 술을 마시면 빨리 취하는 것은 물론 아침에도 숙취가 심했다. 그래서 가급적 술을 줄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술이 약해져서 술을 줄이는 것이 몸에 더 나을 수도 있으니 이걸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주량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랬거나 저랬거나 채식 때문에 회식 자리가 재미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식자리에서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가 회식의 질을 결정한다.


5. 세상을 향해서 분노가 생기지 않나요?

정말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이제는 공장식 축산의 나쁜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고, 이 세상 어딘가에 나처럼 비건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 편으로 채식을 해볼까 하는 호기심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기를 끊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또 인간관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분들이 보기에 비건은 엄천 신념이 대단한 사람들이며, 이 비건의 신념이 강해질수록 자신과 같은 육식 하는 사람을 나쁘게 보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들어가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선 이렇게 답을 한다.

"한 때 저는 고기 중에서도 육사시미를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이다. 육사시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심지어 봉천동 중앙시장에서 육사시미 파는 가게을 알아서 그 가게에서 떼어와서 집에서 안주 삼아 먹을 정도였다. 이게 말이 쉽지, 육사시미를 떼어와서 집에서 차려먹을 정도면 고기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식단과 같은 개인적인 선택을 가지고 절대 어떤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I don't judge them). 다만,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선택을 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런 저런 좋은 점들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몸으로 겪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육식을 하는 당신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와 다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신념을 남들이 공유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때로는 강요한다. 내가 믿는 신을 너도 믿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비건을 당신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나랑 같이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채식을 해보면 어떻겠니?"라고 진지하게 권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그들과 함께 나라는 신생 비건(brand-new vegan)이 같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것이다(It's just huge).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비건이야. 고기랑 생선을 안 먹고, 계란과 우유도 안 먹는데... 그러고도 잘 살더라."


하루 빨리 세상을 바꾸고 싶은 성급한 비건도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위의 문장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내 비건 생활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강요'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비건과 채식주의자들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비건과 채식주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육식하는 보통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럴 생각은 별로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비건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는 셈이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한 나는 육식을 하는 분들을 너무 이해한다는 점도 같이 말한다. 나도 육식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모두가 공존하면서 오손도손 재밌게 사는 것이다. 나중엔 동물도 포함해서...


6. 고기가 먹고 싶은 적은 없나요?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적이 완전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통닭은 사다 줄 때가 있는데, 노릿노릿한 튀김옷이 적당히 튀겨져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다리를 보면 한 입 베어 물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피조개

비건을 시작하고 난 직후에 고향인 여수 돌산으로 워크숍을 갔는데, 거기에서 반찬으로 '피조개'가 나오는 것이다. 사실 피조개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잔치상에 도톰하고 큼지막한 피조개가 올라오면 정말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이걸 못 먹는다는 사실은 아주 억울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나왔는데 먹지 못하다니! 어렸을 적 친구와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앞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그 수많은 음식을 다 못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뿐이었다.


피조개 하나 안 먹는다고 나에게 손해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마찬가지다. 닭다리를 안 먹는다고 나에게 손해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습관적으로 닭다리를 뜯던 지난 날 나는 항상 과체중과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힘들었다. 돈을 써서 많이 먹고, 살이 찌고, 그 살을 빼려고 또 비싼 헬스장 가서 등록하고, 운동을 안해서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받으니 또 먹고, 살이 찌고.. 이런 삶의 연속이었다.


그 맛있다고 생각한 몇 가지를 포기하니, 먹을 수 있는 것의 숫자가 줄어들고, 숫자가 줄어드니 먹을 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고, 덕분에 술도 적게 먹고 더 건강해졌다.


오히려 예전에는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밥을 적게 먹으니 하루 종일 배가 고팠다가 오히려 집에 가서 탄수화물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하고 오히려 라면을 끓여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밥 먹을 때 그냥 탄수화물을 마음껏 먹기 때문에 오히려 집에 가면 배가 고프지 않다. 나중에 언젠가 다룰 일이 있겠지만, 다이어트에 단백질은 좋고 탄수화물은 나쁘다는 것은 신화인데, 이건 분량상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심지어 이런 이유로 채식이 몸에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 오해는 분명히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고기가 먹고 싶은 적이 있지만, 참지 못할 정도로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고기 구워지는 향이 맛있게 느껴지는 건 찰라의 순간이었다. 베어문다(bite)는 행위를 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지는 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꼭 전하고 싶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별난 사람도 아니고, 특이한 사람도 아니다. 비건이란 그런 사람도 그냥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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